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늘 내 오른쪽에서 잔다. 아빠와 엄마 사이를 선점하는 형아한테 밀려나 늘 바깥쪽이지만 누구보다 엄마 품을 깊이 파고들며 잠든다.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녀석은 눈이 풀리고 잠들어가면서도 간간히 중얼거린다.
"엄마, 사랑해요..."
아직 형아의 체력을 따라가기 어려운 둘째는 종종 졸음을 참지 못하고 낮잠에 든다. 아직 잠투정 시작하면 울고불고 답이 없는 꼬마라서 내 나름대로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초기대응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피곤한 기색이 있을 때 미리 낮잠을 제안하거나 저녁을 빨리 먹여 양치까지 마친다. 유난히 졸리다는 타령이 계속된 오늘, 첫째가 잠시 피아노 학원에 간 사이에 낮잠을 재우기로 했다.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첫째에 비해 잠에 솔직한 둘째는 쉽게 동의했다.
"엄마, 그럼 일단 책을 하나 읽고 자볼까요?"
"좋아."
"그럼 내가 골라서 갈게요. 엄마, 기다려요."
긴 것도 골랐다. 읽고 나니 길어야 30분쯤 잘 수 있을 텐데 여유만만이던 녀석이 피곤하긴 피곤했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눈이 풀리더니 졸기 시작했다. 낮이라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둔 상태였는데도 아이의 온기 덕에 따뜻하게 느껴졌다. 짧은 팔로 날 최대한 감싸 안고 겨드랑이를 파고들던 둘째는 졸다가 말고 빼꼼 날 올려다보며 빙긋 웃더니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엄마, 좋아."
엄마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아이의 표정에 난데없이 눈물이 났다. 사랑을 하나만 줘도 열개로 돌려주는 아이들을 차갑게 바라보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더 졸리면 짜증 낼 것 같으니 얘를 빨리 재워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런 내게 세상 다정한 눈빛이 다녀갔다.
첫째는 요즘 희한한 질문에 꽂혀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복하는 중인데 처음 들었을 때 너무 깜짝 놀라 좌절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엄마는 왜 날 안 사랑해요?"
"헉, 왜 그렇게 생각해? 엄마는 네가 처음 생겨서 뱃속에 콩알만 하게 자랄 때부터 1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히죽히죽)"
"엄마가 혼낼 때는 안 사랑하는 것 같아?"
"네..."
"엄마는 세상에서 너보다 더 사랑하는 게 없어."
"그럼 엄마는 왜 날 사랑해요?"
"하나님이 사랑으로 돌보라고 맡겨주셨거든."
그제야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무래도 아이가 엄마가 자길 사랑하네 사랑 안 하네 생각하는 건 혼나기 때문이겠지 싶어 물으니 역시나다. 첫째는 진심으로 신기해하며 내게 물었다.
"근데 엄만 그걸 어떻게 맞춘 거예요? 우와."
"엄마도 혼내면 네 마음이 걱정돼서 후회하니까."
얼마 전, 강추위를 뚫고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가서 기타 등록을 넣고 왔다. 눈발이 날리기 직전에 집에 도착해 한시름 놓고 먹이고 씻겨 재울 준비를 마쳤다. 비로소 휴대폰 쥐고 저녁 메뉴를 준비해주신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 저녁 할 시간 없었는데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 오야, 오늘도 내 새깽이 수고 많이 했네.
