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진작에 가입할 걸 그랬다. 월 5만900원짜리 ‘안심결혼보험’. 결혼을 안 하면 만기일에 130%를 환급해 준다. 돈을 생각하면, 비혼인 사람에게 가장 후한 상품인 것 같은데, 만일 결혼을 한다 해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어 보인다. 증명만 할 수 있다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으니까. 결혼식장 대여, 웨딩촬영, 예단예물 등 결혼준비 비용은 물론이고, 결혼 후엔 배우자의 외도에 대해서도 보상받을 수 있다. 정신 충격 상담 3회까지 포함해. 2012년 출시됐다가 2018년 신규 가입이 중단됐다. 안타깝다.
내용을 들으면 더 솔깃하다. ‘비동거에 따른 고독’ 항목이 있다. 쉽게 말하면 ‘기러기 특약’. 부부가 서로 노력해서 자녀 교육에 힘써야 하는 ‘특수한’ 시기에, 어느 한쪽만 희생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이 보험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이 상품은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지향한다. 물론, 보험금을 타려면 조건이 있다. 소비에 신중해야 한다. 사례를 살펴본다. 결혼 예단으로 200만 원짜리 냉장고를 구매했는데, 만약 전에 쓰던 냉장고가 아직 멀쩡하면 이에 대한 보험금은 받을 수 없다. 또, 남자 쪽 부모에게 보낸 반상기도 청구 신청을 할 수 없다. 보험사의 답변은 이렇다. 냉장고 예단은 비합리적인 소비고, 시댁에만 보내진 반상기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 만약 양가에 동시에 보낸다면 그것은 오케이. 오, 이렇게 바람직한 보험이라니. 한마디로 “안심하고 결혼하세요” 아닌가.
송구하지만, 이런 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사는 없다. 이것은 윤고은 작가의 장편 ‘도서관 런웨이’(현대문학)에 등장하는, 가상의 보험이다. 검색해봤다고 너무 노여워 마시기를. 소설인 걸 알고도, 있을 것 같아서, 아니 있기를 바라며 이미 검색한 이 여기 있으니. 소설은 이 보험에 가입한 후 어느 날 사라져버린 한 여성의 행적을 좇는 다. 그 과정에서 친구가 683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안심결혼보험’ 약관을 발견, 북클럽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한다. 약관내용은 그 자체로 결혼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관성적이고 불필요한 악습, 구시대적 사고 등을 꼬집는다. 결혼이 ‘영원한 사랑의 서약’이라고 믿는 사람은 오래전에 멸종된 것 같은데, 소설 속 인물들이 결혼보험에 ‘진심’인 풍경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여전히 ‘지속 가능한’ 그 무엇, 그러니까 ‘사랑 이후의 사랑’을 믿고, 또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언젠가, 정말, 이런 보험이 나올지도. 아 물론, 그 전에 “안심하고 연애하세요” 같은 상품이 먼저 있다면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