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파커 Jul 18. 2022

가끔 우리의 술모임은 불행 겨루기가 되지만

만화 '도쿄 후회 망상 아가씨'

어제도, 지난 주말에도, 여자 셋이 모여 술을 마셨다. 후회를 하고, 신세타령을 한다. 놓쳐버린 사랑, 사람, 기회들에 대해. 그리고 상상한다. 이 모든 후회와 한탄을 상쇄시켜줄 ‘한 방’을.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후회와 망상의 수위는 높아지고, 점점 누가 더 불행한지 겨루는 성토대회로 변질된다. 그러다 옆 테이블에서 비수처럼 날아오는 말. “고백을 받아줬더라면, 사귀었더라면, 예뻐지면이라니…. 그렇게 평생 여자들끼리 망상을 안주 삼아 술이나 마셔요!”

우리말로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총 9권)라고 출간된 만화 ‘도쿄 타라레바 무스메’의 한 장면. 연애도 결혼도 안 한 상태의 30대 여성들이 이것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여긴다는 설정이 시대착오적이고, 자신은 늘 옳다는 듯 여성들을 다그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도 보기 불편했지만,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처럼 만화책을 읽었다. ‘타라레바’는 ‘타라(∼했다면)’와 ‘레바(∼라면)’를 조합해 만든 말인데,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매인 이 ‘타라레바 온나’(후회망상녀)들이 겨우 내딛는 걸음걸음이 궁금했다. 엄청난 반전이나 전복은 없지만, 여자 셋이 모여 발동시키는 우정과 위로, 낙천과 유머에 이끌려 줄거리의 구태의연함을 견뎠다. 린코, 코유키, 카오리 3인방은 ‘워맨스’ 스토리가 보통 그렇듯, 이 연대의 안팎에서 적당한 실패와 갈등을 겪고, 각성의 시간을 거치며 인생의 다양한 선택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으로 대표되는, 관습과 제도의 삶을 유보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분투한다. 사이는 더 돈독해지고 모두 한 뼘씩 더 성장한다.

드라마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의 포스터(왼쪽)와 원작 만화.

‘적당히’ 예상 가능했던 결말보다는 이 만화가 ‘후회와 망상’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더 신경 쓰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후회하고, 그 자리에 남몰래 기분 좋은 망상을 채워 넣는, 내가 바로 ‘타라레바 온나’여서. 분투와 성장을 ‘후회와 망상’을 없애는 식으로 그린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기세로 만화를 탐독했다. 그래서 결론은? 지금 이 만화를 열심히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왜 늘 이런 이야기엔 여자 셋일까. 문득, 대단하진 않아도 내게도 느슨하고 은근하게 엮인 여자들 모임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과학적 근거라도 있나. 전부 정원은 3명. 만화 속 3인방만큼이나 마시고, 후회하고, 망상하지만 지금의 상태를 모자람으로 여기지 않는 그들이 갑자기 멋지게 보인다. 그래서, 만화 속 린코의 다부진 외침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뭉쳐 다닐거야!”


이런, 내 연애만 아니면 되는데, 이거 완전히 연애 아닌 얘기를 해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를 가장 혐오하게 됐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