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마주할 수 있고 보내줄 수 있다면..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개봉 1994년 4월 16일
남아있는 나날 원작은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으로 충직한 한 영국인 집사의 고고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저자는 5살에 영국으로 이주해 쭉 살았던 일본계 영국인으로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간단한 줄거리
영화의 첫 시작은 켄튼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편지는 스티븐스의 마음에 희망을 주기에 충분한 내용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달링턴 경의 집사로 충실한 삶을 살아왔던 그는 또다시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고도, 켄튼에 대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집사의 본분을 완벽하게 해냈지만,
그의 사고방식과 표현은 집사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했다. 후에 대저택은 미국인 백만장자 루이스가 구입하게 되면서 그는 루이스의 집사가 된다. 그리고 그가 옛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그의 과거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생각해볼 수 있었던 대사
"요즘은 종종 그 집에서 일했던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은 고되었고 당신은 역시 까다로운 집사였지만 그래도 당신과 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과거에는 이 집안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누구도 남편만큼 날 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인생에 있어서의 실수를 후회하기는 하죠."
"사람은 누구나 가끔은 후회를 하잖아요."
켄튼은 분명 그에게 감정을 제대로 전달했다. 당신과 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고, 남편과 헤어졌다고 전했고, 결혼 생활의 끝을 알렸다. 하지만 스티븐스의 답장은 여전했다. 그의 사고방식은 집사라는 틀 안에서만 생각이 이뤄졌고 또다시 켄튼에게 똑같이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때 켄튼은 한번 더 깨달았을 것이다. 처음 주저앉아 울었던 그날의 기억처럼, 그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감정에 벽을 두고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보다는 자신에게 표현을 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켄튼은 지나간 과거의 후회를 내려놓고 현재를 선택한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사랑보다 '이것(현재 남편이 그녀를 필요로 하고 그녀가 돌아와 주길 바라는 것)이 사랑이구나.' 하고 확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켄튼은 단순히 스티븐스를 화나게 만들고 싶어서 대저택을 나왔지만 인생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듯이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자녀를 낳고 이제는 손녀를 얻게 되었다. 인생이 이렇게 미래를 알 수 없듯이 만약 그녀가 대저택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 후의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것이 그녀에게 남는 인생의 후회일 것이다. 버스를 타며 스티븐스와 헤어질 때 켄튼은 여전히 서글프게 울었다. 지나쳐간 인생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기에 후회는 눈물로 쏟아져 내린다. 그녀가 대저택에 남는 선택을 했을지라도 사랑에 대한 행복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혹시 모르니까..'라는 마음 때문에 희망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지나간 것에 의미를 더 크게 두며 후회를 하곤 한다.
세월이 흘러 스티븐스는 그녀를 다시 만나기 전에 편지를 다시 한번 훑어본다. 그는 '그래도 당신과 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생각에 빠져든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 그녀의 가족사 이야기를 들으며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그녀와 길을 걷다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의문을 갖는 모습을 보이곤, 곧장 깨닫지만 그의 삶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집사의 본분을 갖추며 살아왔기에 이제 와서 후회하기엔 너무 많은 인생을 지나쳐왔다. 그는 이제 나이가 많다. 그는 현실로 돌아와 "맞아요, 난 항상 일하고 또 일하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며 대저택의 하인 문제건을 자신의 중요한 삶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보람 있게 만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스티븐스의 아버지 또한 그런 분이셨다. 나이가 들어 일을 하기 힘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쟁반을 들고 있는 제스처를 하며 턱이 있는 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왔다 갔다 연습을 했다. 스티븐스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고,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인생을 살아왔다. 그게 삶의 중요한 가치였고 만족이었고 성공이었다. 바쁜 업무 속에서 절제하며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을 마다하며 그는 그것이 옳은 것이라 판단하고 행동했다. 직업적으로만 스티븐스를 판단한다면 그는 꿈을 갖고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모범과 존경을 줄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생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삶에 있어서 정녕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그는 켄튼을 만나러 가는 길 어느 술집에 들러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영국에서 태어나는 건 자기 의견을 피력할 권리와 대표자 선출권을 가진다는 특권이 있소. 그래서 나치와 싸울 수 있지." 그는 자신의 신분 즉 직업을 선뜻 말하지 못한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그는 여러 생각들을 듣게 되며 잠시 혼란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달링턴 경을 모시며 그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갖고 있었지만 옳고, 그름의 갈림길에 놓였을 땐 항상 회피했다. 집사의 본분을 다하며 달링턴 경을 모시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큰 가치였기에 회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왔고 직업적 만족감을 얻고 있었는데 모시는 분에 대한 부정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남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듣게 된다. "혹시 우리를 전쟁으로 끌어들인 그 달링턴 경 말입니까?" 그는 "전 그 사람은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렇게 또 회피했다. 자신이 따르던 것 그리고 따르던 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을 가져왔다. 하지만 달링턴 경을 모른다고 부정해버리는 것은 자신을 고통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다시 말한다. "사실은.. 진실을 말해야겠군요. 전 달링턴 경을 압니다. 정말 좋은 분이셨죠. 진정한 신사분이셨습니다. 모시고 있다는 게 늘 자랑스러웠죠." 그는 후회하는 것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이어나간다.
그의 대사 중 "과거에는 이 집안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는 대저택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사로서의 삶을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로 두고 살아왔다. 켄튼을 만나러 가며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을 테지만 말이다. 그의 직업적 정신은 뛰어나다. 그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회상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씁쓸함이 느껴지곤 했다.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과거를 마주 볼 수 있고 인정하고 내려놓을 수 있고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인생에 있어서 남아있는 나날을 더 가치 있게 봐야 한다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대저택에 들어온 비둘기를 밖으로 날려 보내고 창문을 닫았다. 창문 안으로 보이는 스티븐스를 보며 그는 대저택에서 집사로써의 직업적 위대함을 선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의 직업적 정신은 투철하고 위대하고 존경스럽지만 누구든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엔 씁쓸하지만 그에겐 그게 삶의 커다란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사실은 행복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고..라고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 집사로써 충분히 해내지 못하게 되면 그땐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 것인가. 아버지처럼 죽는 순간까지 집사로써의 삶을 마감하는 걸까.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 남은 인생이 얼만큼일지 모르는 것 아닌가. 그리고 얼마나 더 즐겁고 행복할지도 모르는 것이고. 아픈 과거를 마주할 수 있고 보내줄 수 있다면 현재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