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흙이 말이 되는 시간
첫 흙 수업 이후,
나는 몇 차례 더 수업을 이어갔다.
나에게 익숙해진 아이들에게서
처음의 멈칫거림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흙을 준비했다.
흙이 많을수록
더 크고 자유로운 수업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준비된 흙덩이를 보자마자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저거 다 써도 돼요?”
한 아이는 이미 흙에 손을 댄 채로 나에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흙을 뜯어내고 있었다.
내 허락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뭔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며 기다리기도 했다.
나는 곁에 다가가 말했다.
“너도 어서 해봐.”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조심스레 엄마, 아빠, 동생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내
다른 아이들과 함께 흙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수업은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지에 대한 경쟁이 붙었다.
그 많은 흙은 아이들에게로 다 흩어졌다.
친구들보다 더 많이 가져온 아이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흙덩이를 껴안고 있었고,
적게 가져온 아이들은
좀 더 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봐.”
어느덧 한 무리의 아이들은
흙을 쌓고 있었다.
쌓다가 자꾸 흐느적거리는 흙을 다시 붙이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한 아이가
아뜰리에 한쪽에 있던 나뭇가지를 가져와
흙에 꽂아 뼈대를 세웠다.
아이들은 거기에 지붕을 만들고
문을 달고
구멍을 뚫어 ‘집’을 만들었다.
또 다른 아이들은
각자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아뜰리에에 있는 다른 재료들도 함께 쓰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진열된 재료를 가리키며
꺼내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용해도 괜찮겠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하나씩 내주었다.
그러다 단추를 발견한 아이가 흙에 두 개를 꾹 눌러 붙였다.
처음에는 그 모양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눈이에요.”
그제야 보였다.
단추 눈을 가진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다음 수업에서
아이들은 흙을 길게 늘여 ‘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줄들을 이어
기찻길을 만들었다.
또 다른 아이들은 기차를 만들었다.
“칙칙폭폭.”
아이들은 소리를 내며
기차놀이를 시작했다.
지난 시간에 만들어 둔 것들은
기찻길 주변에 하나씩 놓였다.
무거운 흙덩이를 옮길 때면
아이들은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놀이를 돕는 쪽으로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넓은 비닐 위에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서 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눈앞에 형상이 생기자
아이들의 이야기가 점점 또렷해졌다.
흙 앞에서 아이들의 놀이는 더 오래 이어졌고,
이야기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 시간이 끝난 뒤를 자꾸 떠올리고 있었다.
무엇이 남을까.
그리고
무엇이 펼쳐질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돕는 쪽에 머물렀다.
알 수 없는 것을
열어두기 위해서였다.
약간은 질투 어린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저렇게 흙을 만진 적이 없었다.
이곳에서 나는
아이들과 도예를 하지 않았다.
어릴 적 흙 놀이의 기억을
아이들과 함께 되살리는 시간을 보내며,
나는 자꾸만
더 안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도, 내 손도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흙은 다른 재료를 만나면
놀이가 되고,
구조가 되고,
이야기의 주체가 되었다.
나는
흙이 쓰이는 넓이와
마음을 움직이는 깊이를
다시 보고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을 좋아했지만,
그 시간들은 쉽게 남지 않았다.
사진으로 기록할 수는 있었지만,
손에 쥘 수 있는 형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마음 한켠에는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마음을 꺼내는 흙을 선택했다.