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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Dec 02. 2021

여자, 도쿄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스탠딩 와인 바  

드라마 '도쿄여자도감'과 와인바 '아와'   

*이 글은 브런치북 <인생에 한번은 여자혼자 도쿄>에 실린 후 매거진 <그녀들의 도쿄 리스트>를 위해 재발행됐습니다.  


혼자 도쿄에 살게 된 여자 사람. 어디 가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라면 일터에서. 그렇게 일본인 혹은 다른 나라 친구들을 사귀겠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순수한(?) 학생도, 순수한(?)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나란 ‘닝겐’(인간). 현지 친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정답(이라고까지 말하긴 좀 그렇지만)은 ‘집 가까이에 있는 스탠딩 바를 찾아라’.


 집에서 5분 거리에 아자부주반 쇼텐가이(상점가)가 있었다. 난보쿠선 ‘아자부주반’ 역 출구에서부터 시작해 후지 텔레비젼과 모리 미술관, 전망대가 있는 롯폰기 힐스까지 길게 이어지는 거리. 그 한 가운데 아자부주반의 명소라고 할 만한 맛집, 술집, 카페 등이 에워싼 광장이 하나 있다. 이곳에 바로 테이블 너댓 개로 버티는(?) 스탠딩 와인바 비스트로 아와(Bistro Awa)가 있다. 영업 중엔, 문을 활짝 열어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모두들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마신다. 대부분 롯폰기 힐스 인근 직장인이거나, 동네 토박이, 그리고 해외 주재원으로 와 근처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관광객을 거의 볼 수 없는 곳. 손님들끼리 얼굴을 알고 지낼만큼 단골이 많고, 구조상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게 돼 있다.

아와의 기본안주(자릿세)와 스파클링 와인.

 어리바리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나서야 아와를 다니기(?) 시작했다. 오가면서 봤지만, 조금은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혼밥 하러 자주 가던 동네 어묵 바(그러고 보니 여기도 바)에서, 역시 혼밥 하러 자주 오던 한 손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것. “영어도 연습할 수 있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 네? 저는 일본어를 연습하고 싶습니다만. 아마도 일본인들 사이에선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도 알려진 모양이다. 하긴, 롯폰기는 한국의 이태원이나 용산과 비슷한 문화,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 아자부주반엔 각국 대사관과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우리도 한때 “영어 공부 하려면 이태원에 가라"고 하지 않았나.

아마존 오리지널로 볼 수 있는 도쿄여자도감의 공식 포스터.

 그래, 결심했어! 아와에 가려고 마음 먹으니, 괜히 야심 찬 마음가짐이 된다. 드라마 ‘도쿄여자도감’(2016)의 주인공 ‘아야’ 가 도쿄로 상경한 직후 거처를 모색하며, 선망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롯폰기의 고급 아파트를 고개를 꺾어 올려다 보던 장면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 ‘바’의 지정학적(?) 위치는 내가 친구를 사귀는 데에 적합한가를 두고 약 30초 정도 고민을 했다. 여기는 도쿄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한 미나토구 아자부주반이고, 이곳을 드나드는 손님들은 일본 자본주의와 욕망의 상징인 롯폰기 힐스에서 일한다. 아야의 맞선남이 했던 자부심 가득한 대사도 떠오른다. “저는 미나토구에서 나고 자라서, 미나토구의 대학을 나오고 친구들도 모두 미나토구 출신입니다. 아무래도 결혼은 미나토구 사람과 하는 것이….”

우리로 치면, "서초구(특별히 이 구에 어떤 감정은 없습니다. 그저 부촌의 상징으로서)에서 나고 자라서,  서초구의 대학(은 없지만)을 나오고, 친구들도 모두 서초구 출신입니다. 아무래도 결혼은 서초구 사람과 하는 것이…." 라고 말하는 꼴 아닌가. 그 바에 가면 혹시 이런 ‘어려운 분’만 가득한건 아니겠지.


 이왕 꺼낸 김에 잠시 드라마로 빠져들면, 아야는 아키타현의 시골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대도시를 동경했다. 대학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한다. 아야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모습, 즉 점점 더 도쿄의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풍경을 드라마는 그가 사는 지역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비교적 월세가 저렴한 산겐자야에서 도쿄생활을 시작해, 커리어를 쌓아가며 에비스와 긴자를 거치고, 결혼과 함께 고급 맨션이 많은 도요스로 이사하는 식이다. 내게 도쿄는 그냥 다 도쿄였는데, 이 드라마를 본 후 도쿄가 여러 개가 돼 버렸다. 도쿄 23구 각각을 둘러싼 욕망들,  어느 지역에 사는지에 따라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인간성보다 앞서는 부동산의 위력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반 다를게 없구나 하고..  

