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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Dec 02. 2021

도쿄에서 마늘 교자를 같이 먹는 사이란 말이지...

여자 셋 모여 웃었지, 70년 만두집 '교자소무로'에서


마늘 교자 2인분. 혼자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나 홀로 도쿄생활 중인 여자 셋이 뭉친 날이었다. 매화 축제가 막 시작된 유시마텐만궁(湯島天満宮)에서 원숭이 쇼(보고 있자니 많이 슬펐지만)를 보고, 일본 근대 건축물 구 이와사키(미쓰비시 창설자)가의 저택 정원을 거닐고, 우에노 공원 ‘우에노 숲 속 빵집’에서 귀여운 동물 모양 빵을 잔뜩 사고, 신오쿠보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렇지만 이 날은 온통 ‘마늘 맛’으로 기억된다.

70년 된 만두 가게 교자소무로의 마늘교자.  

 뭐가 매웠나, 냄새가 고약했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마늘을 왕창 먹은 날이어서다. 한국사람 뭘 먹어도 마늘 섭취가 자연스럽다지만, 이날은, 이건, 좀 달랐다. 마늘 한 쪽 한 덩어리가 통째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가 있는 만두. 마늘 좋아하고 잘 먹는 한국인도, 이렇게 궁극의 마늘 요리를 먹는 일은 드물 것 같다. 도쿄 신주쿠 ‘교자소무로’의 마늘 교자(만두)다.

빨간 바탕에 파랑(교자소), 검정(무로) 글씨.

귀국(우린 이걸 종종 본국 강제 송환이란 말로 자조했다) 날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교자를 먹었다. 마늘을 씹었다. 일 년 간 무얼 얻었나. 나는 좀 자랐나. 서울에 가면, 우린 이제 어떻게 될까.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질문을,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던지며. 교자 한 입, 맥주 한 모금, 교자 한 입, 맥주 한 모금, 교자 한 입, 맥주 한 모금…. 이것은 누군가 말했듯 무한루프다. 기름진 만두 피와 감칠맛 나는 마늘이 어우러진 순간, 차가운 맥주가 쓸고 내려가는 황홀한 입 속의 사정. 이것은 저 지루한 질문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맛있잖아, 좋잖아, 웃잖아, 같이 있잖아. 2차 갈까? 그래그래, 신오쿠보? 좋지! 노래방? 완벽해!

이날 집합 장소는 여기. 매화가 막 피기 시작한 유시마텐만궁.

교자소무로는 드라마 ‘와카코와 술’에 소개돼 일본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꽤 알려진 식당이다. 주인공 와카코는 퇴근 후 홀로 맛있는 안주에 술 한잔 하는 시간을 기뻐하는, 그리고 이를 위해 가열 차게 일하는 20대 여성이다. 점심시간 교자소무로 앞에서 지글지글 군만두 한 접시를 상상 하다가 "오늘 오후 회의가 있어서 안돼"하는 동료의 말에 눈을 질끈 감고 발길을 돌린다. 강력한 냄새가 오래 남으니까. 와카코는 기회를 만든다. 오늘도, 내일도, 아무도 만나지 않는 날, 온전히 마늘 교자를 위한 시간을 내어 교자 가게를 다시 찾는다. 휴일 근무에 당첨될 뻔 한 걸, 동료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넘긴 와카코는 "그 배려에 누가 되지 않도록 교자를 마음껏 즐겨야지!"라고 의지를 다지며, 결연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연다. "열심히 일한 후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나만을 위한 시간도 필요해"라는 와카코와 달리, 우리 셋은 "가끔은 함께 하는 시간도 필요해" 함께 마늘 교자를 먹었다. 이러나 저러나, 와카코나 우리나 모두 진심인 거다. 만두에, 먹는다는 것에, 소중한 시간을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에.   

유시마텐만궁 인근 구이와사키저택 정원. 실내에서 내다본 풍경도 근사했다. 부자네 부자... 미쓰비시 창업자의 집.. 이걸 보는 한국인의 심정은 복잡하다.   

 우린 도쿄에 와서 만났다. 서울에선 비슷한 일들을 했고, 머문 기간과 귀국 시기가 겹쳤다. 도쿄를 선택한 이유나 생활방식, 취미는 조금씩 달랐지만 앞날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는, 각기 인생의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을 무척 아끼는 타입들이었는데, 흥미로운 건 그러다 셋이 함께 만나도 참 잘 논다는 거였다. 마늘 맛이 남아있을 때 맥주를 마시고, 맥주가 아직 느껴질 때 만두를 입에 넣으며, 누가 억지로 밀어 넣은 것도 아닌데 만두 월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와카코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도쿄에서의 순간과 시간을, 그러지 않으면 벌금이라도 내는 사람들처럼 매우 성실하게 즐기고 있었다.


