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Jan 31. 2022

화를 내지 않는 어른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 선생님 보고 싶은데 유치원을 못 가다니!"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사랑하죠!"

"우와, 사랑이야?"

"저를 그렇게 사랑해주는데 어떻게 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급작스런 휴원이나 방학이 찾아들 때마다 유치원 선생님이 보고 싶다는 둘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길 그렇게 사랑해주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니. 사랑을 주면 사랑으로 화답하는 거울 같은 아이들. 그 표현에 마음이 찡했다. 엄마는 왜 아침에 자꾸 화내냐는 말을 들은 날이라 찔려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두 아들은 아무리 급해도 서두르지 않는 선비 같은 분들이라 아침의 분주함은 온전히 내 몫이기에 내 화력은 아침마다 거세다.


"선생님이 우리 ♡♡이를 그렇게 사랑해주셔?"

"네, 놀아달라고 하면 놀아주시고 화도 안 내세요. OOO반 선생님은 화를 많이 내서 너무 무섭거든요."

"화를 많이 내셔?"

"네, 저는 말을 잘 들으니까 안 혼나지만 다른 친구들 혼나는 많이 봤어요. 맨날 표정이 굳어 있어요."


얼굴도 모르는 OOO반 선생님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1년째 듣고 있다. 평소 표정이 안 웃고 있다는 말도 듣고 보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걸 보고 있다고 느낀다. 역시 또 날 돌아보게 된다. OOO반 선생님이야 다른 반 선생님이고 둘째 본인이 혼난 적도 없지만, 나는 이 녀석의 주양육자가 아닌가. 대체 그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길래 얘가 이러나 찌푸리기엔 나 스스로의 매일이 민망하다.


첫째가 다니는 태권도는 등록하고 두어 달 지났을 즈음 관장님이 바뀌었다. 참 서글서글한 인상의 관장님과 아이들을 꼼꼼하게 챙겨주시는 선생님의 조합이 너무 좋아서 아쉬웠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그만두신지라 요즘도 가끔 건강은 괜찮으시려나 싶어 생각이 난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첫째가 갑자기 예전 관장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예전에 태권도 처음 다닐 때 계시던 관장님은요. 화내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네, 진짜 한 번도 못 봤어요."

"애들이 말을 잘 들었나?"

"그런 건 아닌데 진짜 화를 안 내셨어요. 저야 원래 말 잘 듣지만요. 말 안 듣는 애들한테도 화를 안 냈거든요."


결론은 지금 관장님은 화를 내신다는 의미였는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화내지 않고 아이들을 이끌어가신 예전 관장님이 새삼 위인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두 아이의 사고가 일치한다. 화를 내지 않는 것에서 사랑을 느끼는 걸까? 그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 어른은 아이들에게 꽤 눈에 띄는 존재인가 보다.


동생이 유치원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다고 하자 첫째는 초등학교 얘기를 늘어놓고 한참 선생님 무서워 배틀이 이어졌다.


"너 유치원이라 그래. 우리 담임선생님은 화나면 막 소리 지르셔. 학교는 유치원보다 훨씬 무서워."

"형아 혼났어?"

"아니, 난 말 잘 들으니까 안 혼나지. 근데 초등학교는 선생님들 무서워. 9반 선생님은 더 무섭다?"

"우리 유치원도 OOO반 선생님은 소리 지르셔. 진짜 무서워. 우리 선생님도 화나실 땐 있는데 난 안 혼나 봤어."


몇 년 전 한국서 잠시 생활하고 다시 해외로 돌아간 친구네 아이가 떠올랐다. 착실하고 똑똑한 모범생인 그 아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아이는 잠들기 전 갑자기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좀 착해질 필요가 있어요."


누가 들으면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이라고 싸잡아 말할 건 뭐고 착해지라는 말은 또 무엇이냐며. 하지만, 이건 어른이 한 말도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그날 문득 떠오른 감정에 가깝다는 걸 생각하자. 그 아이는 선생님의 무표정과 다른 아이들을 혼내는 모습을 보고 내놓은 생각인 것이다. 자기 예전 태권도 관장님을 추억하는 첫째의 말에 그때 아이의 입장에서 어른의 어떤 모습이 그런 생각을 불러왔을까 생각하게 됐다. 어쨌든 아이들에겐 부모와 선생님이 대표적 어른이지 않은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잊히지 않는 날이 있다. 수년 전 프리스쿨 다니던 첫째가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저 오늘 스낵 먹을 때 앤더슨이랑 오렌지 짰어요."

"오렌지를 짜?"

"네, 손으로 즙을 짰어요."

"아... 어디다가?"

"응?"

"어디다 짰어?"

"테이블이죠."


그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다섯 살 첫째에게 나도 모르게 상황을 캐물었다.


"선생님뭐라고 안 하셨어?"

"멋진 생각이라고요!"

"와..."


역시 그는 빛! 첫째의 선생님은 웃는 상의 남자 선생님이셨다. 마주치면 늘 유쾌한 에너지에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친절한 선생님. 애들은 그럴 수 있다는 그의 마인드는 내게 긍정적인 쇼크였다. 나는 끈적한 오렌지즙이 아이 옷에도 묻은 걸 보며 테이블에 즙이 흥건했을 장면이 먼저 떠올랐지만 선생님은 손수 착즙 하기로 결심한 아이들을 격려해준 모양이었다. 첫째의 눈은 엄마에게도 나눠주고픈 즐거운 기억으로 빛났다. 지금도 첫째는 생애 첫 선생님이었던 그를 최고의 선생님으로 추억한다. 그 시절 기억들이 대부분 잊힌 아이에게 그 선생님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나에겐 그렇게 빛으로 기억되는 선생님이 없다.


나의 빛인 오은영 선생님은 아이에게 할 훈육과 생활지도를 분간하라 했다. 사람이라면 응당 지켜야 할 것은 훈육하되 나머지는 지도해서 가르치면 될 일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훈육과 화는 다르기까지 하다. 사람이라면 응당 오렌지를 짜면 안 되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다. 만 세 살이면 오렌지 짜서 뭐가 얼마나 나오나 궁금할 수 있는 나이다. 어른인 나는 그간 화를 내면서 가르치고 싶은 게 무엇이었을까? 그냥 토하듯 나오는 화가 가르침인 척 시늉했던가.


물론 나는 엄마라서 화를 내도 아직 아이들이 날 사랑한다. 화를 낸 엄마를 용서하는 데에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나중에는 다를지 모른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마음이 쉬이 풀리지 않는 나이가 될 테니까. 오늘따라 간절히 화를 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나의 아이에게도, 남의 아이들에게도, 때로 어른들 내면의 덜 자란 아이들에게도. 그녀는 빛! 나중에 몇몇에게라도 이렇게 기억되는 사람이 된다면 참 잘 사는 인생 아니겠나.



매거진의 이전글 속내를 보여주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