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
내가 죽으면 어떡할래? 남자는 여자에게 묻더니 이내 혼자 답한다.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최진영 작가의 장편 ‘구의 증명’(은행나무)이다. 남자의 이름은 ‘구’, 여자는 ‘담’. 먹겠다니, 사람을? 은유인가 싶은데, 정말로 나온다. 죽은 연인의 몸을 깨끗이 씻어 야금야금 먹는 장면이.
소설은 구가 죽고 담이 구를 먹으며 시작된다. 구와 담의 회상이 교차하는 방식이다. 죽은 자가 과거를 되짚는다니 식인(食人)만큼이나 기이한 설정인데, 이게 이상하지 않다. 이미 담이 구를 먹고, 그걸로 구가 영원히 산다고 믿는 순간 “윤리나 과학이 끼어들 여지”가 모두 사라졌으니까.
과거는 아릿하다. 처음 만난 여덟 살 무렵, 풋풋했던 10대, 가정환경 탓에 엇갈렸던 시간을 지나 두 사람만의 우주가 생길 때까지. “죽을 때까지 함께”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라던 다짐을 증명하는 지금까지.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담은 구를 먹고, “네가 살아야 나도 살아.” 구는 담을 느낀다. 이 기괴하고 비극적인 장면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담의 주문에 걸려들었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던 그것. 이는 한 인터뷰에서 “사랑은 믿어야 생기는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한 최 작가의 말을 닮았다. 그는 “꼭 하나를 믿어야 한다면 사랑을 믿고 싶다”고, “사랑하고 쓰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을 되도록 모르고 싶다”고 했다. 이런 사랑 제일주의자라니. ‘터무니없는’ 얘기가 말이 되고, 믿어질 수밖에.
담이 구를 증명하는 동안, 소설은 스스로를 증명했다. 2015년에 나온 책이 지금 ‘역주행’ 중이어서다. 연 2000부를 겨우 팔던 책은 2020년 6000부, 2021년엔 3만5000부를, 올해 벌써 1만5000부를 팔았다. 출판사는 어안이 벙벙(물론 싱글벙글도)한데, 특별한 홍보 마케팅도, 유명인의 추천도 없었다. 오로지 독자들의 ‘찐’ 서평뿐. 그러니까 ‘입소문’이란 의미다. 특히 20대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가 흥미롭다. 가진 게 없는 20대 두 남녀가 그저 함께 있고 싶었고,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고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소망을 이룬다. 빛나면서도 무력하고, 자주 절망하는 청춘의 마음이, 이런 구와 담을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킨 걸까. 어렵다는 출판 시장에서, ‘이야기의 힘’을 보아 감격스러운데, 무엇보다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전심으로 ‘믿는’ 이야기가 읽힌다니, 설렌다. 그래, 믿음은 유용하다. 믿음이 필요하다. 담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