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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제 Feb 01. 2023

황량한 사막에서 일어난 마법 같은 기적 바그다드 카페

내 이름은 야스민이야.


바그다드 카페

(Out Of Rosenheim, Bagdad Cafe, 1987)

개봉 1993년 07월 17일




줄거리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바그다드 카페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이 찾아온다. 카페의 주인 브렌다의 남편은 무능하고 게으르며 아들은 어린 나이에 사고 쳐서 아기가 있고, 딸은 밖으로 나돌며 공부를 게을리한다. 잘 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던 이곳에 희망이 싹트며 행복이 자라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것들, 그리고 사람 간에 상대적인 감정들에 대해 깨닫는 바가 많아지게 된다. 우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탓하며 자신에게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를 하게 되는데, 이는 곧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무기력의 한 모습인 것 같다.




보다 보면 배경 음악으로 'Caling You'가 흘러나오는데 오묘하게 장면들과 어우러지면서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깨달음의 허탈한 웃음이다. 코미디, 드라마 장르지만 웃음 속에서 얻는 것이 있다.


영화는 야스민과 남편의 다툼으로 시작하는데 그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보게 됐다.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을 때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야스민은 너무나 지쳐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브렌다는 초반부터 괴팍한 성격으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보고 있노라면 감정에 대해 이해가 되며 수긍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브렌다 입장에서 본다면 무능력한 남편, 거기다 한번 말하면 똑 부러지게 해 준 적 없는 남편이 답답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가정에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 크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바람직하게 자라는 아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소수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아이들 역시 잘했다고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이렇게 내 이야기가 아닌,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니 상대적으로 모든 인물의 입장이 이해된다. 모두 상대성이 있고 입장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단 인정하고 수용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고 있다. 브렌다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깊은 실망, 그리고 자신은 열심히 잘 살아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우울이 있어 보였다. 그것이 다만 주변인들(남편, 아이들, 손님 등)에게 분노로 표출되고 있었다.


브렌다가 야스민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아픈 마음을 보이며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하고 말을 했을 때 드디어 비로소 그녀가 자신의 아픈 마음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려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처받을까 꽁꽁 싸매던 마음이었는데 적대심이 열린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자신만 생각하느라 주변을 둘러볼 수 없던 브렌다는 야스민의 "나는 아이가 없어요"라는 말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자신만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타인에게 상처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대사 중, 야스민의 자기소개가 인상깊었다.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지만 타인에게 "난 문치슈테트너 부인이에요" 라고 소개했다.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끝을 결심했어도 여전히 남편이 있는 부인의 모습으로 보이길 원했다. 여기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 것.. 하지만 그녀는 "내 이름은 야스민이야"하고 소개를 하며 적극적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야스민은 사람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거칠게 다툰 후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남편이 다시 자신이 걸어온 방향으로 올 것이란 걸 직감하곤 숨어버렸다. 야스민은 그렇게 항상 다투고 화해하고 반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숨은 모습에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문치슈테트너 부인이라고 소개를 했을까? 그 나이대에 남편이 없는 여인, 그리고 홀로 차 없이 여행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져서 그랬을까? 홀로 설수 없을거라 생각했을까? 어찌 됐든 옛 영화지만 현시대와 비교해 봐도 다르지 않다. 많이 개방된 시대라고 해도 이혼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야스민은 감정대로 행동했던 자신을 내려놓고 바그다드 카페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가 된 기한 없는 여행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고뇌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삶이 주는 기회였다. 그 계기로 깨닫는 바가 있어 스스로 행복창출을 할 수 있게 됐고 누구 부인이 아닌 자기 자신 그대로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그것은 외적인 아름다움의 요소가 아니었다.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이었고 그것이 그녀를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루디콕스가 그녀에게 반할만했던 것이다.


황량한 사막 위에 덩그러니 있던 바그다드 카페는 이제 황량하고 초라한 곳이 아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만난 야스민과 브렌다지만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 또한 스스로임을 깨닫고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유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이 전해졌다. 우울에 빠지게 되면 환경 탓, 남 탓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행복은 얼마든 스스로 창출해 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고난 속에서도 행복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며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경질적일 수밖에 없고, 꽉 막힌 것 같은 현실을 웃으면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매력 요소다. 억지웃음이 아닌, 진정한 힐링의 웃음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놓치고 있던 행복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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