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 살고 싶은 이유

캐나다/미국에서의 병원 체험기

by 미미

정신없는 한주였다. 둘째가 미열을 달고 있어 돌봐야 했고 위층은 올수리를 진행하느라 철거에 공사까지 굉장한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친정으로 대피 가기도 하며 바쁘게 내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자꾸 몸이 덜덜 떨리고 추웠다. 그 으스스한 기운은 은근히 날 따라다녔지만 설마 내가 열이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말을 앞두고 온몸이 아파 아이들 재우기까지 종일 어떻게 움직였는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일단 해열제를 먹고 아침에 꼭 병원 가봐야지 생각하며 잠든 나는 새벽녘에 목과 코의 불편함에 잠을 설쳤다. 아, 아프고 불편하다.


“제가 열이 있는데 진료 볼 수 있나요?”

“몇 도 정도신데요?”

“현재는 37.9도예요.”

“오셔도 돼요.”


코로나 때문에 혹시나 싶어 전화 문의를 하고 단골 이비인후과를 혼자 찾았다. 안 그래도 첫째의 비염과 둘째의 감기로 이틀 간격으로 들락거리던 참이라 병원 스태프들은 혼자 들어서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열도 병원에 도착해서 재보니 38.3도로 올라있었다. 아, 편도염이 제대로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과였다면 수액을 놨을 거라며 물과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라고 한다. 주사를 놔주시던 분은 내게 "잠 많이 주무시고 쉬셔야 해요."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드시겠지만...”이라고 덧붙이시는 걸 보면 평소 아이들 둘 데리고 자주 오는 내 일상을 꿰뚫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와, 주사 맞고 하루 약 먹었더니 아프지만 일상생활은 좀 가능하다. 정말 다행이다. 왜냐하면, 주말에 아이들을 완벽 마크하겠다던 남편 역시 고열과 부은 목 때문에 토요일 아침 이비인후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 스태프들은 이 집 식구들은 대체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 싶을지 모르겠다. 어쩐지 내무부장관이자 엄마로서 책임감 느껴지는 상황이다. 테이블에 쪼르르 놓인 네 식구의 약들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그래도 바로 병원에 갈 수 있고 종합감기약이 아닌 치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고 코로나 아니니까 걱정 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편이 애용하던 강렬한 맛의 감기 시럽. amazon.com


난 잔병치레가 없는 편이지만 미국에서 심하게 앓았던 적이 한번 있다. 열이 너무 높았고 온 몸이 아픈 나머지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이틀 꼬박 끙끙대며 죽은 듯이 침대에 쓰러져있었다. 원래 출근하면 도둑이나 나다닐 새벽에 오는 남편은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쓰고 아이들을 봤다. 미국에서 내가 얻은 이틀의 휴식 아닌 휴식은 그 정도 아파줘야 가능했구나 싶다. 그런데 미국에서 열이 나서 담당의사를 찾으면 의사가 말했다. 5일 지나도 안 내리면 다시 오라고. 심지어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 말이 왜 이 정도 증상으로 병원을 오는 거냐는 의미임을 나는 안다. 문제는 그 와중에 내 예감이 틀리지 않을 때가 제법 많다는 점이다. 고열이 시작되고 이틀 만에 병원을 찾았을 때 일단 왔으니 해보기나 하자던 검사에서 "strept throat"으로 결과가 나오자 그제야 의사는 나더러 빨리 잘 왔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아, 이비인후과 가고 싶다. 바이러스에 항생제 필요 없는 건 나도 알지만, 이렇게 항생제가 꼭 필요할 때는 병 키우지 않고 빨리 대응하고 싶단 말이다.


어릴 적, 안경을 껴보고 싶어 이불속에서 책을 보고 불 끄고 TV를 봐도 나빠지지 않던 타고난 시력을 아빠한테 받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갑자기 아침마다 눈앞이 뿌옇게 보였고 종일 붉은 눈이 불편했다. 의사는 항생제 안약을 처방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아침마다 말라붙은 눈곱 때문에 눈이 떠지지 않았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 예약은 빈자리가 없어 PA(Physician Assistant, 일정 교육과 경력을 통해 의사의 역할 일부를 수행하는 의료인)를 만났고 이번에는 약국에서 알레르기약을 사서 써보라는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눈의 상태는 계속 나빠져갔다. 보험사이자 병원에서 권하는 원격상담을 했고 결국 안과 예약을 잡았다. 안과 진료를 보고 후회가 막심했다. 드디어 만난 안과 전문의는 내 눈을 보고 상관없는 항생제와 알레르기약을 쓰면서 안구건조증이 악화되었다며 스테로이드 약을 줬다. 건조가 심한 상태라 눈물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야 한다며 실리콘 플러그를 넣어놓는 누점폐쇄술도 받았다. 스테로이드 안약을 줄여가다 결국 끊긴 했지만 인공눈물을 달고 지냈다.


"안구건조증이 일단 시작된 이상,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지 나아지진 않을 거야. 이게 여기처럼 건조한 지역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특히 여성에게 더 많아. 어쨌든 내가 추천해주는 인공눈물 계속 쓰고 나빠지지 않게 관리를 잘해봐."


