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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마라토너의 봄날

어느 하루의 로깅

by 미미

벚꽃이 오는지 가는지 모를 묘한 날씨다. 꽃망울이 보일 즈음 거친 비가 내리더니 날이 살아남은 꽃잎들 위로 또 다른 비가 내렸다. 오락가락하는 봄의 한낮에는 벌써부터 반팔만 찾는 아이들의 옷을 다 꺼내 정리한다. 작아진 옷이 한아름 쌓였다. 헌 옷 수거 업체 번호가 어디있더라 찾는다. 스웨터를 맡긴 세탁소의 사장님은 어째 내가 갈 때마다 자리를 비우신다. 식사 후 3시 반에 돌아온다는 쪽지가 문에 붙어있다. 쪽지를 들춰보니 식사 후 2시 반, 식사 후 1시 반이라고 적힌 쪽지 등이 겹겹이 붙어있다. 식사시간이 3시간을 넘어가는 걸 보니 아무래도 프렌치 코스요리가 아닐까 싶어진다. 오늘에야 세탁물을 픽업해 걷기 시작하니 바람이 차갑지만, 나는 나답게 적당히 껴입은 탓에 햇볕만 느끼자면 포근하기도 하다.


집에 바로 오기 아쉬운 날씨에 조금 더 걷기로 했다. 마음이 복잡하던 차에 햇볕을 쬐면 굽은 마음도 펴질까 싶었다. 세탁물을 들고 있는 탓에 멀리 산책할 수는 없겠다 싶어 근거리에 있는 처음 가보는 빵집을 찾았다. 그곳엔 날 기다린 게 분명한 크랜베리 호두 바게트가 딱 하나 남아있었다. 손에 든 게 있어서인지 걸음이 자꾸 빨라지는 내 곁으로 한 아주머니가 멈춰 섰다. 그 뒤를 지나가며 힐끗 본 화면엔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와 하늘이 담겨있다. 그제야 하늘을 봤더니 흐렸던 지난 며칠을 잊고도 남을 파랑이 펼쳐져있었다. 하늘도 보지 않는 잰걸음에 놓치는 많은 것들이 많다. 게다가 오늘 이 바게트가 꽤 맛있어서 그 빵집에 조만간 다시 갈 것 같다. 잘 찾아보면 기분이 나아질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오늘 미니언즈런 2025 등록에 실패한 참이다. 사실 여기엔 복복이의 요청이 있었다. 작년 같은 반 친구가 10km 마라톤을 해봤다는 말에 자기도 마라톤 뛰어보고 싶다기에 신청을 장담했지만 마라톤 참가 신청을 몇 달씩이나 미리 하는 줄 몰랐다. 그렇게 가을 마라톤을 다 놓치고 올해로 미뤄둔 대망의 이벤트가 바로 온 가족이 뛰는 마라톤이다. 결혼 전에 데이트 삼아 나이키 마라톤을 같이 뛴 후 처음으로 도전하는 마라톤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뛰어야 하니 소박하게 5km로 신청을 별렀다. 결국 미니언즈런 신청을 실패한 오늘, 다른 마라톤을 뒤적이고 계획을 세운다. 마라톤이 뭐라고 이렇게 피케팅이람. 진짜 마라톤은 숨찬 이 인생 아니냐고 발끈해 본다. 굳이 종목을 나눠본다면 나는 현재 육아 마라토너인 셈이다. 중간에 멈출 수 없다는 점이 같다. 그런데 완주까지 정해진 루트가 없다는 점이 참 다르다.


오늘의 일과를 물으면 난감하다. 대부분 아주 사소한 일의 연속이라 설명하기 구차한데 시간은 다 잡아먹는지라 설명하기 모호하다. 집안일을 빼더라도 필요한 물건을 채워 넣고 아이들 스케줄을 조정하고 갑작스러운 픽업과 병원 방문 등에 대응하는 끝없는 잡무의 향연이다. 이런 것들을 포괄하는 기획노동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하는데 영 맘에 차지 않는 느낌이다. 누가 알든 모르든 나는 나의 노동력 유지를 위해 체력과 사고능력이 소중하다. 남편의 경제적 기획노동에 그러하듯 말이다. 결혼생활은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고 응원함과 더불어 많은 이해를 구하며 팀을 이뤄 뛰는 마라톤이다. 연애할 때 재밌자고 뛴 그 마라톤이 귀여울 지경이다. 그날 나는 이렇게 오래 러닝을 한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며 깔깔 웃었더랬다.


놀이에 가까웠던 러닝과 달리 지금은 최소한의 생존 운동을 위해 매트 필라테스 수업에 출석한다. 이제부터는 이 선생님 수업만 들어야지 하고 등록한 타임이 있는데 그 선생님이 갑자기 안 오시기 시작했다. 대체 강사분의 수업이 계속되다가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뇌종양으로 인한 휴직이었다. 묘하게 따뜻한 목소리가 좋고 지루하지 않은 레퍼토리로 몸을 개운하게 해 주시던 좋은 분이었는데, 수업에 돌아오시든 아니든 부디 잘 회복하시길 바랄 따름이다. 이런 소식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마련이다. 어차피 대단한 예고편이 먼저 상영된다 해도 딱히 준비란 걸 할 수 없는 충격적인 문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꽃구경도 제대로 못한 것 같고 볕도 많이 쬐지 못한 것 같다. 마음도 봄답게 따사롭지 못했다. 아까운 봄날을 뒤로하고 걷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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