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예뻐요!

어둠 속 투명한 대화의 기록

by 미미

"엄마랑 유치원 선생님 중에 누가 더 좋아?"

"비밀이야..."


한국에 돌아와 유치원에 적응할 무렵, 남편의 주도 하에 진짜 유치한 질문을 하나 했는데, 첫째는 엄마와 유치원 선생님 중에서 더 좋은 사람을 고르지 못했다. 엄마 앞에서 비밀이라고 답했다면 마음속에서 이미 고른 것이라 생각하는 게 맞지 싶다. 경쟁자가 유치원 선생님인데! 그런데 질문의 요지를 전혀 모르는 둘째는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다가 따라 한답시고 몹시 이상한 질문을 했다.


"엄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랑 나 중에서 누가 더 좋아요?"

"?!"


난 단번에 엄마를 외치지 않은 첫째에게 서운한 내색을 했지만 그건 일종의 퍼포먼스다. 아이가 선생님을 골라도 난 전혀 충격받지 않는다. 녀석이 무슨 대답을 하더라도 결국 전적으로 의지하는 건 엄마인 나이고 대체자가 전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한테 혼나도 나를 향해 울며 팔 벌리는 아이들을 보자면 세상에 오직 믿을 사람이라곤 감정조절 미숙한 엄마뿐인 비참한 상황에 보는 사람조차 서러워질 때가 있다. 엄마가 날 울려도 내가 갈 곳은 고작 엄마뿐이라는 것. 육아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마취제로 녀석들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과 각종 개그를 누린다.


첫째는 29개월 때 처음으로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가끔 하는 인스타그램에까지 기록을 남긴 걸 보면 그 천진한 초보 엄마는 그 고백을 말 그대로 소중히 받았다. 달콤한 형아를 보고 자란 둘째는 말문이 트이자마자 사랑고백을 남발했고, 둘은 자기 전에도 깼을 때에도 경쟁적으로 고백했다. 엄마, 사랑해요. 지구가 뽀개지게 사랑해요. 우주가 없어질 때까지 사랑해요. 갤럭시를 수없이 넘나드는 사랑고백은 받는 자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이 내 애정표현을 기다린다. 뽀뽀를 살살하라면서도 좋다고 깔깔 웃고, 더 꽉 안아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물론 사랑한다는데 엄마 말은 썩 잘 듣지 않는다. 언제 말 잘 듣냐고 물으면 말 잘 듣는 친구는 내일이나 다음 주에 온다고 하는데, 본 적이 없다. 쯧쯧, 이 놈들은 사랑의 의미를 잘 모르는 거야. 계속 투덜거리다 문득 사랑이 뭔데 싶었다. 뭔가 해주고 베푸는 게 사랑의 본질 같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천사 버전과 악마 버전을 오가는 이상한 엄마의 진심을 잘 받아먹고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도 사랑은 사랑이다.


둘째가 꽃을 실컷 따더니 손수건을 덮어주었다. 병주고 약주고.


"엄마, 저는 엄마 생각을 잘하거든요. 그래서 엄마 생각을 하다 보면 울게 되는 거예요."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던 둘째가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어둠 속이지만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눈이 어렴풋이 보였다. 내가 크게 웃어 보였더니 아이도 날 보며 큰 미소로 화답한다.


"오늘 유치원 도착해서 가방 정리하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났어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선생님이 달래주셨어?"

"아뇨. 혼자 꾹 참았어요."

"우와, 이제 혼자서도 참기도 해? 씩씩하게 잘하고 있구나.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안 울고 갈 거예요. 근데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말을 할 수는 있어요. 근데 안 울고 갈 거예요."

"풉!"


사뭇 진지한 아이의 심경고백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 나름대로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 내 눈에는 무언가에 한번 적응시키려면 눈물바람이라 걱정되는 막둥이고 길에서도 한껏 뒤집어지는 막무가내 떼쟁이지만, 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느리지만 매 순간 자라나는 한 사람이 들어있구나. 울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가기 싫다는 말은 못 견디고 할 수도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 참 듣기 좋았다. 너는 정말 투명하구나.


"엄마, 예뻐요!"

"엄마, 예뻐요!"


내가 며칠 만에 화장을 하거나 한 달 만에 귀걸이를 바꿔달거나 백 년 만에 원피스를 입으면 눈썰미 좋은 첫째가 진지하게 말한다. 뒤이어 둘째도 형아를 따라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예뻐요!"


자기 전에 하는 둘째의 사랑고백은 좀 더 길어졌다. 이 아이들은 날 사랑하는 게 확실하다. 결혼도 안 하고 엄마와 살겠다고 다짐하는 나이. 언젠가는 피식하고 헛웃음 나올 이 시절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첫째 어릴 적 옹알이부터 둘째의 아직 혀 짧은 목소리까지, 다양한 녹음파일이 휴대폰에 가득하다.


"엄마한테 자장가로 달팽이의 하루 불러주라. 그 노래 너무 좋아."

"근데 왜 녹음해요?"

"나중에 다시 들으려고."
"그때 다시 부르면 되죠."

"그래도 엄마는 오늘 부른 거 듣고 싶어 질 것 같아."


보슬보슬 비가 와요, 하늘에서 비가 내려요
달팽이는 비 오는 날, 제일 좋아해
빗방울과 친구 되어, 풀잎 미끄럼을 타볼까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야호 마음은 바쁘지만, 느릿느릿 달팽이
어느새 비 그치고 해가 반짝, 아직도 한 뼘을 못 갔구나
조그만 달팽이의 하루


아이를 재우고 다시 듣는 이 노래는 달콤하기도 하고 벌써 지나간 하루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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