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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Nov 30. 2021

사랑의 습관

엄마 따뜻해요?


"에고, 우리 아기 손 따뜻한데 엄마 손 너무 차갑네."

"으악, 엄마 손 너무 차가워!"


역시나 반응 한번 요란한 아이의 손을 쓰윽 놓았는데 아이의 두 손이 내 한 손을 꼭 감싼다. 두 손을 동원해도 내 손 하나 품기도 버거워 웃음이 났는데 아이의 열심에 곧 내 손이 녹아들었다. 뭉클해져서 아이의 손을 한참 바라봤다. 서두르기 바쁜 아침, 잡아끌기만 했지 좀처럼 들여다보지 못하는 아이의 손이 다정하게 나를 품는다.


"엄마 따뜻해요?"

"우와, 진짜 따뜻해!"


눈물이 날 것처럼 마음이 일렁였다. 아이는 그렇게 내 양손을 번갈아 녹여주었다. 젖을 먹으며 빈손으로 내 손가락 하나를 꼭 잡던 아기 시절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작아 보이는 손도,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의 마음도, 어느덧 내 손을 녹여줄 만큼 많이 자랐구나. 기억해두고 싶은 순간을 찰칵 남겼다. 손을 왜 찍냐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둘째를 꼭 안아주었다.


매일 아침 유치원 셔틀버스를 타기 전, 추울까 싶어 아이를 점퍼 안으로 안고 기다릴 때면 내 품의 둘째는 늘 같은 질문을 하고 난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엄마도 따뜻해요?"

"응, 원래 같이 안고 있으면 서로 따뜻한 거야."


마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 아낌이 없는 아이.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마음을 알지만 말해서 더 좋고 행복한 사랑 표현은 달달하다. 오늘도 효를 다하고 있는 우리 여섯 살 아가는 잠들기 전 머리를 쓰다듬는 나를 따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따라 하는 거야?"

"(끄덕끄덕)"

"우와, 고맙네."


어둠 속이지만 빙긋 웃고 있을 아이의 표정이 그려져 자꾸 미소가 새어 나왔다. 와, 이 따라쟁이 때문에라도 나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둘째의 손이 내 마음을 돌보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나를 세상 전부로 여김을 머리로 알지만, 이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사랑이 손끝을 타고 나에게 전해지는 듯했다. 당연하지만 어쩜 당연하지 않은 아이의 사랑을 잘 받아먹는 습관을 다짐한다. 언제나 꼬인 마음 없이 따뜻하게 화답해줄 수 있게 좋은 말을 가득 담아둔 고운 그릇이고 싶다. 자꾸 무덤덤해지는 어른 엄마에게 너희 같은 매일의 요란함과 딴짓을 하고 싶은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이제 12월이다! 크리스마스 신난다!"

"12월 안 좋아."

"형아는 왜?"

"내년 되면 엄마가 마흔도 넘는단 말이야. 엄마 오래 살아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 어떡해."


아, 마음이 또 꼬일 뻔했다. 뒷골이 당기는 첫째의 걱정과 함께 11월이 저물었다.


식탁에는 종이로 접은 여우들이 수북이 쌓였다. 저게 아이들이 주는 내 생일선물이라고 한다. 마음을 어떻게 더 표현할까 고민하던 첫째는 엄마의 뽑기운을 시험하듯 자유 쿠폰, 마사지 쿠폰, 심부름 쿠폰 등이 담긴 뽑기를 준비해왔고, 아직 반문맹인 둘째는 (유치원 선생님의 지도 하에) 처음으로 축하한다는 글자를 몇 써왔다. 내 반응을 기다리는 반짝이는 시선이 쏟아진다.


"우와, 여우야? 얼굴들이 다 다르네? 너무 고마워."


종이여우들을 하나씩 자세히 설명하느라 아이들 이야기는 끝없이 길어졌지만, 무슨 소린지 모르면서 내내 웃음을 머금고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생일에 별 감정도 기대도 없던 나는 이번 생일을 보내며 마음을 풀어주기로 했다. 한마디 축하에도 크게 웃고, 고맙다고 즐겁게 답하고, 들뜬 맘으로 크리스마스와 첫눈을 기다려본다. 눈오는 날의 미끄러운 길과 운전을 걱정하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눈싸움할 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나누어야겠다. 그렇게 내 하루를 아끼고 사랑하는 습관을 갖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이제부터 내 새로운 한 해에 숨 가쁘게 힘든 날이 여럿 있더라도, 신명 나게 좋은 날 또한 여럿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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