난 이 경험을 통해 의사를 골라갈 수 있는 좋은(=비싼) 보험이 왜 좋은지 확실하게 배웠다. 매달 내는 많은 보험료 외에도 전문의 만날 때마다 Co-pay로 50불씩 내던 내 보험이 딱히 싸다고 느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게다가 한국에 와서 안과를 가보니 요즘엔 누점폐쇄술을 반영구로 하지는 않는다지 뭐야. 역시 잦은 병원 방문을 싫어하는 미국 보험사의 비용절감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받은 아이들 영유아 검진, 둘째 출산 등 병원을 이용한 후 날아오는 고지서에는 본래 책정금액이 낱낱이 나오고 마지막에 Co-pay가 적혀있다. 원래 우리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가 이렇게 비싼 건데 넌 매달 꼬박꼬박 보험비 내고 있어서 이렇게 조금만 내는 거란다. 거대한 숫자를 그토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내가 안구건조증으로 삽질한 것처럼 첫째도 소아과에서 피부과를 가기까지 좋게 말해 시행착오, 솔직히 말해 삽질을 겪으며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는 기대가 없다. 다음에 그곳에 살게 되는 날이 혹시라도 온다면 비싼 보험 가입해서 비싼 전문의를 만나며 사는 게 최선이겠다.


캐나다의 아동병원, www.zgf.com


사실 나의 북미 의료 체험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캐나다에서 시작되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학교를 쉬고 병원에서 반년을 보냈다. 미국과 달리 복지의 나라로 알려진 캐나다는 의료서비스를 나라에서 책임진다. 지금은 캐나다 모든 주에서 의료서비스는 무료 혜택인데 당시에는 BC주의 경우 개인이 의료보험료를 약간 부담하긴 했다. 패밀리 닥터를 정해 예약을 잡고 만나게 되고 그의 의뢰를 통해 다른 검사 스케줄을 예약하거나 다른 의료인과의 예약을 잡을 수 있는 식인데, 급한 일 아니면 검사부터 전문의 구경(?)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고 수술 일정도 멀리 잡혀 차라리 빠른 진행을 위해 한국이나 중국으로 나가는 사례를 여럿 접했다. 병원 생활이 계속되면서 의문은 내 나름대로 풀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입원한 Children's Hospital은 병상도 적당히 여유롭고 각각의 의료진이 담당하는 환자의 숫자도 한국에 비해 많이 적었다. 병동 간호사들도 한국 간호사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여유롭게 보일만한 숫자의 환자를 담당했다. 응급실에서 받아줄 상황이 아니고서는 예약과 또 다른 예약과 또 다른 예약 등을 통해 큰 병원까지 다다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의료진이 담당하는 환자의 숫자를 훨씬 늘리지 않고서는 빠른 진료가 불가능해 보였다.


이걸 다행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응급으로 분류되어 바로 입원할 수 있었다. 붐비지 않는 쾌적한 시설과 워라밸을 누리기 때문인지 몹시 친절한 의료진이 인상 깊었다. 한 가지 내 눈에 자꾸 걸리던 게 있는데 그건 병원의 물품 낭비였다. 저 트위저는 일회용품이 아닌데 왜 한번 쓰고 쓰레기통에 들어갈까? 재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것도 일단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걸 계속 보다 보니 캐나다는 자원이 많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엄청난 부자나라구나 생각했을 뿐, 세금을 내보지 않은 소녀의 사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녀에게는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고민이 있었다.


"이걸 왜 이렇게..."


나중에 내 흉터를 본 한국 의사의 반응은 한마디로 '말잇못'이었다. 내게 남은 캐나다산 스티치는 환자의 남은 삶의 질에 대해 크게 배려하지 않았다. 어디 잘 안 보이는 곳 하나를 꿰매도 흉 안 지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한국 의료진의 기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면 나처럼 해외에서 째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마침 켈로이드 체질이기까지 한 내 피부는 흉이 지면 볼록하게 살이 자라난다. 옷을 고를 때나 수영복을 살 때나 그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캐나다에서 한 친구의 지인은 손가락 접합 수술조차 깔끔하게 안 됐다는 얘길 들었다. 그 얘길 듣고 나니 옷을 잘만 입으면 가릴 수도 있는 내 흉터는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서운한 건 사실이다. 그때까지 몸에 흉터라곤 단 하나도 없던 나름 예민한 여고생이었단 말이다.


어디서 쿨한 냄새 안 나요? 내 마음이 얼고 있잖아요.


결론. 그냥, 한국 밖에서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의료 접근성이 좋으면서 의료진의 실력부터 손재주까지 야무진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세계 어디서도 만나기 어렵다고 본다. 물론 요즘 이상한 의사도 많고 여전히 과잉처방도 있고 보험이 커버하지 못하는 중증질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아플 때 종합감기약을 마시며 대충 버티기보다 의사를 만나 혹시 모를 병을 키우지 않을 자유는 소중하다. 여유롭고 친절한 캐나다의 의료서비스도, 비용 줄이기에 열심인 미국 의료서비스도 한국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한국에 와서 나와 첫째가 만성비염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 비염이라는 걸 드디어 진단받아 반가우면서 이미 만성이 됐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미국에서는 이비인후과를 가본 적도 코를 들여다본 적도 없다. 담당의사 만나도 아- 한번 시키고 내 코의 안녕은 살펴주지 않으며 환절기 감기쯤으로 진단하며 휴식을 권했으니까. 휴식을 취하기엔 너무 바쁜 현대사회라서 인지 치료도 빠르다. 내가 한국에 얼른 돌아와 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하나. 한국에 오니 어쩐지 안심이 된다.


잦은 병원 방문으로 디테일해지는 병원놀이. 환자 역할은 늘 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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