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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May 17. 2022

책방 시나몬 베어 - 팍스

책방 시나몬 베어

팍스 / 사라 패니패커 글, 존 클라센 그림/ 김선희 옮김/ arte


fox가 아니라 Pax입니다. Pax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평화의 여신이에요. 그러나 평화를 뜻하는 책의 제목과 다르게 이야기의 배경은 전쟁으로 시작되고, 소년은 분노와 슬픔, 죄책감으로 억눌려 있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본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어요. 자연의 섭리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삶이 오만한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었듯, 이 글 속에도 전쟁병에 걸린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는 생태계가 나와요.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과 그 물을 마시고 신경계 이상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아기 동물들, 불길 속에서 다리를 잃고 목숨을 잃는 가엾은 생명체들, 빈 집과 거리를 헤매는 반려 동물들... 지금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이렇지 않을까요? 전쟁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평화와 행복을 파괴한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어요. 

'늑대와 춤을'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늑대와 교감을 이루는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요, 석양을 배경으로 함께 어울리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팍스'에도 여우와 소년의 교감이 나와요. 특히 개와 고양이를 섞어놓은 듯한 여우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우리 집 고양이를 돌아보게 했답니다. 저는 종종 사람보다 우리 집 냥이가 나의 습성이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교감하는 소년과 여우의 이야기는 제 가슴을 뜨겁게 했답니다.    


여우와 소년이라는 말은 자동적으로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해요. 둘의 우정이 뼈대를 이룬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거예요. 

아니쉬 차칸티 감독의 영화 '런' 보셨어요? 그 영화도 장애를 가진 소녀와 미스터리한 엄마가 나오는데요 스포일은 하지 않겠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대충 짐작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결말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지 몰라요. 실제로 장애를 가진 배우를 캐스팅한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에 집중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가게 되죠. '팍스'도 영화 '런'과 같아요. 소년과 여우가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을 가슴 졸이며 읽게 되죠. 특히, 내가 예상한 이야기가 1부에서 가슴 아프게 끝나버렸을 때, '아니, 2부에서는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하려고?' 하는 궁금증으로 후다닥 2부를 펼쳐 들었어요. 


매력적인 글은 영화를 보듯 이미지가 따라서 떠오르지 않나요? 분명 책을 읽었는데 영화를 한편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팍스'도 그랬답니다.  요 며칠 동안 저는 새벽까지 책장을 넘기며 숲을 헤매고, 강의 물을 마시며 따스한 여우를 품에 안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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