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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Nov 20. 2023

전화포비아



전화포비아는 공포증의 일종

타인과 전화를 이용하여 통화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상이다.

기성세대 보다 문자 소통, 비대면 소통을 선호하거나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며 전화를 하기 전이나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 두근거림, 과도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드는 특징이 있다.


전화보다는 텍스트로 소통하는 일상이 대중적으로 퍼지고 있고 상호작용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화포비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

이제는 전화를 걸기 전에 상대방에게 먼저 의사를 구하는 것이 예의로 자리 잡고 있다.






전화포비아 자체는 선천적으로 생긴 공포증 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은 만큼 나도 학생 때는 친구들과의 전화 소통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부재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친구들과 전화를 하며 밥을 먹거나 숙제를 하기도 했고 늦은 밤, 오늘의 소회와 내일의 기대를 공유하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17살 때 모든 장사를 접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있는 일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엄마는 이제와 품 안의 자식 이라며 나를 집에서 품어주려 했지만 그런 일상에 감동하기에 나는 너무 커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전화하는 일에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친구와 통화가 10분을 넘어갈 때쯤 엄마의 시선은 줄곧 나에게 머문다.

내가 언듯 볼 때마다 엄마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어느 날부터 친구들에게 오는 전화를 받지 않고 통화불가능으로 돌려버리게 되었다.








전화뿐 아니라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 습관, 생활 태도에 있어서 엄마의 관심과 지적이 이어졌다.

엄마는 내가 17살 되도록 낮동안 나의 생활을 몰랐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옷을 입는지, 방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밥을 언제 어떻게 먹는지 알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나날을 이렇게 입고 다녔는데 너무 얇게 입고 다닌다는 엄마의 관심과 군것질을 줄이라는 엄마의 걱정이 점차 짜증 나기 시작한다.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 엄마는 나를 보면 자꾸만 어디로 나가자고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에게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절박함을 이해했으니 20살의 나는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기에 너무나 무지했다.

엄마는 평생 일만 해왔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다.

엄마가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을 때는 세상은 엄마가 유희를 즐겼던 세상이 아니었다.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게 변해있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서울 지하철 노선을 외운 듯 종횡무진하던 엄마였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역 하나하나를 메모장에 적어주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에 거침없던 엄마는 폴더폰이 종말 한 후에도 한참 후에야 스마트폰을 샀다.

스마트폰을 사고서 왜 이렇게 어렵냐며 얼마나 짜증을 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하나씩 들고 다니는 길거리 커피를 볼 때마다 '참 유난스러운 젊은 사람들'에게 혀를 찼다.

농작물을 알아봐 달라 하여 쇼핑몰이나 스토어팜으로 보여줄 때면 어김없이 고객센터나 농장에 전화를 걸어 주문했다.



스마트한 시대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 엄마

옛날에 함께 머물기 원했던 엄마에게 18살 고등학생 딸은 무심히 불친절했고 60대 엄마는 분노했고 실망했다.



내가 성인이 된 후부터 엄마는 '어디냐' '오늘 뭐 할 거냐' '같이 밥 먹을 거냐' '언제 올 거냐'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없었던 관심이 영 부담스러웠다.

어쩌면 그런 전화 통화가 당연한 건데 나는 왜 이렇게 엄마의 전화가 무서웠나 모르겠다.

집에 빨리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은 점차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번져갔고 밖에서는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에서는 친구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22살 때의 일이다.

친구들은 모두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나는 지방 소도시의 대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그들과 일상을 나누기 위해서는 밖에서 통화를 했어야 했다.

마침 전문대로 진학한 친구들은 이른 나이게 직장을 잡기 시작했다.

가장 친한 친구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의 굴지의 기업에 입사하여 부러움을 사고 있었지만 실상은 오늘내일 퇴사를 희망하며 매우 힘들어했다.

업무량이 많은 부서로 배정받기도 했지만 업무 떠맡김이나 상사로부터 가해지는 업무 압박은 22살 신입의 눈물을 뽑아내게 만들었다.

