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산문집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22. 10.21 문화일보 칼럼 <이것은 내 연애가 아니다>
“왜 사랑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굳이 연애는 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도 정해놓은 사람들이, 요즘 세상엔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많아지고 있는 걸까요.”
시인이자 여행 작가인 이병률은, 오로지 ‘사랑’ 하나만을 붙들고 써내려간 산문집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달)에서 이렇게 묻는다. 시인은 그 선언이 잔인하고 무섭다 했다. 그에게 사랑은 어쩔 수 없는 폭발 사고에 매몰되는 것이고, 바람이 불면 그는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에.
한 해를, 그리고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딱히 선언을 한 적도, 분명하게 정해놓은 것도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더욱 그럴 테지. 이때, ‘사랑주의자’ 이 시인의 다정하고 따뜻한 글이 당도한 건 행운이다. 아니, 어쩌면 그 자체로 ‘사랑’이다. 사람, 사랑, 삶. 그 무엇에, 그 어떤 규정도, 단언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사랑만이 우리를 더 나은 쪽으로 견인한다”고 말하는 용기가 담겨 있으니. 반하고, 명랑해진다. 다시 채비를 해야지, 마음을 다진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다짐도 함께 해보자. 쉽다. 시인을 떨게 했던 그 선언을 반대로 하는 거다. 사랑을 해야만 한다고, 굳이 연애를 하겠다고 분명하게 정하는 거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시인은 이렇게 받아칠 것이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무엇으로 사람이 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느냐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잃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기억하겠지만 사랑을 기억하는 편이 제일 나을 겁니다. 살아갈 힘을 남기자면 그것입니다.”
남의 연애 얘기를 하고 가당치도 않게 사랑을 설명하며, 소박한(사실은 거대한) 꿈이 생겼더랬다. 어느 날 갑자기 ‘사실 이것은 내 연애다!’라고 ‘깜짝 문장’을 써보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반전’의 묘를 부리지 못했으니, 시인이 말한 ‘그리움의 인자(因子)’가 아직 내 안에 덜 쌓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연애는 아니었으나, 내 ‘사랑’ 아닌 것은 없었다고 군말 하나 붙인다.
칼럼 연재를 마치며 끝으로 시인의 말을 빌려 축원해 본다. 당신을 춤추게 하고 짓물러 터진 당신을 일어서게 하고, 당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알려줌으로써 당신을 흥분시키는 그런 사람. 올해가 가기 전, 아니 올해가 가더라도 당신 곁에 반드시 이런 사람이 있기를. 그리하여 이번 생의 주인이 되시기를. 꽃과 같은 사랑을 하시기를. 전 생애를 걸고 피어나는 꽃처럼 당신도 피어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