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토크
2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대표 결혼정보 회사 중 두 곳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남자를 만날 노력을 안 한다는 친구들의 핀잔, X를 향한 복수심, 안정을 향한 조바심 같은 것들이 뒤섞여 나는 김포에서 강남까지 운전을 해서 달려갔다.
내가 50이라서 결혼 정보 회사 가입비는 4백만 원대였다. 49살에만 왔어도 3백만 원대였을 거라는 말로 나의 상품 가치는 시작되었다. 최소 다섯 번의 미팅은 있겠지라는 내 예상과 달리 소개받는 사람은 두 명 정도였다. 매니저는 오픈 채팅방 같은 곳에서 데이트 지목을 받으면 그 밖의 기회가 한두 번 더 생길 수 있다고 했다.
‘450만 원에 두 번의 미팅이라니! 그 돈이면 근사한 곳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겠는 걸. 네 번도 갈 수 있지 않을까?’
노년의 불안하고 외로운 미래를 강조하는 매니저를 앞에 두고 내 머릿속은 여행지를 향해 날아갔다. 혼자서 여행하는 상상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나를 상담한 매니저들은 또래나 연하를 소개받을 일은 절대로 없음을 나에게 확인시켰다. 남자들은 자신보다 최소 여덟 살 아래인 여성을 소개받길 원한다고 했다.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다.
나에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오빠가 둘이나 있는데 결국 그 또래들을 만날 거라고 확인받으니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가부장적인가. 그러고 보면 X도, 아버지도 모두 자기밖에 모르고, 속 좁고, 숨이 콱콱 막히게 하는 유형이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어쨌거나 상담은 받았다. 친구들에게 결혼정보 회사의 썰을 풀어주면 다들 가격에 놀라고, 57~ 60대 초반이라는 남자의 연령대에 놀랐다. 그리고 나에게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누군가를 못 만나고 있는 거야.”라는 말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상담소를 찾아가 토요일을 허비했던 그때의 나는 다소 조급하고 충동적이었다. 만에 하나, 그때의 내가 누군가를 만났다 해도 뭔가에 쫓기듯 잡은 손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 같다.
오늘 자동차 정비소에 다녀왔다. 그런데 결제를 하고 나서야 바가지 썼다는 걸 알았다. 이런 때 남자친구라도 있었으면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조금 분했다. 하긴 남자라고 자동차에 관해 다 아는 건 아닐 거다.
김나영이랑 결혼한 마이큐가 아무 날도 아닌데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는 모습이 TV에 나왔다. 부러웠다. 취향이 분명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짝을 찾은 것도, 서로에게 다정한 것도 부러웠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들로 쉽게 쓸쓸해졌다. 요즘엔... 뭐랄까... 갈망하기 지쳤다고 할까? 가질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의 길을 걸어가는 중이라고 할까? 아니면 너무 바빠서, 혹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쓸쓸함을 떨쳐내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성숙해졌다는 거다. 내 공간과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쉽게 행복해진다는 거다.
나는 아파트 입구에 핀 두 송이 장미를 볼 때마다 행복해진다. 휴가를 나온 아들의 뒷모습은 너무나 듬직해서 눈이 부시고, 자신의 젊음을 누리는 딸은 반짝거려서 행복하다.
내가 애정하는 카페가 5분 거리에 있다는 건 폴짝 뛸 정도로 기분 좋은 일이다. 그곳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따뜻함은 그 카페 앞을 지날 때마다 재생된다.
내가 한 요리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우리 집 고양이는 참으로 우아하고 똑똑하고 귀엽고 부드럽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도 나만의 특별한 행복이다.
물론 여기저기 아프고 3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를 받고, 지난 주에는 CT도 찍었다. 자녀의 결혼식장에서 X와 그의 가족들을 볼 생각을 하면 얼굴이 찌푸려지고(그때 내 옆에 듬직한 남자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인 가구로 살아갈 미래는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 삶이 아름답다.나는 남자 없이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