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할 당시엔 여사원이 결혼을 하면 곧 직장에서의 퇴직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즐거웠던 짧은 사회생활을 끝내고 나는 결혼의 길을 선택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나의 꿈과 욕망의 길을 포기했다. 나는 체력적으로도 가사일과 사회생활을 동시에 해 낼 자신이 없었거니와, 나의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시느라 방과 후 학교에서 돌아와도 엄마가 안 계신 집이 무척이나 무료하고 허전했었다. 나는아이들이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하며 간식을 챙겨주고 알뜰살뜰 즐겁게 살림을 하는 평범한 주부의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 후 처음부터 시어머니와 시누이랑 같이 살아서 신혼의 달달한 로망은 사치였고, 그와 당연히 나눠야 할 결혼생활에 대한 계획도 대화도 없었다. 또한 내가 자라온 친정과 너무나 다른 것들에 대해 혼자만의 내적갈등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남편은 물론 시집식구들의 무심함이랄까.. 어떤 높은 자존감과 우월감?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간혹 나를 생각해 주는 크고 작은 나름의 배려가 오히려 당혹스럽고 몹시 불편했다.
첫아이를 낳고 심신이 더 약해진 상태에서 스트레스로 몸이 많이 아프게 되면서 분가를 했지만 몇 발자국 안 되는 가까운 곳이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은 탓에 혼자 아이를 돌보기가 힘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조금씩 나아져 다시 합가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첫돌이 지난 후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결혼 5년 만에 자연스럽게 멀리 분가를 하였다.
약 8년간의 해외생활은 꿈만 같았다. 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간직한 특별하면서 평온한 일상을 누린 행복한 시간이었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퇴직을 하고 사업과 투자를 하면서 주부로 안정적인 나의 삶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많은 것이 바뀌어 버렸다.
내가 생각하고 지향하는 자존감과 그가 지닌 자존감의 차이, 게다가 남다른 자신감과 욕심은 결국 끝 모를 나락의 공포 속으로 던져졌다.
결혼을 하면서 경제활동에 대하여 그를 전적으로 믿었고 큰 욕심부리지 않고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며 무난하고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욱 원망스러웠고 억울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생활에 여유가 생길 시기에 빚더미 속에서 삶이 한 줄기 빛도 들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지만, 결혼 후 단절된 긴 공백의 시간은 발바닥에 강력한 접착제를 발라 놓은 듯 다시 사회 속으로의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감이 없었다. 머릿속이 짙은 안갯속처럼 전혀 나아갈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지만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불안함을 끌어안은 채 무기력한 나날이이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