아와의 안주. 꼬치가 대부분. 맛있다. 저렴하다. 양은 적다.

 여하튼, 나는 아야도 아니고, 도쿄여자도 아니고, 미나토구 ‘엄친아’와 맞선을 볼 것도 아니고. 그냥, 도쿄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 조그마한 스탠딩 바에 들어가 술 한잔 시키면 되는 거고, 그러다 흥에 겨워지면 옆 사람에게 말을 붙이고, 그렇게 저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본다는 소박한 소망 하나를 이뤄내면 그 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아와에서 흥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A는 ‘대장금’의 이영애가 이상형이다.(응.. 대체 언제적 한드인가) B는 한국 여성 프로 골퍼들의 경기는 꼭 챙겨본다. 다들 왜 이렇게 잘하고, 왜 그렇게 이쁘냐고 묻는다.  C는 일본 광고회사 덴츠의 직원인데, 정말 바빠보였다. 회사 아니면, 아와에서 술 마시는 것 뿐인 듯 보였다. D는 무역회사에 다니며 취미로 스낵바(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스낵바를 운영하는 여성을 일본은 '마마상'이라고 부르는데, D는 내게도 마마상 아르바이트를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살짝 솔깃했다) E는 술에 취하면 모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영어로 말을 걸었다. 주로 내용은 "어릴 때 해외 생활을 오래 해 조금 ‘이상한’ 일본인이 됐다"는 푸념. 아와의 친구들은 매일 똑가튼 말을 반복하는 그녀를 참 잘도 챙겨줬다. F는 미나토구 토박이 노신사. 얼마전 정년퇴직한 한 유명대학 교수였다. 아와의 사람들은 한 번 안면을 트면, 일단 라인을 교환(일본에선 전화 번호보다 라인 아이디 교환을 흔하게 한다)한다. 자신이 바에 가는 날, 혹시 오는 사람이 없는지 묻거나 해서, 다시 만나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된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행사에 초대 하고, 초대 받기도 한다. 나도 D가 일하는 스낵바에 가서 와인을 몇 잔 마셨고(비쌌다), F가 주최한 소규모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다. (일종의 미나토구 남녀 교류회였는데, 별 성과(?)는 없었다.). C를 중심으로 여럿이 뭉쳐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아와에선 자주 송별회가 열렸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이니, 이번 주에 누가 귀국한대, 다음 주엔 누가 귀국한대 하며 단골들끼리 파티를 열어주곤 했다. 사실, 어묵 바의 그 손님(그러고 보니 이 분을 아와에서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말은 조금 틀렸다. 아와에선 영어보다 일본어가 더 많이 쓰인다. 파란 눈의 서양인들도, ‘뻬라뻬라’(유창하게) 일본어를 잘했다. 일본어 연습엔 (연애 다음으로) 술자리라고 하더니, 일본어 쓸 곳이 필요한 내게 매우 유익했다.

도쿄의 겨울 밤은 온통 아와로 각인돼 있다. 아마도 아와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겨울이 많이 추웠겠지. 활짝 열린 가게 문 만큼 활짝 나를 받아들여 줬던, 도쿄에서 친구 사귀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나에게 그 어렵다는 걸 무지 쉽게 느껴지게 해준 곳. 마음이 시끄러운 날엔 그걸 잠재워주고, 너무 고요해 무섭던 날엔 작은 소동을 피워주던 곳. 가끔 그 순간들이 몽글몽글 비눗방울처럼 부풀어 올랐다 꺼지곤 한다.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오겡끼데쓰까아아아아.


참고로, 아와는 일본어로 ‘거품’이란 뜻이다.  




*비스트로 아와 Bistro Awa. 아와(泡)는 거품이란 뜻. 100종류 이상의 스파클링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와인 바이니, 여기서 아와는 술에서 생기는 바로 그 거품을 뜻하는 것 같다.  이 가게에서 만나 거품처럼 뭉쳤다 꺼져버리는 사람들이 풍경을 빗대도 어색하지 않지만. 아와에 입장하면, 필수로 시켜야 하는 기본 안주(견과류 혹은 과일)가 있다. 인당 300엔. 일종의 자릿세 개념인데, 다양한 와인과 사케를 400~600엔(글라스 기준)이면 맛볼 수 있는 곳인 데다가, 안주나 요리도 비싸지 않다.  자릿세가 전혀 아깝지 않을 것.  1인당 1500엔~2000엔이면 충분히 마시고, 충만하게 놀다 나올 수 있는 곳. 가장 가까운 역은 난보쿠선 ‘아자부주반’ 역이다. 東京都港区麻布十番2-2-8 E高林ビル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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