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래 살아야 해요.

내 사랑 걱정맨

by 미미

"이건 아침의 연속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후식이죠."


식후에 귤 하나를 까먹으면서도 할 말이 많은 아이. 우리 둘째는 역대급 수다쟁이다. 얘기 좀 그만 하라고 하면 말을 멈추긴커녕 자긴 수다쟁이라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수다쟁이는 오늘 특히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등원을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의 유치원에서 확진 가정이 나왔다. 어제저녁 들려온 학부모 확진 소식에 이어 오늘 아침엔 아이의 확진 소식까지 더해졌다. 이미 등원은 접어둔 참이었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몇 주 전에 잡아뒀던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울적할세라 수다쟁이와의 딜을 해결해야 했다. 드라이브 스루로 하고 싶은데, 녀석의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친구들도 다 하고 등원할 거라 어쩔 수 없어. 대신 코로나 검사하고 와서 엄마가 맛있는 거 줄게."

"엄마, 그럼 TV 보여주면 안 돼요?"

"TV?"

"네, 맛있는 건 아무래도 이도 썩을 수 있고 하니까 TV를 보는 게 좋겠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충치를 염려했는지 먹을 것 대신 TV 시청 찬스를 제안한 둘째는 코로나 선제 검사를 하고도 눈물 한 줄기를 흘렸을 뿐 울지 않았다. 창문이 열리는 순간 긴장된다는 말을 반복하긴 했지만 잘 참아냈고 집으로 오는 동안 진짜 아프다며 무용담을 늘어놨을 뿐이다. 와, 병원 입구만 보여도 울기 시작하고 체온계든 청진기든 가까이 오기만 하던 뒤집어지던 4살 둘째는 이제 엄마랑 딜을 하는 의젓한 6살 유치원생이다.


"그래서 결과는 언제 나와요?"

"아마 내일 나올 거야."

"코로나면 어떡해요?"

"혹시나 해서 검사한 거니까 걱정 마. 선생님들도 다 검사하셨는데 다 음성 나오셨대."


오늘 안 나온다고 그리 말을 해도 둘째는 하루 종일 자신의 검사 결과를 묻는 질문을 반복했다. 나 또한 혹시 모를 결과에 대한 불안이 없진 않지만, 걱정맨의 동생 아니랄까 봐 이 녀석도 참 걱정이 많다. 진짜 걱정맨 우리 첫째는 거의 매일 나의 장수를 기원한다.


"엄마, 오래 살아야 해요."

"응, 오래 살 계획이야. 엄마는 이미 초등학교 때 그렇게 정했어."

"그렇지만 오래 살려고 한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왜 맨날 오래 살 수 있냐고 묻는 건데?"

"엄마 오래 살아야 하니까요. 오래 살 수 있는 거죠?"

"어, 그러려고."


도돌이표 같은 이 질문의 굴레. 우리 첫째는 수많은 걱정을 한다. 자연재해부터 범죄까지 장르도 얼마나 다양한지 들을 때마다 신박한 걱정템에 놀라곤 한다.


저 유괴되면 어떡해요? 1학년이 되자마자 유괴 방지 교육이 있었구나.

코로나 걸리면 어떡해요? 그건 조심하고 있지만 계속 조심하자.

지진이 나면 어떡해요? 잠을 못 이룰 만큼 쉬이 만날 재해는 아니야.

저도 휴대폰 있는데 보이스 피싱당하면 어떡해요? 넌 금융 거래를 못해서 걔네도 원하지 않아.

전쟁이 나면 어떡해요? 아빠는 가야 할 텐데요? 그건, 아빠한테 물어보렴...


급기야 아빠를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의 현장에 내보내기까지 첫째의 걱정에는 국경도 그 어떤 한계도 없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에는 많은 겁쟁이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겁쟁이 빌리는 걱정인형이 걱정이 많을까 봐 걱정하다 못해 걱정인형을 위한 걱정인형을 만들고, 무지개 물고기는 상상력을 발휘해 수많은 걱정거리를 만들어 걱정한다. 비록 겁쟁이 빌리는 Silly Billy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하는 걱정은 silly하지만은 않다. 어른인 나 또한 얼마나 하찮은 고민들을 하곤 하는데, 저 작은 아이들 머릿속에 세상이 얼마나 크고 두려움은 또 얼마나 클까? 기억 속 넓디넓은 운동장과 계단이 떠올랐다. 아주 나중에 초등학교를 가봤을 때 쪼그라든 운동장과 계단이 마치 내가 거인이 된 것처럼 낯설었더랬다. 너의 눈에 엄마 아빠도 세상도 참 커 보이겠지.


밤마다 걱정이 많은 우리 첫째는 어둠 속에서 진짜 쓸데없는 걱정을 늘어놓으며 내 수면시간을 줄이는데 오늘은 웬일로 먹는 걸 얘기하다 잠들었다.


"아, 라볶이 먹고 싶다. 떡볶이! 국물떡볶이!"

"10시야..."

"먹고 싶어요."

"국물 너무 좋아하지 마..."

"그렇지만 국물떡볶이는 어쩔 수 없어요. 국물을 먹어야 맛이 나거든요."

"그건 그래..."


어차피 떡볶이 아직 씻어먹는 둘째도 괜스레 형아의 말에 동조하며 하루가 끝났다. 잠든 아이들은 다시 예쁘다.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방을 나서며 내게 장수의 의무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도 국물떡볶이 먹고 싶다. 자기 전에 음식 얘기는 반칙 아니냐.


무지개 물고기 엄마는 잠들 수 없는 수많은 걱정을 늘어놓는 무지개 물고기에게 말한다. 엄마가 지켜주겠다고. 진짜 무지개 물고기 엄마는 이상적인 엄마상이야. 오늘 국물떡볶이 얘기로 잠든 아이들을 보며, 내일 밤 또 새로운 걱정이 찾아들었을 때를 위해 물고기 좀 닮아보기로 내 마음을 준비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라는 말 대신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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