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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Jul 19. 2022

'미친 척하고.’ 당신의 연애를 위한 궁극의 주문

오라시오 키로가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미친 척하고.’


용기를 내야 할 때, 스스로 거는 최면이다. “미친 척하고 한번 물어볼까?” “미친 척하고 한번 해봐!” 미치기까지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 싶지만, 의외로 많다. ‘내가 그땐 미쳤지!’ 익숙한 대사다. 돌아보면 우리 과거의 대부분은 ‘미쳐서’ 한 일들이다. 결과야 어찌 됐든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인간의 독특한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말인데 연애도 미쳐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라. 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는데, 서로 좋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게 미친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적어도 그들의 세계에서 두 사람은 완벽하게 미쳐 있다.


우루과이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1878~1937)의 소설집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문학동네·사진)엔 이렇게 ‘미쳐 있는’ 인물이 가득하다. 이들을 광기 어린 상태로 내모는 건 욕망, 집착, 공포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랑’이다. 책에 실린 18편의 단편 중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는 ‘착란 증세’로서의 사랑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하는 요소로서의 ‘착각’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절절하게 풀어낸다. 미쳐서 사랑에 빠지는 건지, 사랑해서 미치는 건지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하다. 중남미 환상 문학의 이해라든가,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한 편의 연애소설로 충분히 재미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처음엔 여자가 미쳤고, 나중엔 남자가 미친다. 여자는 뇌막염에 걸렸다.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이 아득해진 순간 간신히 내뱉은 한마디엔 남자의 이름이 있었다. 가족들은 남자를 불러오고 그는 얼떨결에 병간호를 맡게 된다. 사실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고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마음에 품은 적도 없다. 여자는 사경을 헤매며 남자의 이름을 부른 것도 모자라, 착란 증상이 심해지면 남자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인다.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도와 달라는 가족의 부탁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인다. 밤엔 사랑에 푹 빠진(그 순간엔 정말 진심이다) 눈빛의 여자를, 아침엔 냉랭해진(심지어 기억도 잘 못한다) 여자를 번갈아 만나며.


“40도의 고열 속에서 단 두 시간 동안 지속되는 꿈속의 사랑은 낮이 되면 감쪽같이 사라진다.…그녀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더 이상 나를 찾지도 원하지도 않는 낮 시간이 너무도 원망스럽다.” 그는 어느새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여자는 점점 회복돼가고 이 마법 같은 연애도 곧 끝이다. 정말이지 미치기 일보 직전.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작은 엉뚱하고, 전개는 흥미롭고, 결론은 종잡을 수 없다. 입이, 아니 손가락이 근질근질하지만 엔딩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참고로 미치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는 이들의 연애 행방을 추적한들, 별로 알 길이 없다는 걸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사랑을 줄곧 광기와 죽음으로 묘사해 온 작가 키로가가 ‘반전’처럼 남긴 달곰한 이 연애소설은, 연일 날씨가 ‘미치는’ 이 봄날에 (그게 뭐든) 의지를 다지기에 더할 나위 없다. 평생 죽음의 그림자 안에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가, 사랑이라는 이 기묘한 열정을 어떻게 지키려 했는지, 소설 속 반쯤 미친 남자가 어떻게 광기에 지지 않으려 했는지. 그 여정을 좇다 보면, 즐거운 착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우린 약간 미쳐 있어야 살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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