내 눈물은 정말 항상 난데없다. 저 카톡에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잠시 멈춰서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낯간지러운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모르고 나도 누구에게 그런 말을 잘 못하지만, 어쩜 이런 응원이 말이 늘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조금은 예민한 나보다 쿨내가 진동하는 엄마의 언어 때문에 종종 크게 서운하곤 했건만 새깽이라는 한마디에 마음이 난로 앞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이런 말을 더 일찍부터 듣고 싶었었지. 표현하지 않는 마음이 때로 얼마나 알아차리기 어려운지 알고 있는 나는 정작 내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늘 사연 있는 아이가 나온다. 아이가 엄마 아빠 없이 AI의 질문에 솔직한 대답을 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 진심은 너무 순수하고 사랑이 가득해서 내가 때로 문제행동 하나를 놓고 아이의 저의를 짐작하고 차갑게 평가하는 나쁜 어른이 아닌가 부끄럽다. 저기 나온 용감한 부모들의 자리에 가서 CCTV로 내 모습에 거리두기를 한다면 어떨까? 나는 잘하고 있을까? 아이들에게 상처 입히는 순간들을 떠올리며 TV 속 아이들에게 울컥한다. 나는 과연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우리 아이들 꼬맹이 시절의 단단한 뿌리를 키워주고 있을까?
둘째에게 우리 꼬꼬맹이가 왜 이렇게 귀엽냐니까 갑자기 형아한테 서운했던 캐캐 묵은 일을 털어놓았다. 형아가 자기 보고 꼬맹이라고 해서 속상했었다는 얘기를 하며 그때의 서러움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참는 듯 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여린 마음이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해서 꼭 안아주었다.
"꼬맹이라는 말이 기분이 나빴구나?"
"(끄덕끄덕)"
"그런데 말이야. 너무너무 많이 귀여우면 꼬맹이라도 하기도 해."
"아~!"
세상에, 이렇게 쉽게 설득되다니. 역시 둘째는 내 웃음보따리다. 알고 보니 꼬맹이 소리 들은 게 작년인 모양이다. 눈을 크게 뜬 녀석이 나름의 근거를 덧붙인다.
"그럼 나 이제 6살이라서 형아가 꼬맹이라고 안 하나 봐요. 그다음엔 막 7살 되고, 8살 될 거니까."
"근데 엄마 눈엔 형아도 너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꼬맹이들이야."
귀여운 둘째를 안고 재우며 피아노를 치고 있을 뭉툭한 손가락의 첫째를 생각한다. 한때는 내 하나뿐인 아가였는데 한창 귀엽던 시절에 동생을 얻고 늘 덜 귀여운 역할이었던 첫째가 애잔했다. 오늘은 더 많이 안아줘야지. 둘째의 숨소리가 점점 규칙적으로 바뀐다. 아이들이 아니고서야 내가 누군가의 숨소리를 이렇게 귀 기울여 들었던 적이 있을까?
자꾸 사랑을 확인하는 첫째에게 볼이 빨개지도록 뽀뽀를 퍼붓고는 인스타그램에 있던 아기 첫째의 사진을 함께 보았다. 사진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같이 얘기해줬더니 비로소 사랑받는 느낌이 충만해지는 듯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이렇게 함께 볼 날을 생각해서 인스타를 좀 더 꾸준히 할 걸 그랬나. 사랑을 하나만 꺼내 줘도 열개는 내보이는 아이들에게 난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언젠가 나는 아이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게 무작정 싫었다. 긴 시간 힘들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육아를 글로까지 남기는 게 진부하고 찌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일기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그런 "나"를 다시 생각하는 중이다. 내게 맡겨진 아이들을 짐짝처럼 대하지 않으려면 이 일상이 소중해야만 한다. 애들이랑 씨름하는 것이 비생산적이고 성취감도 없다는 마음속 불평들이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심각한 위험요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아노 학원에서 준 작은 젤리 한봉에 신이 난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육아라는 것이 지나치게 힘쓸 일도 아니고, 내가 웃는 만큼 아이들도 살아지는 거라고. 내 분명 한때는 놀리기 딱 좋은 리액션의 퀸이었더랬는데, 아이들에게 참 박했구나. 편하게 살자. 편하게 끄적이자.
우리 아이들도 나도 참 좋아하는 동화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 - Oh, the Places You'll Go! By Dr. Seu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