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코노지에서’ -술집 '다루마'
그 날은 아침부터 그랬다. 내딛는 걸음마다 후회와 자책. 드라마처럼, 영화처럼, 생각처럼 흘러가 주지 않는 현실의 시나리오가 섭섭했다. 서러운 마음이 계속 피어올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약속은 저녁 7시. 오전 8시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도쿄의 한 대학 캠퍼스 카페에 몇 시간을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왔다가 사라지고, 만났다 헤어지고, 도란도란 소리가 밀려왔다 쓸려갔다. 낯선 환경에 나를 놓아두는 건, 상념이 많을 때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이다. 낯선 것에 집중하며 생각들을 지운다. 그런데 약효가 길지 않다. 카페를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다른 곳은 도쿄 고토구 기요스미 정원. 하늘은 맑았고, 입김이 선명하고, 봄은 아직이다. 이따금 연못의 잉어들이 뻐끔거리는 걸 무시하며 몇 바퀴를 돌았다.
때를 조금 넘겨 근처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완(볶음밥)을 시켜 점심을 했다. 문득 고개를 들면, 도쿄 스카이트리가 꽤 가까이 보였고, 나는 도쿄에 와서 처음 와본, 정확하게는 태어나서 처음 와 본 동네를 계속 걸었다. 세 시가 넘어가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고, 핸드폰 배터리는 간당간당. 저녁 약속까진 아직 몇 시간이 남았고, 구글 지도를 봐야 했다. 헤매다 들어간 곳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전집과 UFO 관련 서적이 빼곡한 기묘한 북카페. 따뜻한 차를 두어 번 시켜 마셨고 충전을 했다.
간신히 평화가 찾아온 건, 밤에, ‘코노지(コの字)’에서였다. 기요스미 공원 근처 허름한 술집 ‘다루마(だるま)’. 나중에 찾아보니 드마라‘고독한 미식가’와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에도 나온 곳이었다. ‘코노지’는 일본어 가타카나 ‘코(コ)’자 -한글의 ‘ㄷ(디귿)’자의 좌우를 돌려놓은 모양-형태 카운터가 있는, 서민적 정취가 풍기는 일본 술집이다. 가게 주인이 이 ‘ㄷ자’ 속에 들어가 음식과 술, 말을 건네고, 손님들은 나란히 앉아, 모두 같은 눈높이에서 주인의 응대를 받는다. 일면식 없던 사람들이 점점 기분 좋은 눈빛이 되고, 다시 서로를 기분 좋게 바라본다.
(여전히 많은 일본 맛집들이 그렇지만) 다루마엔 영어나 한글 메뉴는 없다. 일본인도 종종 읽기 힘든 한자 메뉴가 눈 닿는 벽마다 ‘부적’처럼 가득하다. 나는 메뉴판을 열고 고개를 숙여 골몰하는 것보다, 얼굴을 들고 시선을 멀리해 메뉴를 읽는 이런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드는데, 반사적으로 또 약간 강제적으로 사람을 열리게 하는 어떤 힘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서다. 마음이라는 건, 정말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요물이라, 어쩔 땐 외부의 조치가 절실하니까. 물론 그 부적 같은 메뉴를 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늘 ‘코노지’에 동행한 일본인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이날은 큼직한 제철 굴과 막걸리 빛을 띠는 ‘니고리자케(にごり酒)’를 마셨다. ‘니고리’는 ‘남아있는 것’을 뜻한다. 술에 남은 것, 그러니까 이 술은 엉성한 천으로 걸러내 먼지처럼 무언가 뿌옇게 남아있는 탁한 술이다. 우리의 탁주와 비슷하다. 그날 마신 니고리자케는 눈처럼 희었다. 기후 현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갓쇼즈쿠리’라는 일본 전통 가옥이 남아있는(세계유산이라고 한다) ‘시라카와고’라는 작은 마을에서 빚는 술이다. 이름도 그대로 ‘시라카와고(白川鄕)’. 그러니까 그 밤, 나는 흰 눈을 마신 건가. 흰 강을 마신 건가. 아직 찬 바람이 기세등등하던 2월. 겨울을 꼴깍 꼴깍 삼켰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낯선 동네에서 방황하며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조금씩 녹았다. 역시 술인가. 역시 맛있는 음식인가. 아니, 역시 사람인가. 대책 없는 의기소침과 불안에 휩싸일 때 말이다. 조금씩 그걸 걷어내 줄 수 있는 건, 빤하지만 역시, 사람에겐 사람 뿐인가 싶었다. 이날 다루마 안은 왁자지껄했고, 술잔을 든 사람들은 즐거워했고, 온종일 울 것 같았던 내 얼굴에 미소가 폈다.
