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살 시도
그날은... 어떤 일이 있어서 처음으로 "죽음"을 실행했더라?
그날이 아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던 것은 느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버지의 내연녀 문제로 엄마와 아버지는 근래에 심하게 다퉜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았고 엄마는 금전적인 어려움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나와 공유하려 했다.
아버지는 개 만도 못한 새끼였고 *갈보새끼란다.
엄마는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나를 붙잡고 아버지욕을 쏟아놓았다.
*갈보: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여자, 매음하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듣기가 민망하여 모른 체하며 엄마의 불행을 모른 체하는 방관자가 되어버리고, 합세하여 욕을 하면 아버지의 딸인 내가 스스로 비참하게 느껴졌다. 적당히 받아치고 맞장구 쳐주면서 엄마의 비위를 맞춰가던 15살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원래 우리와 함께 살지 않고 하루 한두 번씩 오고 가며 밥을 드시거나 쪽잠을 주무셨는데 엄마와 싸움이 잦아지자 왕래를 서서히 끊어버렸다.
간혹 아버지가 올 때면 그간 쌓아뒀던 엄마의 분노는 더 크게 폭발하였고 아버지는 경멸하는 눈길을 흘렸다.
가녀리고 불쌍한 엄마.
얼굴을 감싸 안고 울다가 욕을 하고 다시 울고를 반복하며 몇 벌 없는 아버지 옷을 현관 밖으로 던져버렸다.
더러운 새끼. 씹질 하다 뒈질 새끼!
저 새끼한테 전화해서 옷이고 뭐고 다 가져가라고 해! 불태워버리기 전에!
생전 아버지한테 전화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처음 하는 통화였을 것이다.
아버지, 저예요. 막내딸이요.
엄마가 아버지 옷을 다 밖으로 내다 버려서요..
옷 다 가지고 가게로 와라.
아버지옷을 바리바리 챙겨서 껴안고 아버지 가게로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봉투에 담아 갈 생각도 못하고 옷들을 바리바리 껴안고 걸어갔네.
길거리에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소복이 쌓인 옷들을 들고 걸어가니 쳐다보았을지 모른다.
아버지 가게로 걸어가는 길이 길게 느껴지고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버지 가게로 가서 옷들을 한편에 내려두고 엉거주춤 서본다.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만 태우더니 "못 보일 꼴 보여서 미안하다" 한다.
"괜찮아요" 하고 아버지의 다음 말을 기다리긴 했는데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만 태우는 아버지를 보니 더 이상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 것 같다.
"가볼게요"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네 아비가 뭐래니?
엄마한테 미안하대.
지랄하네, 미친놈. 또?
그 말 밖에 안 했어
엄마 옆에서도 엉거주춤 서 있다가 다른 말이 없길래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헌신적인 아내, 나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수많은 연인들 중 한 명이었고, 나는 엄마를 감정기복이 심한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다정했지만 무서웠고 부드러웠지만 매서웠다.
엄마는 손가락이 굽어져 펼치지 않을 정도로 일했고, 건강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엄마와 아버지, 나는 그런 가족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전생에 삼천궁녀를 거느리기라도 했는지 번번이 내연녀가 생겼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고 경멸했지만 아버지가 주는 생활비를 비롯한 경제적 원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행실을 무시하고 우리끼리 잘살자, 우리가 열심히 돈 벌어서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자고 몇 번이고 말해봤지만 엄마는 이미 불행한 삶에 완벽하게 녹아있었고 나와 언니들은 그 옆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거나 용암처럼 뜨거운 분노를 피해 숨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성인이 된 언니들은 이런 엄마의 생각과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기에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쩔쩔매는 엄마와 자주 다투었으며 결론은 "아버지는 개만도 못한 새끼고 그 옆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도 결국 똑같다"라고 진절머리를 쳤다.
