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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Apr 04. 2024

깨진 차 수저

소예일상

그녀와 나는 취향이 비슷했다. 고양이, 봄날, 조용한 창가, 귀여운 소품, 빈티지한 그릇, 살림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까지.

우리는 같은 일을 했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까지 비슷했다. 그렇게 십오 년 정도 인연을 이어오다가 결국 어느 날, 끊어졌다.


그녀의 지독한 수다와 꼰대질에 점점 질려서 질식 상태에서 조용히 연락을 끊었다.라고 내 머릿속에는 적혀 있다.

한 번 갈등이 있었고 대화를 나눴지만 그 뒤에도 만나면 불편하고 돌아서면 불쾌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연락을 끊자 그녀 역시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는 듯 굴어서 끊어졌다.


한편으로는  내 불행이 인연을 끊게 만든 건 아닐까 자책도 하고 있다.

내가 만약 무난하게 살아왔다면 그녀에게 집중하지 않았을 테고 그렇게 마음을 주지 않았을 텐데.

그럼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오늘 설거지를 하다가 실수로 그녀가 나에게 선물한 차수저를 깨뜨렸다. 그녀와 나의 상태를 차 수저가 증명해 보인 것 같았다.

그녀 역시 너그러운 남편과 교인들과의 잦은 친목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깨뜨렸겠지. 사실 이런 생각조차 구질구질하다.

깨진 수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음에는 이보다 튼튼하고 예쁜 차수저를 장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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