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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Sep 30. 2024

순례주택

책방 시나몬베어

순례 주택/ 유은실 소설 / 비룡소 2021

75세 김순례 씨가 주인인 빌라의 이름은 순례 주택입니다. 순례주택은 깨끗하고 월세가  저렴하고 입주민들끼리  나누는 훌륭한 옥상  정원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모두 순례주택의 입주민이 되고 싶어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순례 씨는 물을 오염시키기 싫어서 염색을 안 하고,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작동법을 열심히 배워서 빨간 머리 앤을 수없이 돌려보고, 중학교 교과서로 국어 공부를 하며 시를 읽고 또 읽습니다.  알뜰히 살며 모으고 있는 재산은 모두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증하겠다고 사인했습니다. 국경이 없다는 말이 좋아서요.

그런 순례 씨의 최측근은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오수림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할머니와 손녀의 유대감 같은 게 아니라 같은 공간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존재로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보살피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고 나니 영화들이 떠올랐습니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라는 문장에서는  영화 ‘미성년( 김윤석 감독 2019)’이 떠올랐습니다. 어른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세련된 유머 코드가 서로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책 속에서 뭉근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주인공 순례 씨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이와 영화 ‘캐롤’의 캐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의 최측근이 되고 싶고, 내 이웃이면 좋겠고, 이 세상에 좀 더 많이, 곳곳에 존재하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인간형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은 퍽퍽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의 무례함에 화가 나고,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에 혐오를 느끼게 됩니다. 왜 미운 사람은 더 미워지고, 싫은 사람은 여전히 싫은건지 모르겠어요.

그럴 때 순례 주택을 생각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고, 바라던 이상향, 현대판 무릉도원일 수도 있는  곳.

순례 주택에도 뻔뻔하고 한심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더불어 다정하고 솔직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합니다. 그래서 꼴 보기 싫은 인간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런 작가의 마음씀이, 그 온화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문득, 75세의 순례 씨는 작가가 되고 싶은 미래의 할머니상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저 역시 그러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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