"돈 가지고 사람을 쥐었다 폈다 하는 비겁한 새끼"
반야심경 외우듯이 몇 날 며칠 증오를 곱씹던 엄마가 다시 기분 좋아 보이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으며 적잖은 생활비를 줬단다.
사실 돈 보다도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엄마를 따듯하게 안아주었다는데 엄마의 분노는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엄마 마음속에 있는 가녀린 여인은 결국 악을 용서하고 다시금 구원받은 모양이다.
엄마가 상냥하게 돌아오니 언니들의 기분도 좋아 보인다.
오랜만에 갈빗집으로 외식을 가자하니 온 가족이 모두 들떠 보인다.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나가자는 엄마에게 나는 배가 아프다 했다.
배가 안 아파지면 집에서 게임하고 쉬겠다 했고 기분 좋은 엄마는 흔쾌히 알았다고 편히 쉬라 한다.
올 때 갈비를 싸 오겠다며 다정하고 따듯하게 말해준다.
만약 엄마의 기분이 안 좋은 날이었다면 눈치 없는 년, 어미가 배 골아도 나갈 년이 되었을 텐데 엄마 기분이 좋으니 홀가분하게 자유시간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고요한 집이다.
다들 얼마나 정신없이 나갔는지 온 집의 불이 다 켜져 있다.
조명의 섬광들이 동공을 찌르는 듯하다.
정신이 잠시라도 해이해지면 시야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조명의 압박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조명의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듯이 가족들이 나에게 주는 자극이 너무 강해서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비정상이다.
다 미쳐버렸다.
이 가족은 미친 가족이다.
우리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놓지 못했고 사랑은 이미 증오가 되어버렸음에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서 악마처럼 변해가는 자신들을 스스로 버리지 못했다.
나도 미치고 싶었다.
돈을 주면 좋아하고 사랑을 주면 느끼고 싶었다.
단말마 같은 사랑이라도 온전히 사랑으로 느끼고 싶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돈이 더러우니 입에 물지 말라" 가르치는데 나에게 돈은, 더러워도 매달려 얻어야만 하는 구원적인 존재였다.
아버지도 엄마도 돈으로 움직였으니깐.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주면 무서웠다.
또 언제 변할지 모르니깐.
사랑은 영원불가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소멸 가능하다.
사랑은 스치는 감정 같은 것.
엄마와 아버지를 보면서 깨달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달 했을 때 나는 밧줄을 들고 있었다.
옷걸이로 쓰이는 대못에 밧줄을 둥글게 말아 묶은 다음 쑤욱- 내 얼굴을 집어넣었다.
마치
심판을
받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집을,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구원받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나니 순간 엄청난 압박이 목에 느껴졌다.
턱 아래가 찢어질 것 같고,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생명의 경로를 차단하는 일을 결코 쉽지 않았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숨을 쉬려 해도 들이쉴 수도 내쉴 수도 없이 몸에 남아있던 모든 숨과 혈액이 눈으로 모이는 것 같았다.
무릎을 피고 똑바로 서려고 했지만 미리 땀으로 흥건한 발바닥과 미끄러운 장판바닥은 올곧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버둥거렸다.
죽을 것 같았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무서움이었다.
몇 번이고 발을 땅에 딛이려 버둥거렸다.
그럴 때마다 목의 조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땅에 다리를 딛고 일어섰을 때 내 얼굴은 땀과 눈물범벅이었다.
나는 죽고 싶은데 죽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죽음의 공포가 절실히 느껴졌다.
죽어야지만 이 고통이 끝날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느낀 고통의 여파가 너무나 크고 무서웠다.
나의 15살 그날은 이렇게 끝이 나버렸다.
아직 턱 밑에 있는 밧줄을 붙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소리 내어 오열하는 순간에도 죽고 싶었다.
한심하다.
병신 같아.
일어서서 울고 있자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다.
아주 깊은 잠에.
방바닥에 접어있는 요를 펴고 죽음의 공포와 자기혐오로 찌들어 무거워진 몸을 뉘어본다.
그리고 아주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