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흙이 말이 되는 시간
그 질문은, 내가 어릴 적 장마철이 되면 쏟아지던 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유월 중순부터 칠월 중순까지, 비가 참 오래도 내렸다. 아이의 시간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비가 많이 오면 밖에서 노는 것은 어려워졌고, 아이에겐 좀이 쑤시는 그런 기간이었다. 나는 집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물에 잠긴 놀이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내겐 이 비가 언제 그칠지는 알 수 없었다. 집 입구에 심어놓은 커다란 토란잎만이 투둑투둑 거리며 나와 함께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눈에 비친 텅 빈 놀이터는 무척이나 낯선 풍경이었다. 항상 그곳엔 나와 내 친구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의 나는 이 낯선 풍경이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되기도 하였다. 어른들은 비가 오면 자꾸 집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내 맘도 모른 채.
서울 변두리에 있던 우리 집은 5층짜리 낮은 아파트 여러 동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놀이터를 가운데 두고 각 동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지금은 찾기 어려운 넓은 놀이터였다.
나는 친구들을 창문 밑에서 부르곤 하였다. 그러면 친구들은 고개를 삐쭉 내민다. 우리들이 서로 놀자는 신호를 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가 오면 사정은 달라졌다. 마치 속살이 훤히 비치는 커튼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 나는 내 친구들이 사는 집, 창문들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러다 보면 친구들도 슬금슬금 밖으로 나와 보곤 했다. 아이들에겐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잠시라도 비가 덜 오기라도 하면 우리들은 놀이터로 달려 나갔다. 흙탕물로 변해버린 놀이터의 상태 따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신이 났다.
아마도 놀이기구가 있는 수영장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놀고 싶은 마음은 기어이 우리들을 진흙탕 속으로 밀어 넣었다.
가슴만큼이나 올라온 그 깊이를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때는 그랬다. 흙탕물 속에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뎌 미끄럼틀에 도착했다. 위에는 먼저 온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끄럼틀 위는 마치 원두막 같은 곳이었다. 아니, 원두막보단 더 재미있었다. 그곳에서는 곧장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었으니까.
잠시 비를 피한 뒤 한 명씩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흙탕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물 때문에 더 미끄러웠고,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신발이 진흙에 박혀 계속 벗겨지고, 발가락 끝으로 꼼지락 거리며 박힌 신발을 파내면서도 연신 반복했다.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몸에선 아즈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론 집에 돌아가면 약간은 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무슨 대수람. 재밌었는데.
사실 우리들은 언제 만날지 약속하고 돌아온 터였다. 잔소리를 들으며 씻고 밥을 먹으면 그 맛이 정말 좋았더랬다.
이후 무거워진 눈꺼풀과 다리를 이기지 못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 것이 젖어 싱싱하고 선명해졌다. 나의 기억조차 그랬다.
엄마는 가끔 내게 콩나물 백 원어치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내가 처음 사온 콩나물로 국을 끓여 먹었던 자랑스런 기억이 있기에 또렷이 생각이 난다.
시장에 가는 길은 놀이터를 통과해야 지름길로 갈 수 있었다. 주머니에 백 원을 넣고, 놀이터로 들어가면서 나는 보도블록으로 다니지 않았다. 꼭 흙이 있는 곳만 골라 밟고 다녔다.
신발에 흙이 들어가면 털면서 갔지만 실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었다.
비 오는 날엔 흙탕물이 있는 곳으로 자박거리면서 다녔다. 신발 속으로 물이 들어와 북북 소리가 나는 게 재미있었다.
나의 양말엔 흙물이 들어 때가 잘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묻은 흙은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