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도쿄 후회 망상 아가씨'
어제도, 지난 주말에도, 여자 셋이 모여 술을 마셨다. 후회를 하고, 신세타령을 한다. 놓쳐버린 사랑, 사람, 기회들에 대해. 그리고 상상한다. 이 모든 후회와 한탄을 상쇄시켜줄 ‘한 방’을.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후회와 망상의 수위는 높아지고, 점점 누가 더 불행한지 겨루는 성토대회로 변질된다. 그러다 옆 테이블에서 비수처럼 날아오는 말. “고백을 받아줬더라면, 사귀었더라면, 예뻐지면이라니…. 그렇게 평생 여자들끼리 망상을 안주 삼아 술이나 마셔요!”
우리말로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총 9권)라고 출간된 만화 ‘도쿄 타라레바 무스메’의 한 장면. 연애도 결혼도 안 한 상태의 30대 여성들이 이것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여긴다는 설정이 시대착오적이고, 자신은 늘 옳다는 듯 여성들을 다그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도 보기 불편했지만,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처럼 만화책을 읽었다. ‘타라레바’는 ‘타라(∼했다면)’와 ‘레바(∼라면)’를 조합해 만든 말인데,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매인 이 ‘타라레바 온나’(후회망상녀)들이 겨우 내딛는 걸음걸음이 궁금했다. 엄청난 반전이나 전복은 없지만, 여자 셋이 모여 발동시키는 우정과 위로, 낙천과 유머에 이끌려 줄거리의 구태의연함을 견뎠다. 린코, 코유키, 카오리 3인방은 ‘워맨스’ 스토리가 보통 그렇듯, 이 연대의 안팎에서 적당한 실패와 갈등을 겪고, 각성의 시간을 거치며 인생의 다양한 선택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으로 대표되는, 관습과 제도의 삶을 유보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분투한다. 사이는 더 돈독해지고 모두 한 뼘씩 더 성장한다.
‘적당히’ 예상 가능했던 결말보다는 이 만화가 ‘후회와 망상’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더 신경 쓰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후회하고, 그 자리에 남몰래 기분 좋은 망상을 채워 넣는, 내가 바로 ‘타라레바 온나’여서. 분투와 성장을 ‘후회와 망상’을 없애는 식으로 그린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기세로 만화를 탐독했다. 그래서 결론은? 지금 이 만화를 열심히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왜 늘 이런 이야기엔 여자 셋일까. 문득, 대단하진 않아도 내게도 느슨하고 은근하게 엮인 여자들 모임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과학적 근거라도 있나. 전부 정원은 3명. 만화 속 3인방만큼이나 마시고, 후회하고, 망상하지만 지금의 상태를 모자람으로 여기지 않는 그들이 갑자기 멋지게 보인다. 그래서, 만화 속 린코의 다부진 외침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뭉쳐 다닐거야!”
이런, 내 연애만 아니면 되는데, 이거 완전히 연애 아닌 얘기를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