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장애약을 먹고 있음에도 우울삽화는 일어난다.
'삽화'라는 용어는 병적 증상이 있고 없음을 구분하는데 쓰이며 우울삽화란 기분의 저하와 함께 전반적인 정신 및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이다.
우울삽화가 지속되는 기간에는 어쩜 별 쌩쑈에 지랄을 떨어도 울적하고 무기력한 상태가 떨쳐지지 않는지...
나의 우울삽화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긴 하지만 몇 가지 특징을 말해보자면, 우선 우울장애약 먹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원래 아침 9시 정도에 의. 식. 적.으로 약을 먹었다 치면 오후 12시가 넘어서야 내가 약을 먹지 않았음이 생각난다.
약을 먹을 기억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뭐, 어떻게든 꾸역꾸역 약을 먹고 일이나 청소를 하게 되는데 우울삽화동안 나에게 주어지거나 내가 하는 행동은 '따위'가 된다.
오직 죽고 싶다거나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뇌 전반을 지배하는데 그럼에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나의 모습을 강하게 혐오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은 비관하고 낮잡아 이르게 된다.
이 시기에는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스스로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런 증상에 대한 심리상담을 받으면 100%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당연히 나아지지 않았다.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함과 동시에 약물치료까지 겸해야 했다.
우울장애에 걸리게 되면 뇌 속 신경세포 사이의 불균형이 생기는데 이것은 심리상담이나 정신력,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감기약을 먹고도 며칠 동안 기침과 콧물이 계속되듯이 우울장애의 후유증으로 계속하여 우울삽화를 앓게 된다.
4년 동안 약물치료를 받고 우울장애의 원인을 찾아 헤매면서 알아낸 것은...
우울장애약을 먹더라도 우울삽화가 일어난다는 것.
(약을 끊으면 정도가 심해지거나 신체적 불편함이 찾아왔다.)
우울한 기간이나 정도는 이전처럼 극단적이진 않아도 우울삽화가 일어나면 그것은 충분히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원인들을 차단했음에도 우울삽화가 일어나며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망상하며 괴로워한다.
망상을 차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낮에 생각하는 망상은 저녁의 악몽으로 머물러있다.
우울삽화가 일어나는 동안 나는 이전처럼 자해나 자학을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우울삽화가 지나면 미약한 경조증삽화가 찾아와서 사람들과 지나치게 만나거나 운동에 집착하기, 잠 안 자기 증상이 있었는데 약을 먹고 난 다음에는 경조증삽화는 아주 호전적이다.
아마도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성격 자체가 나를 *제2형 양극성 장애로 이끄는 듯한?
무엇이든 과도하면 탈이 난다.
탈이 나면 약을 먹고 치유될 수 있지.
우울장애약을 먹고 있음에도 우울삽화가 찾아올 때면 언제나 그렇듯 고통스럽고 이 고통이 끝나는 날이 있을지, 서글프다.
* 제1형 양극성 장애 :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고양되는 조증삽화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
* 제2형 양극성 장애 : 경조증삽화와 아울러 주요 우울삽화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