  교자소무로가 등장하는 ‘와카코와 술’의 ‘군만두’ 편은 그냥 와카코의 퇴근 후 일지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많이 담고 있다. 와카코 옆 자리 커플의 대화. "드디어 만두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사이가 돼서 기쁘다"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활짝 웃는다. 이거 무척 재밌는 장면이다. 만두가 냄새가 오래, 강하게 남는 음식이라서 그런 걸까. 마치 연인 사이에 방귀를 튼 사이(?) 같은 건가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 모습을 보며 와카코도 오물오물 만두를 씹으며 함께 웃는다. 정작 자신은 ‘같이 밥 먹을래?’하는 남자친구의 문자를 "안돼"하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말이다. 이 은혜로운 시간을 즐기는 이유와 방법은 제각각 일 테니. 그저 자신을 무언가에 온전히 쏟을 시간이 있다는 것. 그렇게 몰두할 음식(만두)이 있다는 것. 여기에 더해, 그 시간과 음식을 함께 할 동지가 있다는 것. 이건 감사한 일이고, 실로 대단한 사건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만두를 앞에 둔 와카코의 자세를 보라.  몰두한다는 건, 진심인 거다.

"우아아아! 저 원하는 부서에 가게 됐어요!"

셋 중 한 명이 카카오톡을 들여다보다가 소리쳤다. 서울로 돌아간 후, 발령받을 일을 걱정이라던 그에게, 회사로부터 일찌감치 연락이 온 것이다. 박수 소리가 들린 거 같고, 그가 약간 울었던 것 같기도 했고. 기분이다!며 이날 교자와 맥주 값을 다 냈던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한 건 교자소무로를 나온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걸, 그토록 우리가 좋아하는 ‘혼자’가 되는 일을 잠시 미루고, 함께 노래를 부르러 갔다.

교자소 무로 가기 전 들른 빵집. 이 귀여움을 어찌할고. 우에노 공원에 가면, 이 동물 빵을 꼭 사주세요.

남겨진 사진과 동영상에 따르면, 우린 노래를 엄청 잘 불렀다. 왜냐하면 모든 노래를 셋이 목청을 모아 불렀으니까. 빈 틈 없이 꽉 찬 소리가 그날을 말해주고 있다. 괜찮은걸, ‘함께’ 한다는 것. 마늘 교자에 맥주 한잔, 여자 셋의 웃음과 노랫소리, 함께 축하할 기쁜 소식 하나 있으면 말이다.

(음..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은가 싶기도)

신오쿠보 노래방. 저기요.. 긴윤아 아니고 김윤아라고..
유시마텐만궁에서 열일하던 원숭이..내내 맴찢..



*교자소무로 - 1954년에 창업했으니, 벌써 70년이 다 돼 가는 식당이다. 뮤지션이었던 창업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보고 개발한 6종류의 만두가 명물이다. 식당엔 중요한 룰이 있다. 음식은 한 번에, 한꺼번에 주문해야 한다. 일단 먹어본 후, 더 시키거나 하는 걸 할 수가 없으니, 주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범하게 시키면 된다. 만두 1인분에 7개이니, 감질 맛 나지 않게 먹으려면 주의하자. 만두는 주문을 받자마자, 피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즉석 만두. 만두 소 안에 살포시 들어가 앉은 마늘 한 쪽. 마늘 교자를 맛보지 않으면, 내내 아쉬울 거다. 특히, 드라마 '와카코와 술'을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도쿄 신주쿠구 다카노바바역에 내리면 바로다. 와세다 대학과 신오쿠보까지 쉬엄쉬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 보고 즐길 거리도 많다.

구글주소는 東京都新宿区高田馬場1丁目33−2


*유시마텐만궁 - 유시마 역의 신사. 문학과 학문을 권장하는 신을 모시는 곳으로 알려져 일본 문인들과 입시철 방문객이 유난히 많다. 2월 말~3월 초 매화축제가 열린다. 축제 떄는 야타이(포장마차)도 열리고, 원숭이 곡예 등 다양한 행사가 함께 진행된다.  


*구이와사키저택정원 - 메이지시대 상류 계급의 저택을 대표하는 서양식 목조 건물. 미쓰비시를 창립한 이와사키 가의 저택과 정원으로 1896년 지어졌다. 유시마텐만궁 근처이니, 함께 둘러보는게 어렵지 않다. 일본 근대 건축물 중 하나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건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서양관과, 일본식으로 지어진 화관, 그리고 당구장 등이다. 2020년 초 내가 방문한 때에는 정원은 물론 실내관람도 가능했고, 실내에서 사진 촬영도 허용됐다.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에 따르면, 종종 관람 조건이 달라지니,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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