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를 만드는 업무 대화 습관
어차피 일은 사람이 합니다. 내가 영업해야 하는 대상도, 협업해야 하는 동료도, 결재받아야 하는 상사도 다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감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감정을 느끼니까요. 일이 진행되게 하려면 회사 안이든 밖이든 네트워크, 즉 사람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고착 상태였던 일이 인맥이나 친분 한방에 해결되는 경우, 의외로 많습니다.
사내 정치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평소에 나누는 대화나 사소한 커뮤니케이션 습관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업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거창한 방법론은 아니고, 저도 엄청 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가 평소에 일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짠! 하고 알려주는 것보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자주 공유하는 게 좋습니다. 내가 확인하기로 했던 사안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 지금 작업 중인 디자인의 결과물은 언제쯤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지를 상대방이 묻기 전에 먼저 알려주세요. 업무적 유대 관계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면서 내가 여전히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신호를 자연스럽게 줄 수 있습니다. 이때 아무런 진전이 없이 계속 같은 메일을 보내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적어도 지난번 보냈던 메일 이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어떤 부분의 진전이 있었는지, 하다못해 늘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내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라도 어필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나 ‘고맙습니다’는 언제나 지나치지 않습니다. 미팅을 끝 마칠 때, 상대방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났을 때 감사의 말을 또박또박해보세요. 저의 경우 출근길 닫혀가는 엘리베이터를 잡아준, 같은 회사지만 누군지 모르는 분에게 크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한 적이 었었는데요, 얼마 뒤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서 그 분과 딱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 미팅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꼭 이렇게 드라마 같은 일이 아니더라도, 감사는 언제나 좋은 결과로 돌아옵니다. 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요.
습관적인 사과는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계속되면 정말 필요할 때 하는 사과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맙니다. 심지어 내가 잘못한 게 아닌 데도 마치 내 잘못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회신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꾸 번복해서 죄송합니다.’ 처럼요. 일 할 때 내 실수로 상대방에게 사과할 경우가 많았나요,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많았나요? 상사의 의사결정이 늦어진 경우, 회사의 프로세스 상 절차가 오래 걸리는 경우 등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마세요. 굳이 하고 싶다면 이메일이나 대화 말미에 ‘이러이러한 상황이니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린다’ 정도로만 하는 게 좋습니다. 반복되는 낮은 자세는 결국 나를 불리한 위치에 두게 만들 뿐이고, 장기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이거 은근 잘 안되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일할 때만큼은 경어체를 써 주세요. 경어는 감정보다 이성을 앞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여기 아주 예민한 상황이 있습니다. A팀의 김대리가 실수한 일을 B팀의 팀장이 발견한 겁니다. 평소 김대리와 B팀장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B 팀장은 김대리에게 “야, 너 이게 뭐야. 이거 왜 이랬어?”하고 문제를 지적하죠. 그런데 그 대화를 김대리의 상사인 A팀 팀장이 들은 겁니다. A팀장이 김대리의 실수를 알았다손 치더라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겁니다. 팀과 팀 사이에서 일하다가 벌어진 일을 밑도 끝도 없이 공격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거든요. 만약 B 팀장이 경어로 ‘김대리님, 지난번 그 일 왜 그렇게 되었죠?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하고 물어왔다면 어땠을까요?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일에 대해서 만큼은 서로 존댓말을 씁시다.
여기 리액션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펄쩍 놀라며 고개를 끄떡이곤 하죠. 그런데 얼마 뒤 같은 이야기를 하는 데 마치 처음 듣는 듯 리액션해오면 말하는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리고 이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내야 하는 미팅 자리에서는 아무리 상대방이 이야기를 해도 말은 말이요 물은 물이고 내 머릿속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맴돌기 쉽죠. 그러다 보면 그 미팅 자리는 대화는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과녁을 쏘아대는, 승자도 패자도 시상식도 없는 이상한 경기가 되고 맙니다.
원하는 바가 있을수록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세요.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떤 요소는 불가항력이지만 또 이런 부분은 타협의 여지가 있겠구나 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 흐름 속에서 ‘내가 당신의 상황을 이 만큼 이해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부분을 양보할 테니 대신 당신은 내 요청을 이 만큼은 들어줄 수 없겠는가?’하는 식의 제안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뜬금없이 “안녕하세요. XX팀의 김 팀장님으로부터 소개받아서 전화드렸습니다.”라는 전화를 받으면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나를 소개해준 김 팀장님은 어찌 되었든 일을 되게 하고자 좋은 의도로 내 번호를 알려줬겠죠.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상대방이 내게 뭔가 부탁하기 위해서 전화를 해왔다면, 그 부탁은 거절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아무리 급한 업무 상의 일이더라도, 누군가의 연락처를 알려줄 때는 반드시 연락당하는 사람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게 예의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요청이 있었는지, 이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식으로 고려해주면 좋을지까지 미리 이야기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너무 급해서 이미 연락처를 알려준 상황이라면 최소한 나중에라도 상황을 설명하세요.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도 가볍고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분위기를 환기할 오픈 토크가 필요하다면, 공공의 적을 찾아보세요. 이때 절대 회사 내부 사람이나 건너 건너 아는 사람, 하다 못해 연예인 욕도 안됩니다. 특정 사람의 험담이 아니라 하릴없는 넋두리가 좋습니다. “기사 보셨어요? 가을인데 다시 미세먼지가 심해진다고 하네요. 게다가 중국발이래요.”처럼요. 만약 평소에 상대방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상황인지를 주의 깊게 들어 알고 있다면 그 포인트를 활용해보면 더 좋습니다. 상대방이 곧 유치원에 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뉴스에서 주워들은 대로 국공립 유치원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래서 옆 팀의 아무개가 조카의 유치원 추첨을 위해 휴가를 쓰는 일도 있었다는 둥, 상대방이 관심 있는 그러나 일과 관계없는 공공의 적을 화제로 올리는 겁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우리는 같은 적을 가졌다는 동지의식과 함께 내가 당신에게 제대로 관심을 쏟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내 상사로 있는 날이 온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이 시점에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관계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아주 미묘한 뉘앙스 차이로도 대화의 성격을 바꿀 수 있고, 그게 쌓이면 나에 대한 이미지가 됩니다. 작지만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습관으로 좋은 관계를 쌓아 가보세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