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에게 동네 한정 미인으로 평가받았다. 이 말이 진심이라는 건 알지만, 근처라는 말이 너무 웃겨서 깔깔거리다가 생각해보니 첫째는 꽤나 냉정한 평가를 내린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어릴 적 내 눈에는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잘생겼다 여긴 기억이 났다. 그런데, 00동 한정이라니 이거 서운해야 하는 거 아냐? 흑.
최근 친정에 가니 내 어릴 적 사진 하나가 떡하니 아빠 책상 앞에 붙어있었다. 무려 사진관에서 찍은 그 사진 속 나는 머스터드 색상의 투피스를 걸치고 엄마의 목걸이를 한 채 애매한 표정으로 서있다. 너무 귀엽지 않냐면서 남편(아빠의 사위)에게 사진을 보여주는 아빠의 애정에 살짝 당황했다.
나는 눈에 옅은 선만 그어진 채 태어나 유아기가 끝날 무렵에야 (반갑게도) 쌍꺼풀이 생겼는데 그 사진 속 나는 아직 무쌍에 뚱한 표정이다. 뭘 이렇게 크게 인화했나 싶은 그 사진관 사진은 나름 첫 딸의 특혜였을 것이다.
아빠는 세상에서 자기 딸이 제일 예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딸을 보며 딱히 예쁘다고 하지 않았다는 사연을 덧붙였다. (윽, 아부지는 왜 묻지도 않은 얘기로 팩폭을 하고 신나게 웃으시는가!) 그럼에도 아빠 책상 앞에 (현재 마흔에 들어선) 내 어릴 적 사진을 붙여놓고 너무 귀엽지 않냐 거듭 물으시는 걸 보면 내게 물려준 아빠의 훌륭한 시력은 딸 앞에 마이너스 시력이 되는 게 분명하다.하도 놀리는 아빠에게 엄마를 닮았어야 한다는 푸념으로 화답한 적이 있는데 아빠는 뭐가 그리 신나셨는지 깔깔대며 사과 멘트를 내놓으셨더랬다.
오래전부터 어깨 통증이 내 문제인데 바쁘거나 신경 쓸 일이 많으면 더 뭉치는 것 같다. 재우려고 누웠는데 나의 작은 앓는 소리를 들었는지 꼬마 형제가 힘을 합쳐 내 어깨와 허리를 두드리고 꾹꾹 누른다. 와, 어찌나 시원한지 재울 의지가 흐릿해져 계속 시킬 뻔했다.이제 이 녀석들 안마 솜씨가 제법이다.
"우리 강아지들이 이제 정말 많이 컸다. 아기 때는 너희가 안마한다고 주무르면 시원하진 않고 간지러웠는데 지금은 진짜 시원한데?"
"진짜로 시원해요?"
"응, 엄마도 어릴 때 외할아버지 안마해드리고 그랬는데너희가 이러니까 너무 신기해."
"엄마도 할아버지한테 우리처럼 이렇게 했어요?"
"그랬지. 시간이 참 빠르다."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에도 귀 기울이며 일일이 되묻는 녀석들의 성의에 새삼 감동한다. 엄마는 너희에게 반응하는 게 귀찮을 때가 참 많은데 반성한다, 아들들아.
아빠는 허리가 늘 아프다고 하셔서 내가 꾹꾹 누르던 부분이 정해져 있었다. 목도 종아리도 늘 아프다고 하셨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하다가 힘들면 그냥 적당히 하고 말았던 것 같다. 게다가 집에서도 늘 바쁘던 엄마는 그나마도 주물러드리지 못했구나 싶다. 내가 아프던 시절엔 오히려 엄마 아빠의 안마를 받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기 엄마가 되어서도 아빠가 내 어깨를 주물러주신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자식이 벼슬이다.
"엄마, 나는 엄마랑 결혼할래요."
"야, 엄마는 벌써 아빠랑 결혼해서 결혼 못 해."
"!!"
형아의 가르침에 현실을 깨달은 둘째는 이제 엄마와 결혼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최근 비혼을 선언했다.
"나는 결혼 안 할래."
"..."
"평생 엄마랑 살 거야."
"어, 그래." (니 나이 땐 다 그렇지, 뭐.)
머지않아 쓸데없는 소리일 터이니 그러라고 했다.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만 4세 아동의 흔한 비혼 선언은 전혀 놀랍지 않다. 얼마 전까지는 커서 친구 중 누구랑 결혼해야 하나 고민하더니 참 매일이 다르다. 현재 비혼을 계획하는 둘째와 달리 첫째는 요즘 엄마를 사랑하지만 결혼은 할 생각인 것 같다.
어릴 때 몰랐던 삭신이 아픈 느낌을 이제 너무 잘 안다. 이제 하다 하다 부쩍 잦아진 손가락 마디 통증에 애들 카시트 안전벨트 풀기도 부담일 지경이다. 아무래도 몸의 모든 관절에 신경 쓸 나이인가 보다. 내 등을 꾹꾹 누르는 아이들의 손은 작지만 힘이 세다. 심지어 땀까지 송골송골 맺혔기에 그만 하라고 말렸다. 100살까지 같이 살아야 하는 엄마의 장수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인가 싶어 껄껄 웃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에겐 아직 엄마가 세상 전부 같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비록 수시로 흩날리는 멘털일지라도 아이들이 그걸 눈치챌만큼 자랄 때까지는 튼튼한 뿌리로 보이길 바란다. 그렇게 보여야겠다. 어깨가 이렇게 쑤시고 관절들이 삐그덕거려도 00구 00동 리미티드 미인 엄마는 오늘을 무사히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