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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Jul 22. 2022

바람 피우다 들키고 갑자기 외계인이라 우기다니

정보라 작가의 '아주 보통의 결혼' 


결혼한 지 일 년. 의심이 시작됐다. 배우자가 어딘가로 자꾸 전화를 건다. 그것도 한밤중 내가 잠든 틈만 노려서 말이다. 과연 이게 최근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결혼 첫날, 아니 훨씬 이전부터일지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걸 언제 알아차릴까. 사람들은 이럴 때 보통 어떻게 대처할까. 어느 날 그 통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새벽 3~4시쯤이었나. 아내(이쯤에서 내 얘기는 아님을 알려 드린다)는 낯선 언어로 말하고 있다. 뭐지, 외국 남자랑 바람이라도 난 걸까. 간신히 통화목록을 입수해 전화를 건다. 굵은 목소리의 남성이 등장한다. 역시 그 낯선 언어로.
                                                                            

소설집 ‘저주 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정도경이라는 필명으로 쓴 ‘아주 보통의 결혼’ 초반부를 요약하면 이렇다. 예쁘게 만든 토끼 인형이 한 집안을 몰락시키는 저주 용품이 되고(‘저주 토끼’), 변기로 흘러내려 간 오물이 사람이 돼 튀어나오는 (‘머리’) 등 현대인의 욕망을 기괴한 설정, 충격의 반전으로 그려냈던 정 작가가 인간의 사랑을 다룬다면, 그것도 결혼을 소재로 쓴다면, 또 어떤 ‘공포’를 안겨줄까.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 전엔 사실 잘 몰랐던 작가라서, 계속 ‘발견’하는 재미로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다. 소설은 도입부는 다소 빤했으나, 전개는 매우 신속해,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아내의 내연남(아직은 추정)에게 전화를 해 “너 누구야?”라고 외치는 대목부터는 심장이 뛴다. 빨리, 빨리!


이제 곧 격렬한 몸싸움이라도 등장하려나. 삼류 드라마 같은 상황에 ‘정보라 식’ 반전이 치고 들어온다. 남편이 남자와 통화(했으나 알아들은 건 없다)한 그날 저녁, 심각한 표정의 아내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고백한다. 지구인의 생태를 연구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는 것. 황당해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말한다. “이제까지 했듯이 그냥 살면 돼요.” 남편은 남자에게 다시 전화한다. 갑자기 한국어를 하는 그는 자신도 외계인이며, 아내의 상관이라 보고를 받았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작당을 했군. 정신이 나간 듯한 남편에게 남자는 말한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십시오. 보통의 남성이 하듯이.”

스포는 여기까지. 기다리면 등장할, 약속의 그 결말은 밝힐 수 없고. 소설은 우리를 웃겨주다가, 스멀스멀 서늘한 공포로 몰아넣는다. 반복해서 나오는 ‘정상’과 ‘보통’이라는 말. 정상적인 부부 관계는 무엇이고, 보통의 결혼생활이라는 건 뭘까. 소설은 결혼 제도 자체가 품은 억압적 성격과 세상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 중 하나인 인간 남녀의 관계를 드러내며, 우리가 이를 ‘정상’과 ‘보통’으로 규정짓고 잠시 안도할 뿐이라고 조소하는 것 같다. SF와 환상, 공포를 넘나들고, 또 넘어서는 부커가 선택한 ‘정보라 월드’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런데, 상상할수록 웃긴다. 바람을 피우다 들켰는데 외계인이라고 우기는 커플이라니. 이보다 더 황당한 사례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제보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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