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말해 줄까 말까
릴리 할머니도 루나도 없는 부엌엔 어둠과 적막만이 가득했어요.
반쯤 차오른 상현달의 푸른빛만이 저 멀리서 창문을 뚫고 들어와 이곳을 아스라이 비추고 있었죠.
그런데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침묵을 깬 누군가가 등장했어요.
“얘를 어떡하면 좋지?”
고민 가득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릴리 할머니의 부엌에 낮게 깔렸어요.
“그러게 말이야.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옆엔 함께 고민하는 또 다른 누군가도 있었죠.
“흐음... 이거 정말 고민되는걸.”
어둠에 가려진 둘은 속삭이며 대화를 이어 갔어요. 혹시라도 곤히 잠든 릴리 할머니와 루나 가족이 깰까 싶어서였죠.
“괜히 깨웠다가 우리가 한 줄 알면 어떡해.”
“그런가? 이 깜깜한 새벽에 잠든 걸 깨우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소곤소곤 대화를 하던 이들의 정체는 바로 릴리 할머니가 키우는 두 고양이, 똑똑이와 블루였어요.
오늘 똑똑이와 블루는 컵케이크를 만드느라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릴리 할머니를 보았고, 두 손을 걷어 부치고 이를 돕던 귀여운 루나도 보았어요.
그리고 루나가 늘 곁에 끼고 애지중지하던 곰 인형도 보았답니다.
“그래도, 좀 짠하긴 하단 말이야...”
똑똑이는 혀를 쯧쯧 차며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컵케이크를 가만히 응시했죠.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똑똑이는 릴리 할머니가 완성한 스물한 개의 컵케이크 중 마지막 스물한 번째 컵케이크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어요.
“흠, 결심했어.”
똑똑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굳힌 듯했어요.
“나는 괜히 복잡한 일에 끼어들기 싫어. 내가 그랬다고 오해받기도 싫고.”
똑똑이는 더 이상 고민하기 싫다는 듯, 스물한 번째 컵케이크에서 고개를 휙 돌리며 시선을 떼 버렸어요.
“인정. 그럼 나도 오늘은 그냥 지나가겠어.”
한밤중에 머릿속이 복잡하던 블루도 냉큼 똑똑이의 말에 동의했어요.
“내일 이 친구를 놀려먹는 재미도 꽤 쏠쏠할 것 같고 말이야.”
아주 잠깐 동안 뜻 모를 미소를 지은 블루는 내일 아침 짓궂은 장난을 칠 생각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어요.
“살살해 블루. 내일 날이 밝고, 그때 이 친구가 혼란스러워한다면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설명이나 해 주자고.”
“좋았어. 이 블루 님께서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냉장고 위에 있던 똑똑이와 오븐 위에 있던 블루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곤 날렵하게 바닥으로 내려와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갔어요.
‘불쌍하긴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블루는 부엌을 나가며 컵케이크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는 듯 금방 시선을 거두었어요.
* * *
‘짹짹짹-’
깊어진 겨울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자, 아침 새소리와 함께 상현달의 푸른빛은 사라지고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아침 햇살은 릴리 할머니의 부엌 곳곳을 비추었답니다. 릴리 할머니가 보물처럼 아끼는 오븐도, 오래되었지만 잘 손질된 그릇장도, 반질반질 윤이 나는 싱크대도 비췄죠.
햇살이 부엌 한가운데 놓인 식탁을 밝게 비추자, 드디어 식탁 위에 놓인 스물한 번째 컵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스물한 번째 컵케이크가 식탁 위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