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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Nov 28. 2021

도쿄에선 누구나 편의점 인간이 된다

-소설 <편의점 인간>과 나의 편의점들 

*이 글은 브런치북 <인생에 한번은 여자혼자 도쿄>에 실린 후 매거진 <그녀들의 도쿄 리스트>를 위해 재발행됐습니다.  


"내 몸 대부분이 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잡화 선반이나 커피머신과 마찬가지로 이 가게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무라타 사야카, 소설 '편의점 인간' 중에서)

 

 ‘도쿄’와 ‘편의점’은 세상에 출시된 언어 중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 중 하나가 아닐까. 세계에서 편의점이 가장 많은 도시. 그래서, 첫 끼는 편의점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5분 거리에 있는 세븐일레븐(집 앞 로손을 못 보고 굳이 길을 한번 건넜다)에서 사 온 만두를 먹었다. "국산 고기와 야채가 들어있는" 만두 5개가 들어있는, ‘야키교자(焼き餃子)’는 봉지째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된다. 일본 여행을 하면 꼭 한 번은 먹었던  ‘한 입 교자’랑 비슷하다. 군침이 돈다. 어느새 난 계산대 앞에.

도쿄입성 후 첫 끼는 편의점 군만두. 완벽하다.  

*&^%^&$#@#$%#$%?? 

네? 뭐라고요? 동남아시아일까. 아니면 남미. 여하튼 외관상 일본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편의점 직원의 일본어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도 그도 당황해 멈춰선 순간이었다. 서로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 몇초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렇다. 우린 다 이방인이니까. 돌이켜보면 몹시 흥미롭고 또 쓸쓸하기도 한 장면이다. 일본인이 아닌 두 사람이, 여기 지금 이렇게 도쿄 한복판 편의점에 마주 보고 섰다. 누구의 일본어가 서툴러서 이리 서로 쳐다보고만 있게 된 걸까. 나는 내 귀가 부끄러운데, 그도 매우 미안한 표정이다. 아마 자신의 서툰 일본어 발음 탓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라 생각할 수도.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나를 당연히 일본인이라 여겼을 수도. 

고백하자면 도쿄 두 번째 끼니도 편의점이었다.  자신감이 붙어서, 도시락 갯수도 늘었다.  

여하튼 무사히 만두를 샀다. 나오다가 아쉬운 맘에 벚꽃그림이 알알이 박힌 핑크 색 스타벅스 편의점용 음료 ‘딸기 젤리와 벚꽃 초콜릿’(이게 가능한 조합일까 의심스럽지만)이 들어간 우유 음료를 집어 들었다. 벚꽃이 피는 봄 시즌에만 판다고 하니, 호기심 충만한 도쿄 생활자는 도전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의심이란 건, 매우 논리적인 뇌작용에 의한 것이다. 아, 그것은 좀 많이 안타까운 맛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맛. 다신 만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 봄, 도쿄 스타벅스에선 벚꽃 후레이크(가능합니까?) 라는 걸 넣은 라떼도 팔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보니 집에서 30초 거리에 로손이 있었다. 시야 좁은 자신을 몹시(?) 자책하고(배가 많이 고팠으니까!) 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한숨 돌리며, 포장만큼은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스타벅스 벚꽃 우유’를 들이켜고 있자니, 소설 ‘편의점 인간’ 속 후루쿠라가 떠올랐다. 편의점의, 편의점에 의한, 편의점을 위한 ‘인간’.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변변한 직장생활을 해본 적 없고,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십 수년을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거대한 도시, 24시간(요즘은 단축 영업을 하는 곳이 늘었지만) 불이 환한 편의점에서 일하며 후루쿠라는 겨우, 간신히, 사회의 일원이 됐다고 느낀다. 다른 직원들의 말투를 흉내 내며, ‘정상’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계산대에 손님이 왔을 때 울리는 차임벨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또, 일이 끝나면 편의점의 물과 음식으로 몸을 채우니, 그녀의 모든 것은 편의점으로 이루어진 셈. 완벽한 ‘편의점 인간’.


소설 <편의점 인간>의 한국어판 표지.

소설 ‘편의점 인간’은 무라타 사야카 작가가 18년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작품으로,  2016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30대 중반 비혼여성. 아침에 편의점 빵을 먹고, 점심엔 편의점 주먹밥을 먹고, 저녁에도 편의점 음식을 사서 귀가한다. 편의점 손님 응대 매뉴얼대로  일을 하는 그녀의 마음엔 묘한,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있다. 아마도 그건 ‘소속감’이라는, 사회화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바로 그것일 터. 후루쿠라는 편의점의 일부가 됨으로써, 저들이 말하는 ‘정상’에 가까워진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그녀에게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지문이 묻어있지 않도록 깨끗이 닦은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의 시작. 세계가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


집 앞 로손에서 가장 많이 산 건 닭튀김 가라아게군과 로손 pp상품으로 나온 맥주. 일년 동안 먹었으니 이들은 그냥 내 몸이다.. 

도쿄 첫 끼를 편의점 음식으로 때운게 어딘지 쓸쓸하고 남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일종의 ‘편의점 인간’이 된 기분으로 충만했다. 소설 <편의점 인간>은 후루쿠라를 통해 부속품처럼 전락한 현대인과 ‘정상’에 집착하는 ‘비정상적’ 풍경을 꼬집는 서늘함이 있지만, 그냥 내 맘은, 누가 봐도 ‘이상한 여자’, 소설 속 후루쿠라가 느꼈을 어떤 ‘안도감’ 같은 것에 더 가까웠다. 아주 약간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훅 내던져진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무사히 한 끼를 해결했다는 성취감.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내 풍경, ‘달그락’ 혹은 ‘딩동’하는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익숙한 소리. 별다른 일 없이 원하는 음식을 샀고, 횡단보도를 건넜고, 집에서 더 가까운 편의점의 위치도 확인했고, 방에 들어와 혼자가 됐고, 겨우, 드디어 ‘안심’했다. 도쿄가 도쿄 답게 나를 받아준 느낌. 낯선 도시에서 처음 존재를 인정 받은 듯한 묘한 기쁨. 아무도 아닌 내가, 무언가가 된 기분. 


 매일 편의점에 간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그리고 매일 먹는다.. 그 편의점 인간의 최후는..

편의점은 그런 곳이었다. 나 같은 이방인들이, 서툰 발음으로 응대를 하는 곳. 서울과 비슷한 물건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열돼 있는 곳. 서울에서는 비싸서 마실 수 없었던 캔맥주들이 절반 가격으로 나를 반기는 곳. 출근길 잘 차려입은 사람들도, 등교 길 학생들도 편의점 흰 봉지를 모두 한 손에 들고 나오는 곳. 그 사이에서 똑같은 흰 봉지를 받아 들고 나오면서, 내가 당신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잘도 감출 수 있는 곳. 그렇게 군중에 묻혀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발견했던 곳. (굳이 덧붙이면, 일본 밴드 레드윔프스와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티켓을 받으러 갔던 곳..). 외로운 날이면, 기간 한정 ‘호로요이’와 카레 맛 컵라면을 사서, 집으로 도망치게 해 줬던 곳. 서울에서 온  도쿄 생활자는 그렇게, 점점 더  ‘편의점 인간’이 되어 갔다. 


참고로,  다음 해 봄, 다시 만난 스타벅스 벚꽃 음료는, 믿고 걸렀다.. 

그러니까 벚꽃은 그냥 이렇게 보기만 하는 걸로..



*이 글은 2019년 3월~2020년 3월까지 1년간의 짧은 도쿄생활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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