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건 다시 붙이세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알 게 뭐예요?
줄리 & 줄리아 (Julie & Julia)
개봉 2009년 12월 10일
간단한 줄거리
줄리아 차일드는 외교관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서 거주하게 된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곤, 르꼬르동 블루 요리학교를 다니며 요리사의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마침내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가 된다. 뉴욕에 살고 있는 줄리는 줄리아의 열성적인 팬으로 요리와 먹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여성이다.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공무원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의 요리 열정과 행복을 위해 요리 블로그를 운영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블로그는 점점 유명해지고 작가로서 제의도 받게 되는데..
난 뭘 하면 좋을까요?
줄리아 차일드는 항상 무언갈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외교관 남편을 둬서 넉넉하게 살았지만,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즐겼으며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사람이었다. 여성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 시험 기회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과한 스트레스로 만들어내지 않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으며 시험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고, 시험에 낙방해도 그 사실이 요리를 그만두게 하진 못 했다. 자신이 배운 것을 가르치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요리 수업을 진행하며 흥미를 더해갔다. 재미와 흥미, 그리고 노력은 부족한 재능을 발전하게 이끌어준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 무언가를 하게 되면 물질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삶의 만족이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더 높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유명 셰프가 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나 자신이 오롯이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삶 말이다.
전문 요리사가 된 후에도 전문인으로서 완벽을 추구하기보단 실수에 관해서 상당히 관대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으며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히 힐링을 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이렇게 배울 점들이 많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을 갖게 되는 건 당연했다.
"뭔가 뒤집을 때는 주저 말고 확 뒤집으세요. 특히 무른 반죽일 경우엔 실패 확률이 높죠. 방금 뒤집을 땐 용기가 부족했어요. 과감하질 못했죠. 떨어진 건 다시 붙이세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알 게 뭐예요?"
그녀의 남편 폴은 그런 그녀를 이해해 주고,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 부부로써 이상적인 모습이었는데 이건 한 사람만 성품이 좋다고 해서 가능한 관계는 아니었다.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이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도 이어지는 부부였다. 이 둘은 겉모습에 이끌려 결혼하지는 않았을 거라 예상됐다. 그녀의 키는 그 시대 사람들에 비해 컸으며 그녀 옆에 서면 자신들의 키가 작은 것이 돋보이기에 남자들이 기피하는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동생도 그녀와 비슷한 성품의 소유자였는데 동생 역시 자신보다 키 작고 왜소한 남성을 만나 결혼한다. 부모는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녀들은 진정 행복해 보였다. 폴은 자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그녀를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해 줬으며, 그녀 역시 폴의 작아져가는 모습에도 흔들림 없이 사랑으로 바라보며 여전했다. 그래서 이 둘의 모습이 참 예쁘게 느껴지더라.
"당신은 내 버터이자 인생의 숨이야. 사랑해 여보."
줄리는 찌든 일상 속에서 새로운 목표를 만들며 삶을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목표가 스트레스가 되게끔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다. 남편의 제의로 시작하게 된 것은 맞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남편 탓을 했고, 요리가 맛없으면 자신의 실패에 관해서는 관대하지 못했다. 여기서 줄리아의 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요리도 피아노처럼 연습이 필요하다', 한 번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게 될 확률이 더 많다. 지금까지 요리를 많이 해왔다면 실패할 확률이 더 낮겠지만 그렇다고 처음 하는 요리를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녀는 남편 에릭의 냉정한 판단에 감정이 휘몰아칠 만큼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고, 블로그에 시시콜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연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타인의 시선도 신경 쓰며 스트레스를 만들어낸다. 결국 내 마음의 스트레스란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집에 유명 인사를 초대하게 됐다가 취소됐을 때.. 만약 같은 상황에 줄리아였다면, "오.. 어쩔 수 없지요. 당신과 만찬을 오붓하게 즐겨야겠어요."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남편과 마주 앉아 웃으면서 결혼의 진정한 행복을 만끽했을 것이다. 이왕이면 내 삶에서 긍정에 힘을 더 싣는 것이 좋지 않을까? 타인의 시선에 만족을 맞춘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처음엔 내 삶을 활력 있고 즐겁게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누가 봐줘야 하고, 누가 인정해줘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나를 채찍질하게 되고 잘 못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책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게 된 그녀는 조회수에 연연했다. 그것이 물론 내가 하는 일을 즐겁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는 있지만, 내가 하는 일 자체의 즐거움이 돼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럼 어떻게 무명 시절을 겪어서 고지에 오를 수 있을까. 그 길이 재밌지 않고 역경처럼 느껴질 텐데 말이다. 그런 그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주는 남편 에릭은 뼈 때리는 말을 해준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편은 정말 천사다. 누구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걸핏하면 울컥했다고 지르는데 어떤지 알아? 생판 남을 위해 글 쓰며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랑 사는 기분야. 재밌고 신날 줄 알았더니 천만에!"
