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린 구 로맨스 소설 ‘난 사랑이란 걸 믿어’
“한국인들은 화나면 정말 얼굴에 물 뿌리고 그래?”
일본에서 지낼 때 종종 받던 질문이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익숙한 장면. 드라마 이야기다. 이걸 진지하게 물으니 놀랍고, 또 웃기기도 한데, 처음엔 “아니, 드라마에서나 그러지” 했다가 나중엔 “응, 그러니까 조심해”라고 농담을 섞어 답했다. 최근엔 “한국인들은 첫사랑이 그렇게 중요해?”라는 말을 들었다.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 첫사랑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한국인의 사랑이, 로맨스가 궁금해졌다. 욱하면 물뿌리는 게 우리의 본모습이 아니듯, ‘K-연애’나 ‘K-로맨스’도 허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세계가 사랑하는 K-드라마는 분명 ‘한국식 사랑’의 어떤 형태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모든 걸 다 가진 남자가 사랑에만 서툴고, 명랑하기만 한 여자는 늘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또 뭐가 있더라.
한국계 미국인 작가 머린 구가 쓴 ‘난 사랑이란 걸 믿어’(문학동네)는 K-로맨스의 전형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드라마 속 인물들은 사랑을 하려 애쓰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반하고, 응원하고, 종국엔 그 모든 게 ‘말이 된다’. 한마디로 “변명이 필요 없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한국계 10대 소녀 대시는 ‘첫사랑 쟁취 프로젝트’에 나서는데, 이때 K-드라마가 코치가 돼준다. 대시는 좋아하는 남학생 루카에게 ‘원빈’이란 암호명을 붙이고, K-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진정한 사랑 공식’ 리스트를 만든다. 그것은 무려 24단계다. 순수하고 착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남자를 만났고, 나는 좀 ‘다른’ 여자라는 걸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갈등을 이겨내고 해피엔딩.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 리스트를 손에 꼭 쥔 대시는 루카와 싸워도 걱정하지 않는다. 답을 이미 알아서다. “K-드라마에서는 의사소통의 오류 때문에 실제로 관계가 끝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결국에는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고, 새롭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작가는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던 부모님 덕에 K-드라마 팬이 됐고, 그 감성을 살려 로맨스 작가가 됐다. 소설은 최근 넷플릭스 영상화가 결정됐다. 이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 제니 한 작가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인기를 이었으면 한다. 두 작품 다 한국계 여성이 썼고, 주인공도 한국계 여성이라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들, 아니 우리 모두는 K-로맨스의 화신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