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토크
하늘이 파란 가을날,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와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한 사람을 같이 좋아했었다. 드라마 ‘백 번의 추억’에 나오는 영례와 종희처럼.
우리가 동시에 좋아한 그를 나는 A라고 불렀다. 그가 A형이기도 했고, 공부, 운동, 외모 모든 면에서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러니까 내가 가장 에이스라는 거지? ” 하며 나를 향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아닌데? 너는 A형, 나는 B형이라서 그런 건데? “하며 아닌 척했었다.
드라마 속 재필이는 영례를 좋아했지만 내 현실의 그는 종희같은 나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내 친구는 첫사랑의 열병으로 괴로워했다. 따뜻한 보살핌이나 사랑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무언가를 제대로 가져본 적 없었던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친구에게 물었었다.
‘ 너는 다 가졌잖아. 아무것도 없는 내가 A를 가졌는데 그게 질투할 일이야? “
내 말은 내 친구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가장 갖고 싶고 가장 소중한 사람을 못 가지잖아!”
나에겐 남자보다 내 단짝 친구가 더 소중했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A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당시의 나는 사실 사랑받는 게 두렵기도 했었다. 늘 냉대만 받다가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니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왜 잘해주는 걸까? 이 몰랑몰랑한 감정의 정체는 뭐지? 저렇게 잘난 애가 나처럼 시시한 애를 왜 좋아할까? 하며 달아날 궁리를 자주 했었다.
이젠 모든 게 추억이 되었다. 백 번쯤 돌려본 영화처럼 그립고 아쉽고 아련하고 슬프면서 아름다운 추억.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헤어졌던 A와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다시 만났다. 언제나 내게 얄궂었던 신은 결국 친구만 내 곁에 남겨 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에이스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A를 다시 만나서 웃으며 얘기하고 싶다고.
네가 그렸던 너의 중년과 지금의 너는 어떻니?
네가 붙잡은 너의 꿈은 아직도 네 가슴을 뛰게 하니?
냉소적이었던 너도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향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니?
지금의 너는 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니?
부질없는 질문들은 매번 허공에서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