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우리를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세상의 많은 것들 중, 최고는 단연 ‘은밀한’ 이야기가 아닐까. ‘야한’ 얘기 말이다. 속칭 ‘야설’이라 부르는 그것. 제목에 이미 많은 힌트가 있지만, 소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들녘)은 그런 얘기다. 영국의 인도 가정에서 자란 20대 ‘요즘 애’ 니키. 경험 삼아 글쓰기 교실 교사로 지원했다가, 알파벳은 모르는데 야한(?) 건 넘치게 아는 ‘언니들’을 만나, 밤마다 야설만 진탕 나누고 돌아온다는 얘기.
읽으며 반성했다. 그동안 (남들의) 사랑 뒷담화를 하면서, 매번 너무 심하게 단정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해본 사람들은 알 테지, 사람과 사람이 ‘극도’의 친밀함을 쌓는 연애가, 얼마나 (특히 물리적으로!) 단정치 못한 일인지. 변명 하자면, 개인 방송도 일기장도 아닌 곳에 적정 수위를 조절하며 쓸 재간은 아무래도 없어서. 사실, ‘29금’ 소설을 소개하는 지금도 쓸 수 있는 대사는 "우리 남편은 시도 잘 짓고 잠자리에서도 환상적이었어." "말도 마. 우리는 섹스리스였어." 정도다.
30대부터 80대까지,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로 구성된 야설 클럽에선 도발적이고 농밀한 이야기가 오간다. 각자 품고 있었던 ‘성적 판타지’를 아주 창의적으로 쏟아낸다. 여성이 욕망을 드러내는 게 더는 불편한 게 아닌 시대. 뭐 그리 ‘발칙’하겠냐 싶지만, 이 클럽은 조금 특별하다. 이들은 런던에 살지만 여전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그리고 여성에게 특히 억압적인 인도의 관습과 문화를 지키며 산다. 글을 읽고 쓰는 것 자체가 불온한 도전인데, 소설은 ‘섹스’라는 금기를 추가해 이들을 해방 전선에 세운다. 작문 수업엔 시큰둥하던 여성들은, ‘그’ 얘기가 시작되면 활활 타오른다.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들"이라고, 밤엔 야한 얘기가 "양을 세거나 수면제를 먹는 것보다 더 낫다"면서, 당황한 니키를 진정시킨다. 우리가 글을 모르지, 사랑을 모르겠냐는 듯 ‘음흉한’ 표정으로 귀가하는 여성들. 그래, (굳이)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역시 후자다.
소설이 내내 ‘그렇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세대를 달리하지만, 니키와 여성들은 명백한 불의 앞에 선 당사자들이고, 나이 차와 문화적 간극을 딛고, 어떻게 여성이 연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그 중심에 건강한 욕망이 있으며, 니키는 클럽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의 역할을 탐색하고, 자기 방식의 연애 또한 성실히 수행해 나간다. 소설에 흥미가 생겼다면, 하나만 더. 야한 부분이 볼드체라 찾아 읽기 쉽다. 이 점, 아주 칭찬한다.
폭발하는 상상력, 끓어오르는 욕망. 이를 글로 풀어내는 야설 클럽 회원들은 소설 후반부에 크고 작은 인생의 변화를 맞이한다. 흠, 그렇다면 나도 기대를 좀 해도 될까. 내 연애 이야기는 아니나, 나 역시 내 꿈과 소망, 염원을 담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아, 음흉했던 시절, 언제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