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궁금했고 동시에 증오스러웠다.
엄마 역시 아버지에게 애정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저주했다.
그래도 네 아버지 덕분에 잘 먹고 잘 입고... 네 아버지도 고생 많이 했지...
개 같은 새끼. 개만도 못한 새끼. 더러운 새끼, 갈보새끼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지?
아버지는 우리를 도와준 자선사업가 일까, 아니면 엄마를 이용한 천하의 개새끼일까
이런 이유로 어렸을 때 아버지를 떠올리면 '더럽고 증오스럽다' 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 역시 '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이라는 것에 스스로가 더럽게 느껴졌다.
어린 나의 손을 잡고 가다가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 보여서 자동차 뒤에 숨었다는 이야기로 술 한잔
돈을 달라고 하면 공연히 딴청 피우며 다른 년 한데 가버린다는 이야기로 술 한잔
지 자식 뻘인 여자애한테 추파 던지는 걸 누가 봤다더라 하며 술 한잔
엄마는 매일 밤 텔레비전을 틀 지 않아도 됐다.
드라마 보다 더 현실감 없는 자신의 팔자를 안주삼아 술을 기울였다.
아버지는 아마도 불우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돈과 먹을 게 얼마나 없었으면 갓 태어난 아기를 죽으라고 밖에다 버려놨을까
그 정도로 대책 없는 부모 밑에서 아버지는 어떤 관심을 받고, 사랑을 느꼈을까?
아버지 스스로 관심과 사랑이라는 감성을 느껴 본 적이 있을까?
아버지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돈을 빌미로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특이한 점은 육체적 관계뿐 아니라 그 여자의 삶 전체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접근할 때, 처음부터 육체적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돈이 필요하거나 사정이 딱한 여자에게 접근하여 그녀들의 신파극을 듣는다.
부호가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진심 어린 척 위로해준다는 것에 대해서 여자는 크게 감사해한다.
삶이 힘들어도 열심히 살으라며 위로해주고 적지 않은 돈까지 쥐어 주는 아버지에게 여자들은 깊게 감사한다.
남자로서의 호감이 아니라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호감이 생긴다.
뭐, 간혹 가다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여자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런 여자라도 대부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에게 거처나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고 생각할 때 육체적 관계를 요구한다.
웬만한 여자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단칸방에서 딸들을 키우는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지독할 만큼 무기력하고 무능했던 남자와 결혼하고, 지독히도 열심히 살았던 우리 엄마
어린 날에 등 떠밀려 결혼하고 의례적으로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 수발을 들면서 갓난아기를 업고 파출부일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시어머니와 남편 밥을 차려주고 아침에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차려주고 청소를 하고 심부름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부업공장에 들여서 부업거리를 가져왔다.
갓난아기는 하루종일 뒤에 매달려 업혀있고 때때로 내려와 엄마 젖을 먹고는 다시 업혀 잠이 들었다.
곧 둘째 아기가 태어나고 이번에는 큰 아기의 손을 잡고 둘째 아기를 업고 파출부일을 했다.
누구 한 명, 쉬라고 붙잡는 이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 사는 건 줄 알았다,
새끼손가락이 굽어서 평생 펴지지 않을 정도로 일을 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난 엄마 주머니에는 몇천 원이 전부였다.
당장 월세를 내야 하고 아이들 먹일 쌀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엄마 앞길을 황무지였다.
그런 황무지에 물을 뿌리고 싹을 틔어준 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당장 몇 개월 치 월세를 내주고 쌀을 사다 줬다.
아버지가 직접 쌀을 업고 왔단다.
그리고 아이들하고 당분간 먹고 갈 수 있을 거라며 돈을 쥐어주고 떠났단다.
고마웠다.
엄마는 돈을 끌어안고 펑펑 울 정도로 쌀을 업고 온 아버지가 고마웠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일자리를 준다며 다시 아버지가 엄마를 찾아왔다.
엄마는 아버지가 마련해 준 일자리에 열심히 일했다.
이전에도 그렇게 살았으니 이번에도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5년 후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갓 태어난 나와 엄마와 함께 살 거라고 약속했다는데, 결말은 뭐...
우리는 아버지의 자선사업 문화의 산물 일 뿐이었다.
돈 앞에서 아버지는 떳떳했고 우리는 비굴했다.
비참함도 씻어낼 수 있는 게 돈이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없어서 당장, 돈이 없다는 현실이 더 비참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증오스러웠고 그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질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에는 내일모레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네를 증오하고 미워해야 무슨 소용인 가 싶다.
그래도 천륜이라고, 아버지가 섬망 증세로 나를 못 알아볼 때는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아마도 돈으로 천륜을 산 모양이다.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에게 본받을 점? 그딴 건 없었지만 그동안 돈 아쉽지 않게 살게 해 줬던 것에 깊이 감사하다.
나를 낳자고 했던 경솔함은 두고두고 원망하지만 나를 버리지 않고 자식 대열에 끼워주었기 때문에 나는 살 수 있었다.
아버지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버지를 욕하지만 그들 중 아버지 돈 앞에서 떳떳하게 "당신은 잘 못 살고 있노라" 소리친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아버지는 돈 앞에서 무죄였다.
나는, 우리는, 아버지 돈으로 구원받았고 그 돈으로 일생동안 고통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