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체리체리베어#8. 계약 성립

by 미미멜로디

#8. 계약 성립



‘으음.’


곰 인형이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자, 화사한 연분홍색 천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곧 이어 좌우를 한 번씩 둘러보고서야 곰 인형은 자신이 폭신한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단 걸 알아챘죠.


‘분명히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었는데...’


곰 인형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누군가가 곰 인형을 만류했어요.


“정신이 들어요? 좀 더 누워 있지. 아니면 침대에 앉아서 좀 쉬든가.”


곰 인형이 무리하지 않도록 말을 건넨 건 종이 무더기가 어지럽게 널린 책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던 미미였어요.


“당신 오늘 하루 종일 기절해 있었다고. 어떤 사정인 줄은 모르겠지만, 자기 몸을 돌볼 줄은 알아야지.”


어쩐지 눈 밑이 퀭한 미미는 존댓말과 반말을 반반씩 섞어 가며 곰 인형이 무리하지 않도록 배려해 줬어요.


이불을 살짝 걷어 제 몸을 살피던 곰 인형에 눈에 깨끗이 닦인 몸과 발이 먼저 들어왔어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심히 두 손을 휘휘 젓는 미미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한 곰 인형은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각난 듯 두 팔로 급하게 머리 위를 더듬었어요.


혹시나 했지만, 곰 인형의 머리 위엔 역시나 버터크림과 체리가 여전히 올라간 채였죠.


“그거, 혹시나 해서 말인데.”


그런 모습을 쭉 지켜보던 미미는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긴 채 심드렁하게 말했어요.


“아까 집에 와서 씻길 때 이렇게 저렇게 떼어 내려 해도 무리더라고. 네 털까지 모조리 뽑힐 것 같아서 하다 관뒀어.”


역시.


곰 인형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어요.


“집에 데려와 보니까 딱히 짐도 없고, 몰골은 엉망이고. 혹시 가출, 뭐 집을 나온 그런 건가?”


미미의 물음에 곰 인형은 어깨를 살짝 움찔한 뒤 뒤이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어요.


“우리 집에 정체 모를 누군가를 둘 순 없고...”


역시 이곳에서도 떠나야겠구나. 곰 인형은 앞으로가 막막하기만 했어요.


“네 얘기를 들려줘. 그럼 여기 머물게 해 줄게.”


곰 인형은 예상하지 못했던 미미의 제안에 두 눈을 크게 떴어요. 두 팔론 저도 모르게 이불을 꼬옥 말아 쥐었죠.


존댓말 반, 반말 반에서 완전히 반말로 돌아선 미미는 지금까지 곰 인형이 겪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어요.


“마침 혼자 살기 적적하기도 했고. 내 글도 꽉 막혀 버려서 말이야. 이게 도저히 진행이 안 되네?”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턱을 괴고 앉은 미미는 노트북을 향해 가볍게 턱짓을 하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어요.


“그런데 네 얘기를 들으면 영감이 솟을 것도 같거든.”


곰 인형은 고개를 네 번이나 빠르게 끄덕이는 것으로 예스라는 대답을 대신했어요.


“좋았어! 계약 성립!”


미미는 팡 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한 번 맞댔어요.


그리곤 곰 인형이 깨기 전까지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던 듯 나른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어요.


“아, 그리고 하나만 더.”


여기 머물기 위해 고개를 끄덕일 일이 또 뭐가 남았나, 긴장하는 곰 인형에게 미미는 마지막 확인을 받았어요.


“반말 괜찮지?”


“네!”


곰 인형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히 웃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머리 위에서 차갑게 굳은 버터크림도, 무거운 체리도 잊은 듯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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