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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Dec 19. 2021

구남친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구체적인 행동 요령은  

윤성희 소설 '네모의 기억' 

‘짧고, 간결하게, 자신 있게.’

헤어진 연인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대화는 이렇게 해야 한다. 내 얘기는 아니고, 검색하면 많이 뜬다. 보다 구체적인 행동 요령까지 포함해서. 정보가 넘치는 걸 보니, 이런 일이 자주 있나 싶은데. “연락해서 만난 적은 있어도 우연은 없었어요” “그냥 뭐 인사 정도 하고 지나치지 않을까요” “내가 너무 초라할 땐 안 마주치면 좋겠어”…. 수소문(?)해 보니, 별로 없다. 아니, ‘우연한 재회’ 자체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희귀한 사건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을 세 번이나 경험하면. 그러니까, 옛 연인과 세 번을 마주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니, 어떻게 될까. 그런 재회 얘기가 하나 있다. 20대 초반 잠시 설익은 감정을 나눴던 두 사람이, 연애로 발전하지 못하고 소식이 끊겼는데, 수년에 걸쳐 장례식장에서 자꾸 마주쳤다는 얘기. 이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냐고. 실은, 소설이 맞다. 윤성희 작가의 ‘날마다 만우절’(문학동네)에 실린 ‘네모의 기억’에선 뒤집으면 이름이 같아지는, 그래서 “이름부터 운명 같은” 민정과 정민, 두 사람이 반복해서 재회한다. 그것도 어떤 인생의 끝이고, 누군가의 비통함인 장례식장에서. 처음 두 번은 몇 년 만에, 세 번째는 몇 달 만이었는데, 그 만남 사이사이 민정과 정민이 보내는 각자의 삶은 팍팍하고, 슬프고, 괴롭고, 복잡하다. 그러나 재회 때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장례식장이 주는 무거움과 대조적으로 밝고 경쾌하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정민에게 민정은 “도깨비분식에서 마지막으로 떡볶이를 먹은 사람”이라 답하며 두 사람의 데이트를 상기시킨다. 그렇게 이들의 재회는 그 기억의 시간에서부터 다시 흐른다. 어제까지 보낸 각자의 무거운 삶은 어제로 끝났다는 듯, 오늘 너를 만난 나에게 그것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듯. 추억이 부리는 의기양양한 마법. 우연이 끈기를 부리니, 정민도 용기를 낸다. 세 번째 장례식장에서 민정에게 “한 번만 더 장례식장에서 만나거든 그땐 사귀자”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영화 같은’ ‘소설 같은’ 재회는 영화와 소설에만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헤어진 연인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대화법같은 것들이 무수히 떠도는 걸 보면 흥미롭다. 그 낮은 확률을 알면서도, 재회를 상상하고, 또 대비(?)한다. 갈망해서겠지. 뚜렷한 목적이나 계획 없이, 오로지 낭만에 기댄 채 흘러가는 하루를. 그것이 쌓여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연애 서사’를. 민정과 정민의 네 번째 재회의 성공 여부는, 이 바람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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