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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Jun 26. 2022

책방 시나몬베어 - 4개월째

책방 시나몬베어

6월 23일은 책방 문을 연지 4개월이 되는 날입니다.

2월은 주차공간, 이웃과의 작은 갈등, 문틈 사이로 매섭게 불어오는 칼바람과 감기 등으로 춥고 예민한 시간이었어요. 책을 왕창 사서 북 큐레이션을 하며 내 안의 둥둥거리는 북소리를 듣는 시간이기도 했죠.

3월에 바람이 조금 부드러워지자 지인들이 책방 오픈을 축하하러 오기 시작했어요. 십 년이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베이비시터 선생님과 동료 작가들, 초등학교 동창들, 수원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작가이자 대표님, 동네 이웃들까지 모두 시간을 내서 먼 거리를 와주었어요.

흘러내리는 촛농처럼 무너졌던 시간을 거쳐 이렇게 나다운 것으로 가득 찬 공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저도 행복한 일이었어요.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하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4월엔 매일 손님이 왔어요. 친한 강사와 뜻이 맞아서 색연필로 그리는 식물 세밀화 수업도 시작했고, 직접 가르치는 독서수업도 홍보하며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아이고, 발목을 심하게 접질렸지 뭐예요! 근육이 파열돼서 반깁스를 한 달 넘게 하고 발목 고정대를 또 한 달, 3개월째 부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고 걸을 때마다 시큰거려요. 모두 급한 마음을 버리고 안전한 길로 천천히 다니세요 ㅠㅠ

그래도 목발 없이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독서수업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조금씩 늘어서 책방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5월엔 내가 책방을 한 게 잘한 일일까 심각한 고민을 할 정도로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거리두기가 해지되자 사람들이 삼일절의 만세 물결처럼 우르르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에요. 일주일에 두 명 또는 한 명의 손님만 오다가 그마저도 없이 5월 한 달이 흘러갔어요. '누가 책방 한다고 하면 말려야지.' 그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자영업자, 소상공인으로서 보는 거리와 세상은 새로웠어요. 어쩌다 식당에 가도 물건을 파는 사장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오 예쁘다 감탄만 하며 지나갔던 카페거리도 정성스럽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월급을 받는 친구들과 조금 거리감도 느꼈고, 책방 대표라는 낭만적인 적자의 현실은 돈을 벌 방법을 적극적으로 궁리하게 했고, 통장을 들여다보며 셈하는 날들이 늘어갔죠.

6월이 되어서도 책방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독서수업을 하면서 보람을 찾고 있어요. 나는 왜 책방을 열었지? 책방은 나에게 꼭 맞는 일이야. 그런데 재정적인 현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왜 운명처럼 느껴질까? 나는 무엇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 걸까?

사실 지금 눈이 뻑뻑하고, 몹시 피로한데 머릿속에서 이런 질문과 답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글을 쓰고 있어요.  말은 너무 많은데 혼자서 되뇌다 보니 퇴적암처럼 쌓이고 쌓여서 막상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우리는 누군가와 말을 하면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게 되지 않나요? 대화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는  저에게  불리한 결핍인  같아요.   


암튼, 4개월째 접어드는 현재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처음부터 책을 팔아서 책방 월세를 내겠다는 생각을 안 한 자신을 칭찬하고 싶어요. 책 판매가 아닌 독서수업에서 수입의 희망을 발견했고 지금 그 일을 아주 즐겁게 하고 있어요. 책방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일 년 정도는 수입이 없어도 유지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책 판매가 아닌 다른 계획으로 수입을 잡아야 책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요.  

저는 쏠트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포장지를 뜯을 때면 신이 나서 다급하게 뜯느라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곤 해요. 그래도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짭조름한 게 인생의 맛 같아요. 물론 쓴 맛이 빠졌지만 그냥 인생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의미에서요.

기운이 빠져서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기다리던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 뉴스를 들으면 콧노래를 부르며 벌떡 일어나게 돼요. 이준혁 배우랑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거나 남준이랑 미술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는 황당한 상상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웃게 되죠.

하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일상적이고, 중독적인 설렘은 책이 가득 들어있는 박스가 책방 문 앞에 배달될 때 예요. 그러니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꺄! 하며 폴짝 뛸 정도로 신이 나죠.    

그게 책방을 하는 기쁨 중 하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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