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스몰 토크

50대 한국 아줌마

소예일상

by 은채

이사 온 동네의 이곳저곳을 탐색하면서 7월과 8월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했다.

김포에서 했던 독서 지도를 이어서 하고 싶지만 책방이나 주택이라는 공간이 없으니 홍보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수업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수업이라는 자부심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눈으로 보여줄 공간이 없다면 입시 교육에 초점을 맞춘 엄마들이 나에게 자녀를 맡길까 싶었다. 게다가 내가 사는 도봉동은 서민적인 동네여서 내 수업의 가치를 지불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은 대형 회사의 방문 독서 지도 교사로 일하며 주변 동네 분위기를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우리 독서논술과 구몬 학습지 교사 면접을 봤다.

그런데 돌아가는 시스템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블로그에 올라온 특수목적 교사에 대한 비판적인 후기들을 곱씹어보니 무보수 영업과 형식적인 모임은 에너지 낭비였고, 쏟아야 할 열정에 비해 보장과 보수는 쥐꼬리만 했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돈은 적고, 보람도 없이 체력만 축날 것 같았다.

'이미 내가 만들어놓은 수업 프로그램과 교육관은 전혀 쓸모가 없겠구나. 그걸 응용하려면 역시 창업을 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나에겐 월세를 내며 창업을 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올해는 그림책 더미북 스케치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 1순위였다. 그래서 장기 알바를 구해보기로 했다. 당근에서 아동 미술 교사, 방과 후 교사, 어린이 논술 교사, 한방 카페 서빙 등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면접을 본 구몬에서도 50대는 지원받지 않지만 경력을 봐서 지국장 추천으로 합격시켜 준다고 했었다. 대부분 40대까지만 원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한창 크는 시기라서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때인데 말이다.

나는 어딘가에 지원을 해도 채용되기 어려운 50대의 한국 아줌마였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40대로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고, 나름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자부했는데 나는 그냥 50대 한국 아줌마였다. 어린이집과 책방과 방문 지도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의 지성과 감성을 반짝이게 했던 나는 스스로를 경쟁력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지난 시간은 '계약직으로 일해봤고, 창업도 해본 50대'로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설거지, 청소, 신생아 돌봄, 등하원 도우미, 텔레마케터라면 50대여도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근사해 보이는 '교사'라는 직업명을 유지하고 싶다면 면접을 보고 온 곳으로 출근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 안의 북소리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둥둥둥...

그럼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전문적이면서 60이 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김포까지 운전을 해서 평소에 조언을 구하던 이웃 언니에게 갔가. 언니에게 밥을 사면서 자문을 구했다. 나는 그녀의 연륜과 성격, 직업과 사고방식을 존경했다. 언니는 나에게, “우리 나이에는 돈을 버는 것 뿐 아니라 새로운 인맥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언니를 만나고 오자 더 나이 들기 전에 전문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고민했던 간호학원에 등록했다.

나는 이제 일 년 동안 이론과 실습을 하게 된다. 가진 돈을 아껴 써야 하는 백수가 되는 것이다. 몸이 약해서 도전이 막막하고 벌써부터 피로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새로운 분여에 도전하는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겉으로는 백수이지만 이건 분명 나를 위한 투자가 될 거다.


새로운 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 마음대로 상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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