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주마등-유전무죄(1)

by 미미



사람에겐 다 자기의 뿌리가 있다.
니 뿌리는 나여, 나...
너랑 나는 천륜이란 말이여...
끊어내려고 해도 끊어낼 수 없는 게 천륜이여...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게 언제지?

20년 전?

유독 *천륜에 대해 강조하던 아버지 입에서 어느 순간 천륜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을 꾸준히 들으니, 이 사람과 나는 정말 끊어질 수 없는 사이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와 코, 눈매, 발끝 손끝까지 닮았단다.

어느 날은 말투가 너무 닮아서 소름이 끼친단다.

아버지와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아이러니하게 아버지와 똑 닮은 아이.

어느 날은 궁금했고 어느 날은 증오스러웠고 어느 날은 체념하기도 했다.



* 천륜: 부모ㆍ자녀 간이나 형제 사이와 같이 변할 수 없는 관계와 도리.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엄마가 얘기해 줬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은 대부분 어렵고 힘들던 시대의 범법적인 행동이라서 크게 감명받거나 기억에 남기고 싶은 것들은 아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아버지의 부모님, 형제들, 어릴 때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가족과 자랐는지 따위가 궁금했던 건데 내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는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듯싶다.

무튼 30년 넘게 살면서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이라곤, 깡촌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어른들 먹을 것도 없어서 죽으라고 산에 내다 버렸던 아기였다는 것. 누이가 아버지를 데려와서 나무줄기를 씹어서 먹여 키웠다.

6.25 전쟁이 일어났는지 끝났는지도 모르게 숨어있던 첩첩산중에 살았다던데 언듯 들으니 충북 괴산의 어느 산자락 밑에 살았단다.

7살이 넘도록 힘이 없어서 걷지 못했던 아버지.

사람들은 걷지 못하는 아이인 줄 알았다는데 못 먹어서 힘이 없어서 걷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뭐... 사촌형들과 무당집에 차려 둔 음식들을 훔쳐 먹었던 이야기?

서울로 상경해서 처음에는 소금을 팔았고 남들 신발을 닦았고 시체를 닦으면 돈을 많이 준다 해서 장례식장에서 시체를 닦았다.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나 미신은 아버지의 배고픔과 성공에 대한 갈망 앞에서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으로 말하는 '장례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었고 장례식장 바로 옆에 조그마한 다방을 차렸다.

장례식장 안에 딱히 쉴만한 공간과 이야기 나눌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장례식장 옆 다방'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노래방을 차렸다.

초창기 노래방은 지금의 코인노래방처럼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부르는 시스템이었는데 초창기 노래방 창업으로도 많은 돈을 벌었지만 본격적으로 금영과 TJ가 노래반주기를 출시하고 시간당 요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노래방 사업은 무섭도록 확장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확장되고 점차 안정세를 찾을 즈음에 내가 태어났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전부.

아버지의 부모나 형제에 대한 것은 아예 모르고 고향이 괴산이었다고 하지만 당연히 어느 동네인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아버지의 발사이즈나 아버지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음식? 같이 일상적인 것도 전혀 알지 못하고 아버지가 어떤 성격이었는지도 말로 꺼내자니 착찹시러울 정도로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자신에 대해 알든지 모르든지 전혀 관심이 없기에.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도 없을뿐더러 자기 자식인 나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다.

아버지 역시 나의 성격이나 내가 졸업한 학교, 나의 나이도 알지 못한다.

내가 17살, 고등학교 1학년때 등교하다가 아버지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수능을 잘 보라며 용돈을 주고 지나갔다.

고등학교 교복 입은 나를 처음 본 아버지였다.

나는 이제 30대가 훌쩍 넘었는데 아버지는 막내딸이 이렇게 나이 든 것을 알까?

아니면 내가 30대가 아니라 50대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가 나의 아버지니깐 우리는 변할 수 없는 천륜이고 아버지는 그 역할에 대해서 나름의 방법으로 도리를 다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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