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우울장애로 몰고 갔던 엄마의 차가운 모습이 아니라 다정하고 따듯했던 모습이 보고 싶다.
감정 기복에 따라 나에 대한 태도를 달리 했던 엄마
차갑고 악착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기도 했지만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엄마의 다정한 면은 차가운 면보다 훨씬 빨리 늙어갔다.
다정한 엄마가 숨을 헐떡일 때마다 뒷면에 있는 서슬 퍼런 차가운 엄마는 점점 기세를 펼쳐간다.
엄마의 양면은 동등히 양립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오늘 같은 마음으로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적이 굉장히 많다.
우울한 마음은 불행이 예정되어 있더라도 당장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불행함이 반복되다 보면 불행함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에 다시금 불행한 방향과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기 쉽다.
엄마와 멀어져야 했던 순간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엄마에게서 멀어지지 못하고 늘 그녀에게 기댔던 이유도 위와 같다.
나의 아이가 생후 15개월쯤 되었을 때, 대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아서 애가 타고 있던 차에 엄마는 한걸음에 대학병원으로 달려왔다.
이 병원은 병원 오다가 사람 뒈지겠다! 교통이 왜 이래?
어때, 애는?
아이고~ 우리 손주~ 저 손에 링거 꽂은 거 봐라!
병원에서 보는 엄마는 두말할 것 없이 반가웠다.
아이의 아픔과 기약 없는 병동생활 중에 보는 엄마의 모습이란...
잔뜩 긴장되어 있던 어깨가 부드럽게 내려가고 엄마에게 달려가 자그마한 그녀의 어깨를 꼭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반가웠다.
15개월 아이는 링거를 꽂은 채 힘없이 앉아있다.
엄마는 잠시동안 아이를 보더니 이리저리 두리번 거린다.
6인 입원실에 있는 작은 냉장고를 열어 이리저리 살피더니 사람들의 간식이나 과일 따위를 정리한다.
엄마, 내버려두어~우리 거 다 표시해 놨어
에이! 이게 뭐야, 냉장고가!!!
아, 맞다.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지.
나가서 외식해도 되니?
애 링거 꽂고 못 나가, 지하에 식당가 있어
옆에 시장 있던데 가봤니?
나는 가봤지
어때?
넓고 뭐.. 많지.. 오래됐고 재래시장이니깐
거기 좀 가보자
애를 데리고 어떻게 가?
애 재우고 다녀오자
링거를 꽂고 앉아있는 15개월 아이를 데리고 시장 구경을 가자고 할 때부터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엄마도 처음 오는 지역이고 시장 구경 좋아하니깐 하는 말이잖아?
아픈 건 내 아이고 엄마는 나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어차피 내일이면 갈 거니깐 참자.
엄마 혼자 다녀와
그래 알았다, 그럼.
엄마는 병원에 온 지 10분 만에 재래시장 구경에 나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엄마 손에 반찬이 가득 들려있고 만두며 빵이며 주전부리도 가득하다.
보아하니 외식을 할 수 없으니깐 6인실 병동에서 반찬을 차려놓고 먹을 셈이다.
엄마, 여기서 너무 냄새 풍기지 말고. 반찬 그냥 넣어두자. 아니면 내일 엄마가 가져가
왜, 너 밥도 잘 못 먹었을 텐데 그냥 여기서 먹어
이제 애 밥도 올 텐데 자리도 없잖아
아니, 그럼 이 밑에 침대에서 먹으면 되지
아, 진짜 엄마! 그냥 병원에서 하루 있는 거 같이 있어주기만 하면 안 돼?
나는 딸내미 밥을 챙겨주려는 엄마 마음을 몰라준 매정한 딸이다.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가뜩이나 큰 엄마의 눈동자에 불길이 타올랐다.
엄마의 눈이 얼굴을 모두 뒤엎을 것 같이 확장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방 뛰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말없이 엄마를 쳐다만 보고 있다.
엄마는 반찬이며 군것질을 가방에 집어 '처'넣는다.
집어던지듯이 가방에 짐을 싸고는 "그래, 네 새끼 네가 잘 봐라!" 하며 떠나버렸다.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이틀 후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미안하다고, 집에 잘 갔냐고.
퇴원 후에 집에 와달라고 했다.
그래~알았어~너도 좀, 애 입원했다고 오버하지 말고~밥 잘 챙겨 먹고.
퇴원하면 엄마가 반찬 만들어서 갈게
전화를 끊고 머리가 멍하다.
방금 걸음마를 뗀 어린 내 아이를 아직도 링거를 꽂은 채 병실 침대에서 자고 있다.
나도 분명 누군가의 엄마인데, 엄마는 강하다고 했는데 나는 강하지 않다.
나는 엄마에게 굴복하여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고 홀로 울고 있다.
내 아이는 연약한 아이였다.
자주 아팠다.
때문에 내 마음도 자주 아팠고 아이의 아픔은 내 우울증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이의 아픔에서 좌절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를 위로한답시고 한 마디씩 거드는 엄마의 말은 가뜩이나 내 상처에 납땜질을 하여 회복 불가능으로 만드는 것과 똑같았다.
너 임신하고 싶다고 그렇게 유난을 떨더니... 안되는 거 억지로 하려니깐 저렇게 된 거 아니니?
임신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기에 애가 저래
임신했을 때 너네 신랑하고 얼마나 싸워서 애가 저래
너 정신과약 먹는다더니 그래서 애를 병신으로 낳은 거 아냐?
몇 번이고 엄마와 멀어졌어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엄마가 멀어질 때 드는 허전함을 견딜 수 없었다.
있으나마나 한 부모라 할지라도 있던 부모의 부재는 굉장히 크다.
게다가 나는 그녀를 증오할 뿐 아니라 애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익숙한 매질을 선택했다.
이건 하나의 예시이고 나는 이런 식으로 순간의 편안함과 현실에 안주하기 위하여 잘못된 선택 앞에서 이미 경험했던 불행을 선택했다.
특히 우울감이 휘몰아칠 때, 나는 과거의 안락했던 순간과 익숙함을 쫓아가려고 한다.
지금이 그런가 보다.
꽤나 깊이 우울한지 아침마다 약을 먹는 시간마저 놓친다.
이럴수록 약 먹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데팍신서방정과 산도스에스시탈로프람정이 섞인 약들을 입에 털어 넣어본다.
그래, 내가 보고 싶은 건 '엄마'가 아니라 과거의 다정하게 나를 보호하던 누군가의 모습이니깐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 마음을 접어두도록 하자.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다정한 엄마가 보고 싶다는 내 소망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야, 더 이상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