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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들을 결심

듣는 것이 주는 평화

by 미미

"오늘 우리 가족이 오늘 너무 재밌게 산책한 걸 소중하게 기억할 거예요."

"형아야. 오늘은 그냥 많이 먹은 기억 아니야? 크크."

"얘들아, 우리 오늘 산책은 그냥 과식한 기억이 정확한 것 같아."


집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가서 피자를 먼저 먹고 치킨집에서 2차, 메가커피에서 3차를 간 날이라 내 표현은 더없이 적확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아이들이 깔깔깔 뒤집어졌다.


가끔 동동이는 종종 패밀리 타임을 요청한다. 남편이 부재한 날에도 마찬가지다. 엄마랑 같이 산책하고 싶다는 날도 잦다. 나 또한 불안이 높은 성향의 동동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자 적극적으로 거들기도 한다. 자기 전에 뭔가 소소하게 펀타임(Fun Time)이라고 이름 붙인 루틴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동동이는 펀타임을 계획하며 한껏 즐거워했다. 요즘은 아이들이 바빠진 탓에 취침시간이 늦어지며 없던 일이 됐지만, 어제의 산책이 무척 행복했던 모양이다. 피자와 치킨으로 속이 부글거리는 통에 소화력이 약해진 나이 탓을 하던 차라, 그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기까지 한다는 표현에 마음이 이상했다.


지난 주일은 부모가 같이 드리는 예배라 복복이 예배에 참석했다. 맨 앞줄에서 예배드리는 뒤통수를 가끔 보며 귀여워하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축복송을 부르는 시간이 되자 복복이는 뒤를 돌아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찾았다. 한참 걸려서야 엄마를 발견한 복복이가 환하게 웃는데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의 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단 하루도 떨어져 자본 적 없고, 그제도 어제도 봤고, 방금 예배당에 같이 들어왔고 예배 끝나면 집에도 같이 갈 엄마를 향해 그렇게 매번 반갑게 미소 짓는 건 어떤 마음일까?


"엄마 있는 거 아는데 뭘 그렇게 찾았어?"

"아니, 첨에 아무리 봐도 안 보이더라고요!"


뭐 별 일이라고 잔뜩 신난 목소리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와 복복이 손을 잡고 셔틀버스 줄에 섰다. 오늘도 복복이는 질문을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재잘거렸는데, 갑자기 내 등 뒤에서 50대로 추정되는 분께서 말을 거셨다.


"귀여워라. 좋을 때니까 즐겨요."

"아기 때가 가끔은 그리운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 늘 엄마한테 오잖아요."

"아, 아직은 그렇죠."

"좀 지나면 잘 안 와."

"그렇다더라고요."


웃으며 나눈 대화지만, 분명 그리움이 담긴 대화다. 돌아오지 않는 시절을 보냈고,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살고 있는 오늘이라 하는 이야기다. 가끔은 지금의 내가 썩 맘에 들지 않고 내가 했던 선택을 되짚다 보면 후회에 휩싸일 때도 있지만 어떤 모습이든 이만큼 살아서 사는 삶은 소중하다. 요즘 들리는 이런저런 이들의 소식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언젠가의 나는 이만큼의 삶이 참 소중했다.


벌써 4년째 우리 집에서 버티고(?) 있는 고무나무를 큰 화분으로 옮겼다. 죽은 식물과 흙, 오래되어 버려야 하는 요가매트, 고장 난 우산 등을 모두 큰 종량제 봉투에 채워 버렸다. 드디어 했다는 기쁨과 함께 여태 살아남은 고무나무에게 감탄한다. 죽을 일 없다는 다육이도 죽이곤 했던 나라는 식물 킬러의 손에서 여태 잘 크고 있다니! 키우는 건 애들로 족하다는 내 선포와 달리 버텨준 강인함이 고마워서인지 나도 모르게 고무나무의 안녕을 살피곤 한다. 고무나무야, 넌 초록이니까 어쩜 내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을까? 내 목소리가 들리니? 옆에 새로 들어온 바질 화분 말인데, 네가 옆에서 좀 잘 크게 도와줄 수는 없을까? 바질 죽으면 동동이가 속상해할 게 눈에 훤하다. 다름이 아니라, 식물도 생명이니 혹시 마음의 소리 같은 게 전달될까 싶어서 말이다.


난 원래 오디오북을 듣는 걸 썩 내키지 않아 했다. 문자로 글을 읽으면 내 머릿속 영혼의 소리 같은 게 글을 읽어주는데 오디오북을 들으면 내 소리로 읽을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 들어 묘하게 맘 상한달까? 하지만 차근히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한다. 책을 들 기운이 별로 없는 날이거나, 눈을 뜨기엔 너무 눈이 아픈 날이거나. 그래, 어쩔 때는 머리를 비우고 누가 읽어주는 대로. 마치 엄마가 읽어주는 책처럼. (실제로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어본 적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짐작건대 좋을 것 같다.) 문득 다른 이의 목소리를 통해 마음에 평화로운 온기가 찾아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늘부터 다시 자기 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이 와중에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집착과 억척스러움이라 해두자.


주말이 지나자마자 맞는 월요일이자, 2025년의 반쪽이 꽉 차는 오늘. 아이들을 생각하며 다시 재개하는 스토리타임이다. 오래전에 읽어주다가 아이들 침대 옆에 뒀던 책을 펼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건지, 읽기 전에 책에 살짝 쌓인 먼지부터 잘 닦아야 했다. 비록 복복이 수학 숙제를 봐주다가 내면에 화가 찬 참이었지만, 책은 하다못해 착한 척이라도 하게 만든다. 차마 성난 소리로 읽을 수 없어 목청을 부드럽게 다듬게 된다. 스스로의 가식에 감탄하다 마음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아이들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 나와 앉았다. 오늘따라 분주했던 탓에 오늘이 저무는 이 시간, 라디오라도 듣고 싶다가 이번엔 고요를 택한다. 다 끄고 귀를 열어둔 채 아이들이 잠들길 기다리는데, 에어컨 소리가 배경에 깔려 백색소음 어플을 켜둔 것처럼 잠이 솔솔 온다. 그러면서도 사람 목소리가 그립다. 나도 무언가 틀어놓고 잠을 청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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