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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Feb 25. 2024

40대에 일본어 시험봐서 뭐해? 그거 중독이야 공부중독

솔로 여자와 외국어- 취미 혹은 집착, 또는 중독 

이미지 픽사베이.


다음 달 3일에 일본어능력시험(JLPT)을 치른다. 시험을 두 달 정도 남겨뒀을 때던가. 지난 추석 연휴에 조카랑 게임 하고, 넷플릭스 보고, 달리고, 먹고, 빈둥빈둥 굴러 댕기다가, ‘번뜩’ 생각 나 신청을 했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부터,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이 시험을 봤다. 습관인지, 강박인지, 아니면 무슨 일종의 놀이처럼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어느덧 일본어라는 외국어와의 인연도 (본격적인 시험 준비 때부터 친다면) 20년이 다 되어 가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여전히 해마다 가을이 오면 ‘아 JLPT 봐야 하는데’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놀랍고,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왜, 올해, 이 시험을 또 보나. 아니, 아직도 왜, 이 시험을 보고 있나. 나에게 일본어란 대체 무엇인가. 취업 준비생도 아니고, 일본어가 필요한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며, 외국어 점수가 있다고 회사에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일본어를 쓰는 회사로 이직(받아주는 곳도 없겠지만) 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말이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왜?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으니까. 재밌는 걸 더 재밌게 해주니까. 그러니까, 일본어는 나의 아주 오랜 취미다. 아니, 이 무슨. 그런 건 흔히 특기라거나, 아니면 과제라거나 하는 것에 어울리는 종류의 것 아닌가. 시험이라는 결승선을 끊기 위해 배우고 익히고, 종국엔 만족스러운 ‘점수’를 얻어내는 것이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외국어가 취미라니. 너무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공부가 취미’라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니까. 게다가 외국어라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운 것이니까. 여기까지, 다 맞다. 그리고, 취미인 것도 맞다. 내가 생각하는 외국어는, 취미를 위한 취미이면서, 동시에 그 익힘의 과정 자체도, 즐거운 취미가 될 수 있다.


넷플릭스 일본 애니메시연 '나의 행복한 결혼'


취미로서의 외국어에 대해선 이미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러 번 이야기 한 바 있다. 하루키는 달리기로 치자면, 마라톤과 같은 장편 소설 작업을 할 때, 낮에는 소설을 쓰고, 저녁에는 번역을 하며 머리를 식힌다고 했다. 소설을 쓰느라 지친 뇌를 ‘쉰다’고 했다. 뭐 이렇게 지독하게 성실한 인간이 다 있지 싶지만.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외국 문학을 번역할 수준은 아니지만, 직업상 매일 활자와 씨름하는 나 역시 때로 서툴고 낯선 이국의 언어를 만날 때 느껴지는 ‘쉼’이 있다. 그리고, 멋대로 하루키와 나는 ‘같은 기쁨’을 아는 사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주말에도 나는, 일본에서 대 히트를 치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라이트 노벨(일본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 한국으로 치면 웹소설 정도의 이미지다) ‘나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읽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그려진, 주인공의 남편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쉬었다’. 소설의 섬세한 묘사, 애니메이션의 서정적인 분위기, 같은 듯 다른 두 작품의 장면과 언어가 교차하고, 반복되는 문장과 단어가 머리에, 그리고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솔로 활동은, 솔로 여자의 ‘나의 행복한 결혼생활’ 감상(솔로 활동이 결혼에 관한 것이라니 아이러니지만 )은, 그렇게 취미인 일본어를 통해 온전해짐을 느낀다. 이 몰입의 시간은, 시대에 맞춰 발 빠르게 등장하는 콘텐츠의 힘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꾸준히 학습하고 익혀 온 나의 시간과 의지와 마음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내가 만들어 낸 세계 속에 들어가 있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어쩌다 일본어를 취미로 삼았나. 돌이켜보니 그것은 선택이면서 운명이었다. 스무 살 첫 해외여행으로 도쿄를 가서, (당시) 그 비싼 물가와 높은 엔화에 벌벌 떨며 아끼고 아끼다가 남겨온 돈으로, 종로의 S 일본어 학원을 등록했던 그 날(주변에선 그런 나를 이해 못했다), 그 순간. 나는 평생의 취미로 일본어를 선택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일본어로, 도쿄와 오사카를 배회하며 길을 묻고, 물건을 사고,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 정도를 더듬거리던 나는 일본 만화를 읽게 됐고, 한 일본 록밴드의 음악을 가끔 들었으며, (OTT가 없던 그 시절이다) 이런 저런 어두운 경로를 통해 찾은 일본 드라마까지 섭렵하면서, 일본어와 친해졌다. 그러면서 일본어는 내게 영어 만큼, 아니 영어보다는 그래도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외국어였고, 잘 하고 싶었고, 그래서 만화도 음악도 드라마도, 즉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열심히 좋아하고, 더 잘 즐기고 싶었다. 그러니까, 일본어는 내 덕질 생활에 치트키이자, 알파와 오메가였던 셈.
 
솔로 활동에 대비하여(모른다. 당신도 언제가 될지 말이다), 나는 누구나 외국어 하나 정도는 취미로 삼아, 꾸준히 즐기기를 권한다. 이게 정말 솔로 인간에게는 아주 유용하고 유익한 취미일 수 있어서다. 우선, 외로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솔로 활동 시간은 대개 즐겁지만, 가끔은 정말 뭐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때가 있다. (물론, 그건 사람이면 누구나, 혼자여도 함께여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게 만약 일본어라면, ‘나홀로 여행’에 최적화된 나라인 일본을, 취미처럼 드나들고 싶어진다. 뭔가 하고 싶다는 건, 좋은 일이다. 즉, 당신은 아주 멋진 ‘나홀로 여행자’가 될 수 있다. 또한, 그 유명한 이야기 있잖은가. ‘이과형 인간’들이 인생사 답 없을 때 수학 문제를 풀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 생각을 정리한다고 하는 것. 그렇다면, ‘문과형 인간’ 들이 그와 같은 경험과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게 바로 또 이 외국어 학습이다. 그러니까, 심신의 안정과 정서 순화, 뇌 단련까지 된다. 
이토록 훌륭한 취미라니…. 물론, 실력이 훌륭한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너 그거 중독이야. 공부 중독


일본어가 취미라 일본어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올해도 jlpt 시험을 보려 한다는 내게 한 지인이 말했다. 중독.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 자주 쓸 일이 없는 외국어를 공부하고, 십 수년 째 그걸 또 계속하고, 그런 자신이 가끔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잘 늘지 않는 실력에 한심해 하며, 도대체 왜 이렇게 비생산적인 일에 몰입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조한다. 그러다 문득 배우는 건 성장하는 것이고, 성장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던 ‘빵장수 야곱’의 한 구절을 떠올리고, 그래, 뭐든 배우고 있잖아, 그건 참 멋진 일이야, 라며 나를 다독이고, 대견해하고, 그러다 보면 또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래서 다시 외국어 학습이 아주아주 생산적인 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일본어 단어를 하나 더 알게 된 오늘의 나는, 그 단어를 몰랐던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라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세상에 몸과 마음에 해로운 ‘중독’이 얼마나 많던가. 자신 뿐 아니라, 주변에 상처와 피해를 주는 중독이 넘친다. 그러니, 이런 중독이라면, 얼마든지 괜찮다.


*이 글은 2023년 11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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