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나는 세 자매 중 막내딸로 자랐다.
아버지가 다른 이복언니들이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자랐으니 영락없는 *원가족이다.
(*개인이 태어나서 자라 온 가정, 혹은 입양되어 자라 온 가족)
언니들과는 12살 이상으로, 적지 않은 나이 터울이었기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이미 청년이 된 언니들에게 나를 자주 맡겼다.
극 외향적인 큰언니는 집에 없는 날들이 많아서 주로 작은언니가 나를 보육(?)해주었는데 이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은근히 따끔한 상처로 남아서 나중에는 성형할 수 없을 만큼 패어버린 흔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철저히 나의 시선으로 보고 쓴 글이기에 작은언니가 보면 오류 많은 기억이라 할지 모른다. 전에는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굉장히 눈치 보며 말을 꺼내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았는데 우울장애에 걸리게 된 과정을 돌이켜보면 철저히 나의 시선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더라.
남 눈치 보며 살면 호구 잡히기 십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이 눈치 보면서 사니깐 내 생각을 너머 나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고 휩쓸리는 대로 살아가게 돼서 이제는 내 눈치를 더 보자- 하며 살고 있다.
작은언니가 종종 하는 말이 "너를 업어 키웠다"인데, 나는 100% 동의하며 깊이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내가 태어날 때 작은 언니는 초등학교 6학년.
아기 아버지는 집에 없고, 노산에다가 집안일까지 하느라 힘들었을 엄마를 대신해서 분유도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줬단다. 작은 아기를 안기가 무서워서 집 안에 유모차를 두고 슬~슬~ 밀며 재워줬단다.
속싸개 매듭을 정성스럽게 매어주고 겉싸개를 포근하게 덮어주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기의 이마를 쓰다듬어 줬단다.
아직 태열이 내려가지 않은 핏기 어린 아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데...
아쉽게도 나에게 그런 기억은 당연히 남아있지 않다.
당연한 일이지만 살짝 억울하기도 하다.
작은언니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전혀 없는 나는 그녀가 그토록 주장하는 "너를 업어 키웠다, 너는 너무 사랑한다"라는 말을 인정만 할 뿐...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이 전해진다거나 자매의 끈끈한 정을 느낀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나에게 최초의 기억은 5살쯤.
작은 언니가 식사를 차려주던 일이다.
언니는 간소한 반찬과 밥을 주거나 간장계란밥 같은 덮밥을 주로 차려줬고 가끔 참기름 같은 오일을 넣은 파스타를 만들어줬다.
어린 나에게 파스타는 특식이었다.
지겹도록 먹었던 찌릿했던 라면과 다르게 담백하고 고소한 참기름 파스타가 나에겐 무척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 싶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더 달라고 말해 본 적은 없다.
언니는 나에게 작은 밥상을 차려주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주로 혼자 밥을 먹고 밥상을 질질 끌어다가 주방에 가져다 두었다.
밥상을 들 때마다 그릇을 떨어뜨릴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밥상을 주방에 가져다주지 않았더니 언니가 화를 냈다.
너는 밥만 처먹었지, 밥상도 못 갖다 두냐?
"그릇을 떨어뜨릴 것 같아서 무서워"라고 말하거나 그릇을 먼저 주방에 두고 밥상을 드는 용기와 센스 따위 없었던 나는 밥상을 소리 나지 않게 질... 질... 끌어서 주방에 두는, 다소 무식하지만 대쪽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
언니와 함께 밥 먹고 싶었다.
언니가 만든 밥 맛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밥 차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언니가 방문을 닫아버렸기에 기회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이야기 꺼내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작은언니와 나의 거리는 딱 그 정도.
서로에게 형식적으로 무언가 해줄 수 있고 해주기도 했지만 마음을 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감사인사를 하는 것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기분을 물어보는 것
위로하는 것
하루를 챙겨주는 것
한 공간을 영위하는 것
가족이라면 스스럼없이 하는 일이 우리에겐 영역 침범이었고 불편한 호의였다.
한 번쯤 해보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
가족인데 가족 안에 녹아들기가 참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