그녀는 그래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인정을 할 줄 아니 반성도 할 줄 알았다. 성격으로 인해 좌충우돌 많은 심적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계기로 발전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바람도 이룰 수 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 서로 다른 성격 유형의 그녀들이었지만, 열심히 달려온 모습은 모두 인상 깊었다. 365일 동안 어떻게 수백 개의 요리를.. 나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대단하다.
영화에서 블로그가 소재로 나와 솔깃했다. 나도 블로그를 하고 있으니까. 아주 오래전엔 나도 조회수에 기쁨이 최고조에 올랐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방문자 수가 높든 말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10여 년간 겪다 보니 그냥 사람들이 이것에 관심이 많구나? 하고 정보를 얻을 뿐이다. 영화리뷰를 쓰면서도 정보를 알게 된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보는 인기 영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비인기 영화는 무엇인지 알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얼마 전엔 일회용 마스크를 대량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리뷰했던 제품이 세일 중이라 그 키워드로 많이 들어오는 거였다.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서 들어오는지 통계를 살펴볼 수 있다.) 덕분에 세일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도 샀다. 하하.. 영화를 보면서 그녀들의 책 출판에 관해서도 그 기쁨의 묘미가 아주 살짝 공감이 됐다. 오랫동안 글을 쓰다 보니 오게 된 기회였는데 책 출판에 한 장 정도 들어가는 정도로 참여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기쁨은 최고조였다. '내가 쓴 글이 책에 실린다고?' 이 사실만으로도 색달랐고, 그 책은 지금도 소장 중이다. 잘 팔리는 유명한 책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쓴 글로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정말 그 기쁨이 남다를 것 같긴 하다. 난 그 한 장을 위해서 수정하고, 수정하고, 반복했었는데 골머리를 앓긴 했지만 그 과정이 참 재밌었다. 줄리아 차일드가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래서 명작이 나왔나 보다. 그 요리책 나도 궁금해서 보고 싶은걸. 이렇게 무언갈 열심히 하며 살다 보면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인생은 참 재밌다.
처음 스토리가 흘러갈 때, 그녀들이 다른 시대 배경 속에 살고 있지만 풍요롭고, 풍족하지 못한 대조적인 모습에 '환경에 따라 다른 생활'을 비춰주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환경에 상관없이 나의 생각 틀이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스트레스 투성인 것처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정말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사건, 사고에 어떤 생각과 행동이 나오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결과로 나를 판단한다면, 그건 결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금 못 해도 나를 칭찬해줄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충분히 노력하고 있고, 실패나 실수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이 영화는 두 여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폴 차일드는 1994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줄리아는 2004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요리책은 49번째 발행에 들어갔으며 줄리의 'Julie & Julia'는 2005년 출판됐고 당당한 작가가 됐으며 현재에는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기 쉬운데, 내가 좋아하고 흥미가 가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꼭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추천한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한 나,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