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주마등-애어른

by 미미



20살 명절, 엄마를 따라 외갓집에 갔다.

뭐... 보통의 사람들은 친가보다 외갓집을 더 친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에게는 외갓집도 여간 어색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우선 또래 사촌들이 없었고 외가 사람들도 나에게 큰 관심이 없었으며 나 역시 그들에게 애살있게 다가가는 편이 아니었다.

아마 수능이 끝났으니 기념 삼아(?) 인사드리러 갔던 것 같은데... 그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외갓집을 방문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생전 처음, 언니와 사촌오빠들과 호프집에 갔다.

언니 오빠들이 하는 이야기들 들으며 들어오는 질문에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나랑 항렬이 같은 사촌들이라 해도 나보다 적어도 15살 이상 많은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미미는 언제 봐도 애어른 같아.
너 애어른이 뭔 줄 아니?
아니요
애어른은 애 일 때는 어른처럼 행동하고 어른이 되면 애처럼 행동한다는 거야.
애 일 때 애 답지 못하니깐 크질 못해서 정작 어른이 되면 애가 된다는 거지~
네가 그럴 것 같아
네가 지금은 어른처럼 의젓해도 너 조금만 크면 애 같아질걸?



솔직히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서... 지금 나를 칭찬하는 건가, 나를 까는 건가?'

뭐, 칭찬이라 치자

그래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







내 나이 30대

10여 년 전 사촌오빠가 흘렸던 말은 저주였나 보다.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애로 남았다.

젠장, 뭘 알고 나에 대해 지껄인 걸까

나보다 17살 많았던 인생의 짬밥은 무시 못하는 것이었나?

그럼 애어른인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 오빠는 답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제멋대로 나에게 의젓하고 생각이 깊다고 했다.

단순히 어른들 말에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고 말하기 싫어서 조용했던 것이었는데 다들 어른스럽다고 했다.

어린 나의 속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찼지만 의지할 만한 어른들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삼켰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 상황은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성인이 되니 마땅히 해야 할 의무는 물론이고 책임져야 할 상황들이 생긴다.

더 이상 구석에만 숨을 수 없었다.

사회로 나가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성향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어릴 때처럼 두렵고 불안하다.

누군가 나의 능력을 비난할까 봐 무서워서 나의 능력을 최소치로 표현하고 나의 가면 속 우울함을 눈치챌까 봐 두려워서 미소를 잃지 않는다.

동시에 내가 넘어야 할 인생의 산들을 외면하여 회피하고 미소 안에 눈물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과 교류를 최소화한다.

이렇게까지 나를 '적당한 인간'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어도 한편에 자리 잡은 우울함과 불안함은 멈출 길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패할 것 같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사람들이, 특히 가족들이 나를 비난하고 험담할 것 같다.

나의 성공은 그들의 기쁨인 동시에 그들의 반찬거리였다.



아니 아니, 이건 나의 근본 없는 망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망상이다.



"엄마, 심리학과 수업을 들어보니깐 사람들의 심리에는 다 원인이 있더라, 엄마도 심리학책 빌려다 줄까? 사람들이 말하는 속마음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더라고" 하는 말에 "내가 심리학책 읽게 생겼냐? 같잖은 거 배웠다고 네가 인생을 다 아는 것 같냐?"라는 대답을 들었다.

청소년학을 전공한 내가 HTP 심리검사에 대해 배웠으니 조카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말에 엄마는 "아주 박사 나셨다. 푸하하. 네가 잘난 것 같지? 네가 선생님 같지?" 하며 박장대소를 했다.

조카들을 데리고 어린이도서관에 다녀온 날에는 괜히 쓸데없는데 가서 개고생 하지 말라며 핀잔을 들었고 인근 하천에서 러닝을 하고 돌아오면 "능구렁이 같은 년. 누구랑 전화하고 들어오냐?" 라며 이유 모를 추궁을 들어야 했다.



엄마를 중심으로 우리 가족은 내가 무언가를 하면 그것을 비웃거나 반찬거리 삼아서 잘근잘근 씹어 삼켰고 나는 스스로 몹시 부끄러워졌다.



많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이 분노가 되어 버리는 날에는 주먹으로 내 얼굴을 마구 치기도 했고 엄마가 쓰지 않는 그릇을 들고나가서 외진 골목 벽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정성껏 쓴 시들을 라이터로 태워버리기도 했다.

내가 한 일들을 그들에게 보여주느니 아예 태워버리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더 유익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독하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니깐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감정을 숨기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였던 나는 과묵해졌고 슬픔에 슬퍼하지 않고 기쁨에 기뻐하지 않게 되었다.

어른의 가면을 쓴 것이다.

어른이 된 다음부터는 내 능력치를 뛰어넘는 다양한 변수들을 만났고 당황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니깐 숨을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직장에서 숨게 되면 나는 아주 무능한 직원이 되거나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들었다. 친구들은 학창 시절만큼 나를 찾아주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떠났으며 연인들은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며 상처받아서 내가 먼저 그들의 곁을 떠났다.



패닉이다.

살아갈수록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지혜와 유연함을 배울 끈기가 생기지 않는다.

우정을 지속하기 위해 타인을 공감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사랑을 느끼기 위해 연인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견고하게 할 현명함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어떻게 쌓아야 하며,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끈기도 없다.



그렇다 해도 되는대로 살면 안 된다.

되는대로 살게 되면 분명히 엄마나 언니들처럼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하고 삶을 비난할 것이다.

이렇게 계속 아이로 남는다면 사회로부터 도태당할 것이고, 나는 도태당하기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나고 싶어 할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이미 나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많은 시도를 해봤다.

적어도 나는 우리 가족들처럼 평생을 불행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현재에 존재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생각해야 한다.

어른이 되는 방법을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애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우울장애를 왜 겪게 되었는지, 우울장애를 겪으면서 어떤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지, 우울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 어떤 해결책이 필요하며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고 생각하는대로 살아봐야 한다.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애어른이 아닌 어른이 되고 싶다.




이전 09화우울증의 주마등-15살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