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터지는 신박한 뉴스 따라잡기도 정신 혼미한 와중에 어쩌다 유튜브에서 접한 신박한 정리는 묘하게 내 시선을 끌었다. 같은 가구를 다르게 배치해서 집을 넓어 보이게 하고 뒤섞인 물건을 차곡차곡 보이지 않게 수납해 살길을 터주는 신박한 기술을 보다 보면 내 살림도 아닌데 개운함을 느낀다. 본편을 찾아보는 열심은 없지만, 유튜브 속 신박한 정리 편집본을 슥슥 돌려보며 갑자기 생활환경 개선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 곧 이사를 할 텐데, 그때부턴 내가 정리의 신은 아니더라도 정리의 아무개 정도는 되리라는 올해의 목표를 정했다.
아이들에게 점령당한 거실은 쉼 없이 북적인다. 놀이방이 비어있어도 결국 엄마가 보이고 트인 거실이 아이들의 선택을 받기에 거실은 늘 지뢰밭이다. 헬로카봇 로봇과 크루들, 마인크래프트 레고, 요새 읽는 책, 휘두르고 노는 장난감 라켓과 스펀지 칼 등이 어지럽게 널린 채, 오늘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애매한 상태로 하루를 마감했다.
정신 사나운 집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사를 앞둔 내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각 방은 지금보다 커지지만 방 개수가 줄어드는 치명적인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지라 미리 버릴 건 버리고 분류를 제대로 해야 하건만 어제도 나는 애들과 함께 잠들었다. 마흔이 돼서 체력이 더 떨어졌다고 구시렁대면서도 나라는 인물이 정리에 큰 뜻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신박한 정리 속 정리정돈과 먼 캐릭터다. 그렇지만 꿈에 그리던 포장이사를 하는데, 쓰레기까지 가지고 이사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매일 생각한다. 오늘은 정리를 해야지. 그렇지만 아이들 생각은 다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철수하자."
"엄마랑 놀고 싶어요."
"아, 뭐 하고 놀고 싶어?"
"음... 엄마랑 하는 거!"
일복의 상징, 야근의 대명사, 사실 일 중독이 아니라고 우기는 일 중독인 남편은 이번 주에도 주말 출근을 했다. 남편이 미안했는지 그나마 저녁에 먹일 걸 사놓고 간 덕분에 식사 준비는 덜었으니, 나는 집안일을 싹 미루고 나라도 아이들과 온전히 놀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둘이 놀 줄 알아서 좋은데, 애들은 왜 이렇게 엄마랑 놀고 싶다는 걸까? 그래도 주말이니 성실하게 놀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앉았는데 어찌나 허리가 아프고 잠이 쏟아지는지.
나름 앞뒤 다 있는 놀이용 돈. 막상 시작하고 나니 분명 은행놀이라도 팔 텐데 사면 될 걸 왜 이러고 있나 싶어 아차했다.
처음 뜯은 보드게임, 시장놀이를 위한 가짜 돈 만들기를 하며 하루를 바삐 보냈다. 바닥에는 보드게임에 가득 들어있던 블록들이 굴러다니고, 가위질 후 남겨진 종이조각들이 사방에 깔렸다. 둘째가 오늘 만든 종이돈이 끼었다고 울길래 찾아주느라 소파 쿠션을 들었더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형광핑크색 물감통이 뚜껑이 열린 채 끼어 있었다. 아, 물감이 못해도 반은 차있었을 텐데 텅 비었네. 핑크색 범벅 물티슈를 쌓아놓으며 나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빨리 자고 싶다.
"어몽어스 비즈 도안 좀 찾아주세요."
"돈 만들었으니까 이제 놀이를 해야죠."
"가오리연 완성했으니까 내일 공원에 날리러 가요."
"브로콜리 체다 수프 만들어주세요."
재밌어해서 고마운데 다음에는 제발 책상 치우고 책상서 하자.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성장호르몬 이야기를 끌어다가 설득해 이만 자기로 하고 목 터져라 책을 읽어주었다. 그런데 이미 내일 할 일, 모레 할 일들이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다. 해보지도 않은 어몽어스는 어찌 알았는지 비즈를 만들겠다고 하고, 오늘 만든 돈으로 본격 시장놀이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가오리연을 날리려면 나무가 우거지지 않은 넓은 공원에서 뛰어줘야 한다. 게다가 브로콜리 체다 수프를 만들어달라기에 일단 사다 먹여보았으나 다시 엄마가 직접 만들어달라고 한다.
정리의 아무개가 되겠다던 목표는 아무래도 멀어져 간다. 새해를 맞이하고 한 달째 진전이 없는데, 나는 오늘도 허덕이며 지킬 아이들과의 약속을 늘렸을 뿐이다. 마음을 접고 인스타그램 속 깨끗한 집들을 보며 약간의 대리만족을 얻어본다. 그 집주인들 체력 칭찬해. 난 틀렸어. 한 달이 다 갔는데 정리의 아무개 되기는 지킬 각이 안 나오니 2월이 오기 전에 재빨리 올해 계획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장애물이 우리 애들보다 크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걸로 도전해볼까? 일단 떠오르는 후보는 수면량 늘리기? 독서량의 정상화? 첫 목표를 접으려니 새로운 목표 설정도 소심해진다. 한 달만 더 노력해볼까?
"음, 작년 미미에 비해 이 정도면, 정리의 아무개지."
연말 즈음, 이 정도 평가를 목표로 해보자. 사실 나랑 하는 약속이니 내가 좀 봐주면 되지, 박하게 굴 필요 있나. 내가 스스로 조금은 관대해져야 아이들에게도 관대한 엄마가 되지 않겠나 합리화해본다. 유독 숨 가쁜 하루를 정리하며 그렇게나마 마음을 편히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