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도 웃게 하는 택배

무엇을 기다리는 시간

by 미미

만화 브레드 이발소에는 사장인 브레드(식빵인데 무려 미용의 대가)와 윌크(MILK인데 오타가 나서 WILK가 된 사연 있는 캐릭터)와 초코(웃음이 없는 시크한 캐셔)가 근무한다. 이들 중 초코라는 캐릭터는 거의 웃지 않는다. 세상사에 무심한 말투로 툭툭 몇 마디 하는 역할이랄까. 오죽하면 <초코를 웃겨라>란 에피소드에서는 그녀를 웃기기 위해 모두가 애를 쓰는데 실패하고 만다. 여기에서 승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마지막에 등장한 택배기사. 택배의 등장과 함께 초코는 활짝 웃는다. 애들 만화 보다가 이렇게 공감할 일인가. 현실 고증이 철저한 만화다.



미국에서 소포 기다리기는 나의 낙이었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선편 소포가 등장한 건 둘째 몸조리를 도와주러 오시는 엄마가 미리 이런저런 짐을 부치시면 서다. 혼자 오시니 최대한 가볍게 오시고자 여러 가지를 보내셨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에 앞서 출발한 선편 소포는 가뜩이나 우울감에 시달리던 임산부에게 흔치 않은 행복감을 불러왔다. 그 이후, 난 나의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는 것을 두 눈 말짱하게 뜨고 보면서도 한국의 온라인 쇼핑을 누볐다. 그것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친정엄마가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부치는 일이 반복됐다. 한 달 반 걸리는 그 소포가 그리도 기다려진다고 했더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거 기다리는 낙이라도 있어야지."


무려 45일 정도 걸리는 선편 소포가 집 앞에 던져지는 날이면 즐거운 언박싱 타임이 기다렸다. 미국에 없는 아이들 누빔 내복, 기모 바지, 말린 나물, 카봇 같은 한국 장난감, 잉여로운 텐바이텐 쇼핑템, 빈 공간에는 과자 같은 먹거리로 꽉 채워진 우체국 박스. 별 거 없는데도 누군가의 좋은 소식처럼 기다려지는 것. 카톡도 페이스타임도 지체 없이 할 수 있는 요즘, 소포가 아니면 기다림의 맛을 어디서 느꼈을까? 매주 돌아오는 드라마의 다음 회차를 궁금해하든, 코로나의 끝과 아이들의 정상 개학을 간절히 소원하든, 인생은 기다림의 맛을 빼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다. 때론 너무 빠른 로켓 배송이 내 인내심을 앗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한 달 반의 설렘이 그 시절 내게 큰 기쁨이었는데, 이 기다림의 맛은 어디서 채울 수 있을까 싶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 필요한 일이더라도 막 너무 하고 싶진 않지만 - 아이들과 외출할 일이 없는 지금은 집콕하며 기다리는 각종 택배와 새벽 배송이 낙이다. 특별히 지르는 것 없이도 들썩이는 카드값을 가까스로 달래 가며 장을 보고 면역력에 좋다는 제품을 찾아 먹이고 산타의 선물도 주문하며 겨울나기에 한창이다. 상품설명에 의존하고 리뷰 한 줄의 진실에 집착하며 하는 온라인 쇼핑은 늘 모자란 내 시간을 더 많이 빼앗아간다. 마트로 오가는 시간은 분명 줄었건만 드는 시간은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 편리함은 정말 내 시간을 아껴주고 있는 걸까?


요즘 택배보다 긴 기다림은 당근 마켓에서 경험하고 있다. 관심 있는 물건의 키워드를 넣어놓고 푸쉬가 뜨길 기다린다. 내가 찾는 것은 주로 아이들 책이다. 새책은 단행본이나 소전집 위주로 사주고 거래가 많은 전집은 중고를 애용하는데 기다리다 못해 차라리 새로 사기도 하고 어떤 책은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 끝내 기다린다. 스스로를 책벌레라 칭하는 첫째가 읽을 책들을 미리 조금씩 구해두려는 건데, 찾는 책에 따라 경쟁률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그 책의 판매글이 떴다는 알람은 고작 14초 전에 울렸는데 클릭하니 벌써 예약 중인 건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가끔 타이밍이 잘 맞아 거래에 성공하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나도 처음으로 당근에 판매 물건을 내놓았는데 벌써 대기줄이 생겼고, 픽업도 안 왔는데 선입금이 들어왔다. 정말 뭘 해도 치열한 세상이다.


