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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Sep 04. 2022

책방 오픈 - 7개월

책방 시나몬베어

저보다 먼저 책방을 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죠.

크게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책이라는 매개체로 만나는 인연들이 귀하다고 말이에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덕담을 해줬죠.


참 고마운 말이었어요. 제가 평생을 바라 오고 있는 것이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 통한다는 느낌. 대화가 즐겁다는 느낌의 사람을 늘리는 일이었기에 기대를 갖게 되었죠.

그런데 책방을 방문하는 건 귀여운 길냥이들뿐,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또한, 무의미한 수다를 즐기기보단 혼자 놀기를 택하는 나이 든 아줌마가 친구를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죠.

책방을 차려도, 중년이 되어도, 소통을 향한 갈망은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채 인생은 흘러갑니다. 그런 결핍이 저를 쓰게 하고 그리게 하는 거겠죠.

책방을 방문하는 손님을 손꼽아보면 일주일에 다섯 명도 안됩니다. 그마저도 책을 구입하시는 분은 한 명이 될까말까 해요.

가끔씩 정기적으로 방문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는데 아이들의 책을 여러권 사서 가시죠. 책방에는 그림책뿐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읽어도 좋은 소설책이 있고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과 에세이도 있답니다.

사람의 발길은 드믈지만 길냥이들은 매일 책방 출근 도장을 찍어요.

참치캔을 좋아하는 삼색이는 가끔씩 참치 사료를 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해요.

삼색이는 책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렇게 책방 앞을 지키기도 하죠. 그럼 마음이 따뜻해져요.

모기랑 벌레가 책방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았지만 삼색이의 호리병 같은 뒷모습이 귀엽고, 책방 안으로 발을 들여준 게 기뻐서 그냥 문을 열어 두었어요.

어제는 몸집이 작고, 겁에 질린 듯 동그란 눈에 마른 다리를 가진 새로운 아이가 왔어요. 제가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우니까 그제야 사료를 먹을 정도로 경계심이 심했어요.

고등어 고양이도 오고, 제가 블랙 펜서라고 이름 지은 날쌘돌이 검은 고양이도 가끔 밥을 먹으러 와요.


책방을 오픈한지 7개월째에 접어드는데 손님에 대한 얘기보다는 길냥이에 대한 얘기가 더 많죠? 매일 문을 여는 게 아니고 책방 안에서 음료를 팔지 않다 보니 손님들이 잘 안 오는 것 같아요.


김포에 있는 또 다른 책방은 방학 중에도 책방을 찾는 엄마와 아이들로 북적였다고 들었어요. 아마도 음료를 마시며 시원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좋았을 거예요.그 책방은 음료도 팔고 공간도 제 공간보다 두 배 나 넓으니 즐거운 방앗간으로서 책방이 자리한 것 같아요. 그것도 참 좋은 일이죠.


제 경우엔 책방겸 작업실이니 매일 길냥이들만 오는 조용함도 괜찮아요.

그리고 책을 팔아서 얻는 수입은 크지 않다는  알기에 손님이 많은 책방의 소식으로 속상해하지 않으려 해요.


비록 한산한 책방이지만 제가 꾸려놓은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북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이 있다는 몇 분이 아이들과 함께 다녀간 적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책방에 오래 머물며 한 권 한 권 꼼꼼히 책을 둘러보는 걸 보면서 내 큐레이션이 괜찮은가 보다  생각했어요.

책방을 방문해주신 손님으로부터 다른 책방에는 없는 독특한 책들이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는 것도 기쁜 일이에요. 저만의 안목이 있다는 말 같아서 으쓱하게 돼요.

책방이 예쁘고 따뜻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있어요. 제가 꿈꿔온 공간이에요. 언젠가 저도 이런 공간을 갖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누군가의 꿈이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방 운영에 의미가 더해져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마지막에 느낀 그 뿌듯함을 저도 느끼게 되죠.

책방 시나몬베어에 꾸준히 오는 발걸음엔 길냥이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있어요.

아이들은 책이 가득한 공간이 주는 마법에 빠지는 것 같아요. 책방에서 제가 하는 독서수업은 책 읽기가 즐거워질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태도를 배우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독서 수업에도 자부심이 있어요. 제 수업은 다른 책방에는 없는 차별점이자 저의  정체성이기도 하죠.

책방응 오픈한지 7개월째.

독서 수업을 통해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고, 손님은 거의 없지만 매일 찾아오는 길냥이들이 있어요.

조금은 외롭지만 나다움으로 인생을 채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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