친구에게 회사일은 매 순간 사건이었다.

퇴근 후 나에게 전화하여 회사에서 있었던 서글픔을 털어놓는 것이 친구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스트레스 해소였고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이자 우정의 표현이었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일이 많고 내가 아주 좋아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에게 전화하여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좋았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내가 그녀에게 힘이 될 수 있음에 나 스스로도 뿌듯했다.

밤하늘 별 빛 아래 울리는 우리의 통화로 친구는 오늘의 눈물을 닦을 수 있고 나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

사실 매우 긴 기간 동안 전화한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친구가 나에게 전화로 회사스트레스를 토로했던 것은 약 2주 안팎으로 퇴근하는 길 1시간 정도였다.



그날도 집 앞에서 친구의 하루를 들었다.

또 불투명하기에 두렵지만, 그렇기에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순간 집에 있던 오래된 엔틱전화기가 나에게 던져졌다.



시발, 아주 보자 보자 하니깐 구렁이 같은 년이 어디서 그렇게 속삭이면서 들어와!!!
너 남자랑 전화하고 다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남자새끼랑 밤마다 통화하고 기어들어 오니깐 좋니?
니 애미가 병신처럼 보이지?
지 애비 닮아서 아주 능구렁이 같은 년아!!!
넌 아주 나쁜 년이야!!!



벼락처럼 내리치는 고함과 허공에서 오고 가는 집 안 물건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

무슨 일인 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전화통화를 하고 들어왔으니 엄마의 눈꼬리가 예리하게 꽂힐 것은 예상했는데 전화기가 나에게 꽂힐 것은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남자라니?

나는 나에게 하는 소리라고 순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벙벙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엄마는 거칠게 나를 잡아 거실 중앙으로 당겨왔다.

나풀나풀 찢어지려는 종이 인형처럼 내 팔은 맥없이 늘어난다.



엄마는 수납장 위에 있던 이쑤시개통이나 책들을 집어던지면서 위협하는 코끼리처럼 발을 동동 구른다.

만약 우리 집 밑에 다른 가정이 살고 있었다면 층간소음으로 반드시 신고당했을 것이다.

엄마는 바닥을 뚫어버릴 기세로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너도 똑같아, 이 시발것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리도 뜯겼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밀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내가 이런 년을 아주 떠받들고 살지, 아주
어? 니 까짓게 잘난 것 같지?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엄마에게 수없이 뚜들겨 맞는 언니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다.

왜 이렇게 과격하게 대하냐고 반항할 수도 있고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난리 칠 수도 있다.

아니면 집을 나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방법은 지옥 같은 시간을 연장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저 입을 다물고 상황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들끓는 분노와 슬픔을 모른 척하고 체념한다.

살아있음을 멈추고 기다리다 보면 엄마의 분노도 곧 가라앉는다.

엄마는 결국 울거나, 씩씩거리며 어지럽혀진 물건들을 치우고 술병과 김치 따위의 안주를 가져와 어제와 다름없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 사이는 썩 어색하겠지만 곧 괜찮아질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결국

괜찮아질 것이다.







언제부턴가 울리는 전화벨이 두려워졌다.

누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가

나의 안부가, 나의 행동이, 나의 의사가 궁금한 사람이 누구인가



처음에는 내가 받는 것만 불편하더니 점차 전화를 거는 행동조차 불편해졌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대방에게 감정 전이 되어 나 역시 전화를 하면 안 된다 생각하였고 전화를 걸어야 할 때의 망설임이 곧 불안함으로 발전했다.

전화 수신 피하기는 전화 통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마무리되어, 나는 전화포비아가 되었다.



특정 물건이나 행동에 대해 혐오감이 들 때마다 긴장도와 불안도가 높아지고 어느 정도 고립되기 마련인데 그중에서 전화포비아가 된 이후, 긴장도와 불안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고 외부로부터의 고립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고립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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