일본의 연호는 2019년 4월부터 ‘레이와’다. 지난 연호 ‘쇼와’(1926~1989)나 ‘다이쇼’(1912~1926)에 ‘후우’(풍·風) 라는 말을 붙여 일본에선 예스럽고 정겨운 느낌이 든다는 뜻으로 쓴다. 한마디로 ‘레트로’스럽다는 거다. 코노지는 그런 곳이다. 화려하고,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한 요즘의 술집과 정반대다. 드마라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에서 헤이세이(1989~2019)에 태어난 요시오카(아사카 코다이)가 코노지 술입 입구에서 종종 하는 말도 "여기 완전 ‘다이쇼’ 풍이네" "꽤 ‘쇼와’스럽네" 등이다.
홍보대행사 직원 요시오카는 자유분방한 회사 후배 때문에 매일 속을 끓인다. 레이와(2019~)의 신입사원은 다 저런 것인가 하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다 대학 선배이자 코노지 덕후인 게이코(나카무라 유리)의 권유로 코노지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며, 엉켜있던 마음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하지만 요시오카가 코노지를 처음부터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코노지가 촌스럽고 서민적이라고 해서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그런 장소도 아닌 듯 하다. 위압적이거나 벽이 높다기 보다는, 어딘지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것만 같은 묘한 기분, 매력적이면서도 긴장감 백배인 그것을 견뎌야 갈 수 있는 곳이라서다. 저들의 시간에, 저들의 세상에, 내가 끼어들어 갈 수 있을까. 그래도 좋을 까. 매일매일 아주 작은 것에, 쓸데 없는 자격지심이 생기는 나는, 코노지의 문을 못 열고 머뭇거리는 요시오카가 무척 나 같았다. (다행히 아는 게 없어 인생에 그 어느 때보다 용감했던 ‘도쿄의 이방인’은 코노지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이코에게 추천받아, 코노지에 도전하는 요시오카. 첫 날엔 ‘역시 돌아갈까’하며 뒤돌다 한 무뚝뚝한 남자와 부딪힌다. "어이, 왜 안 들어가? 자리가 없나?"라는 말에 압도당해, 훅 하고 코노지 안으로 밀려들어 가고 만다. 이 다음 장면은, 아아, 이런. 이럴 수가. 내 얼굴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어딘지 안도하는, 요시오카의 표정, 그것과 똑같았다. 그날 도쿄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 에, 나를 괴롭히던 ‘나’가, 추운 겨울이 끝나기를 바라며, 눈 같은 술을 삼켰던 바로 그 ‘다루마’가 요시오카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다루마가 반갑고, 도쿄가 그립고, 그날 마신 술이 몹시 고픈 밤이었다.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도쿄와의 재회는 아직 요원하고, 엉뚱하게도 나는 요시오카를 밀어 준 아저씨가 절실하다. 정말이지, 인생엔 이렇게 우연히 만나, 나를 압도해 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우린 때로 그냥 떠밀려서 어딘가로 가고 싶지 않나. 그렇지 않으며 내 의지로는 도저히 당도할 수 없는 그런 곳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요시오카가 다루마를 시작으로, 도쿄 곳곳에 숨어있는 코노지를 찾아, 일과 사랑, 우정, 그리고 사람 만나는 맛과, 술 마시는 그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확장해가는 이 드라마를, 나는 요즘, 공기청정기처럼, 호흡처럼 틀어놓는다. 지글지글 안주 만드는 소리, 또르르, 차르르, 맥주 따르는 소리, 후르륵, 흡 하고 술을 들이키는 소리. 캬 하는 게이코의 감탄사, 우마이!(맛있어!)라고 외치는 요시오카의 담백한 마음으로, 내가 싫은 날, 내가 나한테 섭섭한 날을 견딘다.
아쉽게도 한국엔 (내가 찾아본 선에서는) 코노지가 없다.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를 셀 수 없이 반복해 보며, 그날 밤, 코노지에서 마신 흰 눈을 또 세어본다.
*코노지 다루마(だるま) : 〒135-0022 東京都江東区三好2丁目17−9
오후 5시에 문을 연다. 메뉴 시키기가 어렵다면, 추천으로 주는대로 달라고도 한번 해보자. 아니면 드라마 '오늘 밤은 코노지에서'와 '고독한 미식가'로 예습을. 코(コ)자형 카운터 뿐만 아니라, 마루에 올라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고, 4인 식탁도 여럿된다. 다루마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걷기 좋은 기요스미 정원이 있고, 반대 방향으로는 도쿄도 현대미술관도 있으니 가기전에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블루보틀 커피 키요스미 로스터리&카페 를 비롯해 동네 곳곳에 근사한 로스터리 카페, 또 개성 넘치는 북카페도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