아이들 책을 많이 쟁이고 있는 중고서점 몇 군데를 찾아둔 게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직접 가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고 사다 나르고 싶다. 오는 길에 군것질 하나씩 물고 돌아오면 더 좋겠다. 친구를 만나 서점에 널브러져 책을 뒤적이다 마트와 쇼핑몰을 쓸데없이 걷고 싶고, 남편과 장을 보며 별 내용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건을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고 싶다. 과일이 충분히 신선한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 아이들 내복 재질을 만져보고 사고 싶다. 시식코너를 다 돌며 맛보게 해 주고 가끔은 먹이기 싫은 간식거리도 아이들 떼에 못 이겨 사 오고 싶다. 손가락만이 아닌 내 다리를 움직여 그 과정을 걷고 싶다. 장만 봤는데 내 소중한 주말 하루가 다 갔다며 투덜거리던 그 언젠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기대와 달리, 이 기다림은 제법 길어질 것 같다. 오늘 아침엔 유치원 선생님들께 번갈아 전화가 왔다. 언제나처럼 밝은 목소리의 선생님들이지만, 계속 바뀌는 등원 상황과 학부모들 요구에 맞춰가느라 한 해가 고단했을 것이다. 유치원은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공지를 가장 빠르게 주곤 했다. 그때마다 유치원 전화는 불통일 것인데, 나라도 전화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기다리곤 했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여러 가지 일이 겹친 내가 머리 쥐어뜯을 게 보이셨는지 엄마는 염려의 말을 건네신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충분히 힘들었던 나의 한 해가 어느덧 저물어 간다. 30대의 마지막 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때를 크게 놓쳐 후회한 일도 있었고, 여태 곱씹게 되는 실수도 있었고, 분통 터지는 일도 있었고, 눈물이 펑펑 쏟아지게 슬픈 날들도 있었고, 크게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꼽 잡게 웃은 날도 있었고,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한 일도 있었고, 좋아서 눈물이 난 순간도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무사히 한 살 더 먹을 거니까.


"엄마는 이제 마흔?"

"어... 그렇지만 엄마는 생일도 늦은데! 잉잉잉~ (우는 흉내)"

"왜 잉잉잉해요?"

"어? 음, 그냥?"

"왜요? 왜 잉잉잉했어요?"


나이 먹을 생각에 들뜬 아이들이 알고 싶지 않은 내년의 내 나이를 자주 알려준다. 왜 엄마가 나이 얘기에 징징거리나 궁금한 표정의 둘째가 빤히 쳐다보며 끈질기게 캐묻는다. 그러고 보면 뭐 그렇게까지 나이 먹기 싫어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잉잉잉할 필요 없네. 엄마도 마흔 되는 거 좋아."

"왜요?"

"(싫어도 캐묻고 좋대도 캐묻네?) 나이 먹는 것도 좋지, 그만큼 무언가 더 나아지는 거잖아."

"나도 레고 조립도 더 잘하고? 한글도 잘 쓰고?그러잖아요?"

"응, 그러게. 손이 많이 야물어졌던데? 엄마도 나이가 드니까 더 잘하는 것들이 있거든."


말은 듣기 좋게 했는데 사실 뭐가 나아지는지, 잘 살 줄 알게 되는지 모르겠다. 더 못하는 것들도 같이 늘고 있어서 말이다. 깊은 얘기는 네가 더 자라면 그때 하기로 해. 그래도 나이는 때가 돼야 먹는 거니까, 그만큼 오래 기다려서 얻는 것이니까 기뻐하자. 야호, 내일 나 마흔이다!


(아, 그래도 인간적으로 만 나이로 하자. 우리나라 이거 진짜 바꿔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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